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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an 30. 2021

향기가 바람을 거스르지 않듯

  손자가 저녁 상머리에서 똥을 쌌다. 나는 가만히 두고 보기만 했다. 사위가 먼저 엉덩이를 쳐들었고, 딸도 이내 따라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딸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자의 요란한 울음이 들리더니 이내 조용했다. 이 녀석이 껌뻑 뒤로 넘어가는지 울음소리가 잠시 들리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몇 초 뒤에 약이 바짝 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이었지만 어멈과 사위는 난리가 났다. 손자가 욕조에서 뒤로 넘어졌다고 하였다. 내가 천만다행이라며 저녁상으로 안내했다. 딸이 손자의 물에 젖은 겉옷을 벗기는 사이 손자가 헤헤 거리며 상 앞으로 와서 앉았다.


  그런데 딸의 종아리에 똥이 묻은 것이 보였다. 내가 휴지로 닦아내는데 뒤늦게  앉던 사위가 "여기도 묻었네! 아이 짜증 나!" 버럭 신경질을 부렸다. 사위는 거실 바닥 곳곳의 흔적을 견디지 못하여 걸레로 얼른 닦아 내고 아들을 안아서 다시 화장실로 가버렸다. 내 딸은 화를 내기는커녕 "자기야, 정말 미안해. 얼른 치우자." 바로 남편의 비위를 맞추는 발언을 하였다. '저 화상은 밸도 없나' 딸을 이어서 '아이의 똥이 여기저기 묻는 것이 예사지 엇따 대고 짜증을 부려?' 


  모두 숟가락을 들고 몇 번 오르락내리락도 못했다. 나는 밥이며 국이 뜨거운 것을 좋아한다. 손자 바람에 식어빠진 밥상을 대하려니 먹어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할 정도였다. 손자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틈을 이용하여 사위에게 "아이 앞에서 짜증내는 모습을 보이면, 자네 흉내 내는 것을 얼마 있지 않으면 보게 된다. 앞으로 주의해라." 아이가 부모의 말투나 말들을 흉내 낼 때 그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점을 사위에게 주지 시켰다.


  딸이 식사를 마칠 무렵부터 눈꺼풀이 내려앉는 것이 역연했다. 내가 설거지를 자원하면서 딸을 쉬도록 방으로 밀어 넣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내 아들 생각이 났다. 아들도 유치원 다닐 무렵 똥을 싸서 뭉갰던 적이 있다. 남편이 대령 진급을 하여 충주에서 1차 연대장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나는 큰 아이들이 초등학교, 아들은 유치원으로 갔기에 마음 놓고 시내로 나갔다. 아들이 오기 전까지만 돌아오면 되니까. 근데 그 날은 뭘 한다고 그랬는지 기억은 없으나 아들보다 늦게 집에 도착했다.


  안짱걸음으로 어정쩡하게 걷는 아들을 골목에서 만났다. "엄마, 나 똥 쌌어. 엄마가 없어서…" 옷에다 실례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가 팍 죽어서 머리를 숙였다. "괜찮아, 아들. 집에 가서 엄마가 씻어 줄게. 얼른 가자." 까지는 좋았다. 아들 아랫도리를 벗기니 내복이 완전히 가죽 같았다. 그리고 아들 엉덩이와 사타구니 및 허벅지는 반들반들하면서 꾸덕꾸덕 말라 있었다. 아이를 위로하기는커녕 잔소리부터 나왔다. 인내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내가 30대에 시어머니의 대변을 받아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고무장갑을 끼고 아래를 씻겨드렸다. 이번도 역시 고무장갑을 끼고 아들을 씻겼다. 장갑 끼고도 똥은 잘 씻기지 않았다. "똥이 마려우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말해도 된다. 알았나!" 내가 대문을 잠그고 나가서 늦게 돌아온 것은 안중에도 없고 엉뚱한 아들만 죄인을 만들어 나무랐다. 유치원생이 어디 가서 "나 똥 마려워요." 하겠는가. 참으로 답답하고 맹추 같은 엄마나 할 소리를 했으니… 아들아,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리고 부끄럽구나.


  그런데 몇 년 전 남편이 더 급해서 화장실을 양보했던 적이 있다. 거실에서 서성대며 남편을 기다리는 찰나 뒤가 뜨뜻한 방귀가 나왔다. 그리고 더 참을 수 없어서 실외 쪼그리고 앉는 변소로 갔다. 볼 일을 다 본 뒤 속옷에 누런 것이 보였다. 뜨뜻했던 것은 똥이었다. 쪼그리고 앉았던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다. 정말로 웃기는 것은 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씻겼던 시어머니와 아들의 똥이, 나의 것은 이상할 정도로 이물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때 내가 시어머니와 아들에게 색안경을 끼고 씻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과할 수 없는 시어머니에게는 지금 후회하는 마음이 좀 남아있다. 


  아들의 엉덩이와 허벅지는 고무장갑으로도 잘 씻어지지 않았다. 어린 녀석에게 한 마디도 쉬지 않고 계속 무어라고 가르쳤던 것 같다. 이런 무식한 어미가 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것도 잘났다고. 딸의 부부는 손자를 어르고 달래면서 웃으며 씻긴 뒤 "괜찮다~ 아주 똥 잘 쌌어~ 예쁜이~" 사위가 그랬다. 참으로 얼굴 들기 부끄럽게 만들었다. 


  요즘의 나는 손자가 얼굴이 벌게지면서 인상을 쓰면, "할머니하고 시원하게 씻으러 가자." 그리고 한 손으로 아이를 안아서 세면대 수도꼭지 가까이 앉힌다. 손자의 등을 내 턱으로 지그시 댄 채 맨 손으로 항문을 씻기면 똥이 만져지면서 물에 씻겨져 나갔다. '더럽다는 똥을 내 손으로 주무르고 있네' 알아차림을 한다. 그리고 역겨움을 극복하는 나를 본다. 오늘도 나는 손자를 통해서 성숙해지고 있다. 


  이 녀석이 세면대에서 엉덩이를 씻지 않으려고 앙탈을 부려댄다. 손자가 씻지 않으려고 엉덩이를 마구 쳐든다. 억지로 누르며 씻기다 보면 나의 코와 입이 항문과 불과 몇 센티도 안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손자 똥 치우다 이젠 식당 앞에 변소까지…' 매일 두세 차례 치르는 행사다. 힐끗 세면대 위의 거울을 보면 손자의 찡그려 대는 모습조차 귀엽다. 굽히고 있던 나의 허리를 세우며 거울에 보이는 손자를 흉내 내면서 조손이 함께 깔깔거린다. 이렇게 나의 아들을 대했어야만 했다. 


  내 옷에 묻었던 이물질을 씻으려고 고무장갑을 꼈다. 세탁기에 돌리면 알아서 씻겨져 나갈 텐데 굳이 손 수고를 할 필요 없겠다는 꼼수가 언 듯. 그래서 세탁기로 홱 던지고 말았다. 세탁 후 확인한 결과 깨끗했다. 이 또한 내가 '똥'이라는 개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내 뱃속에는 똥으로 가득하면서 '더럽다'는 고정관념만 꽉 차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멋을 낸다며 오늘도 거울을 들여다본다. 


  손자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구 먹어대니 냄새가 고약하기 어른 못지않다.   


   

      사진: 정 혜


  대문사진: 동구 안심공원에서.

  아래: 금호강의 해넘이.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225442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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