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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n 12. 2021

아~나, 왜 이러지

  한의원 문을 열었다. 간호사가 "마스크 안 써도 됩니꺼?" 어? 어쩐지 무척 편안하더라니…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한 여인을 만났다, 이내 버스가 당도하여 올라탔건만 내게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남들이 들여다보는 손전화기를 펼쳐서 돋보기까지 끼고 봤다. 한의원에 도착하니 "백신 맞은 줄 알았겠지예" 간호사의 일리 있는 말이다. 


 항상 하던 일의 반복이라서 스스럼없이 집을 나섰다. 마스크는 가방에 준비되어 있으니까 대문만 자물쇠로 채운다. 그다음 골목에서 마스크를 하면 된다. 이것조차도 깜빡깜빡하여 이젠 방 안에서 착용하고 출발한다. 마스크 벗을 때 아예 눈에 잘 뜨이는 가방 옆에 둔다. 그래서 오늘도 사회 준수 규칙 잘 지킨 줄 알았다. 아, 참내! 한두 번도 아니고 해마다 나 왜 이러지… 


  두 손이 허전하였다. 가벼운 차림이 이상하여서 두 손을 내려다보니 수영가방이 없었다. 히히‘ 웃음이 나왔다. 대문을 닫은 뒤 5m나 갔을까. 문득 알아차렸다.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 5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일어났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처음 수영 배울 때 있었던 사건의 글을 퇴고하였다. 글이라는 것이 매번 느끼는 감정과 앞뒤 문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렇다 보니 6시 강습시간이 임박하여 컴퓨터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집에서 부리나케 나갔다. 결국 몇 걸음도 못 가서 발병이 났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2014년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그때는 돌아서면서 잊었다. 그 당시 얼마나 잘 잊었는지 오늘 정신없는 짓을 한 것은 약과다. "바보도 이런 바보는 없다"면서 혼자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정신을 놓고 다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수영강습을 마치면 아침 7시 50분이다. 나 스스로 부끄러워 셔틀버스 속에 앉아서 구시렁거렸다.



  수영은 나와 잘 맞는 운동이다. 기운이 없어서 비실비실 거리다가도 수영을 하면 물 찬 제비가 된다. 도움닫기를 하여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수면 위로 떠오를 땐 굉장히 상쾌하다. 물속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 쾌감에 수영을 한다. 그런데 바로 어제 오후 잘 마른 수영복과 수경, 수영모를 챙겨서 미리 가방에 넣었다. 밤에 수건을 담으면서 확인했다. 얼핏 평소와 다른 수영모가 눈에 들어왔다. 딸의 것으로 짐작하며 더 눈여겨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강습 한 시간 전이다. 몸을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기 전 수영복 가방을 열었다. 수영복이 보이지 않았다.

어라? 하여간 몸을 씻으려고 들어갔다. 온몸에 비누칠을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제 이상했던 그 수영복을 의심 없이 쏙 빼냈던 생각이 얼른 스쳤다.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머릿속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굉장히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집으로 갈까, 말까…’ ‘그냥 한다면, 뭘 로…’ 전광석화의 시간이었다.


  얼른 욕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도우미에게 남아도는 수영복이 있느냐고 물었다. “입지 않는 것이 있지요“라며 찾아주었다. 나는 좋아서 랄루 랄 라 욕실로 들어와 머리를 다시 감기 시작했다. 아차차! 눈이 문제였다. 머리도 쓸 것이 없었다. 다시 도우미에게 쫓아갔다. 내가 주문을 하니 잡다한 것 보관해 둔 곳에서 한참 뒤적이더니 또 들고 나왔다. 포기했더라면 입맛만 다시고 집으로 돌아갈 뻔한 잠깐이었다. 강습 전에 짧게 연습 한 번이라도 해보려고 서둘러서 입장했다.


   남자 수강생이 수영복 바뀌었다면서 아는 체했다. 수경이 어린아이용인지 도무지 눈에 착 맞질 않았다.

또 나는 강한 회오리바람이 되어버렸다. ‘핑계 삼아 가버려?'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해?’ 잡다한 번뇌를 떨치고 번개같이 물에서 튀어나와 도우미를 찾았다. 앞 시간을 마친 회원들이 옥상에 빨래 널러 갔다고 말해주었다. 기다리려니 일각이 여삼추다. 내려오지 않는 그녀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일초라도 수영강습을 더 받고 싶어서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다. 파우더 룸으로 들랑날랑, 안절부절 조바심이 났다.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기조차 멋쩍었다. 그래서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맞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내가 초조해하는 것을 느꼈다. 심호흡을 했다. 내가 도우미를 체념하고 있으려니 반갑게도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수영복은 브라 캡이 없었다. 말 그대로 절벽이다. 그 누가 내 젖가슴만 보겠느냐 싶어서 뻔뻔스럽고도 당당하게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강습은 이미 시작되어 물에는 빈 틈이 없었다. 다들 수영하기 바빠 서로의 얼굴만 보였다. 수경이 낡아 많이 불편했지만 뒤처지지 않으려고 억척을 부렸다. 다음 강습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열심히 배영 연습을 하고 물에서 나왔다. 나는 컴퓨터 앞에 오래, 그리고 자주 앉다 보니, 배영은 필히 연습을 하려고 애쓴다.


  수영장 귀가 셔틀버스 출발 10분 전. 차 안에서 망상에 젖는 것보다 꽃 사진을 찍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차 문을 열었다. 얼마 전 수영 강습소 가까이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었다. 요즘 꽃사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멋스럽게 늘어진 가지를 찾았다. 최대한 지척에서 꽃을 섬세하고 정밀하게 찍었다.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빛 조절도 하면서. 힐끔힐끔 버스도 확인하면서 촬영했다. 사진은 그 자리에서 확인하여 삭제하고 다시 찍었다. 옆에서 사진 찍는 사람과 정보 교환도 했다. 버스 출발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 같아서 조심스러웠다. 한 순간 차량들이 서 있던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입 맛을 다시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저녁식사 준비하다 말고 셀 폰을 열었다. 오전에 수영장에서 찍은 사진이 제대로 촬영되었는지 확인도 하고, 멋진 것은 카 톡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오래된 사진은 막간을 이용하여 훑어보면서 지웠다. 다음에는 앨범을 지정하여 삭제 단추를 누르다 ‘실수했다 ‘는 직감이 들었다. 급히 '중지'를 눌렀건만 이미 흘러간 물이었다. 정말 '찰나'였고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저녁식사 준비하다가 말고 방으로 들어와 일을 저지르고 있었으니

  

  이 참에 백신 잔여분이 남았는지나 알아봐야겠다. 백신 맞고 나면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동해안 일출,

아래 사진: 금호강의 일몰.

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때, 지지 않았을 무렵의 빛, 즉 미명(明)이다.  미명(微明) 곧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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