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9. 아들의 재취업 선물. 신상 출시 이틀 만에 구입. 최첨단 기능을 갖춘 노트 나인은 지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오~” 감탄사가 나왔다. 내게 보내는 눈길이 달랐다. 고가품은 아들이 나에게 베푼 투자였다.
농경사회는 현재 완전히 붕괴되었다. 산업사회도 막을 내렸다. 나는 IT 강국의 일원으로 신발 벗어서 양손에 들고 달렸으나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저 가을 추수 끝난 논에서 이삭 줍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아니 이삭 줍기도 버거운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세월을 뒤쳐져서 가는 지금이 나는 참으로 한가롭다.
나는 블로거다. 타자(打字)가 수준급이다. 그래서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속으로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모르는 것이 아주 많은 처지라 컴퓨터 고급 기술을 돈 안 들이고 배우려 노력도 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배운 것을 써먹지 않으니 무용지물이 되어 안갯속의 앨범으로 남았다.
선물은 섬세했다. 세분화되어 있었고 세밀하였다. 컴퓨터의 기능과 첨단기술이 내재되어 배우려니 공연히 비위가 거슬렸다. 처음엔 잘 다룰 수 있으리라 걱정도 하지 않았다. 문득 셀 폰 대리점에 AS 받으러 갔다가 목격했던 한 광경이 떠올랐다. 중년 남성이 대리점 안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큰 소리로 “이거를 상품이라꼬 파나! 어이~” 하면서 셀 폰을 바닥에 때기 쳤다. 그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하며 직원에게 마구 호통을 쳤다. 꼭 분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가 새 제품을 패대기쳐서 매우 아까웠지만, 분통이 터질 정도로 배우기 어려웠다고 짐작했다. 또 다른 남자도 속상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의 셀 폰에는 ‘엑셀‘과 ’ 파워포인트‘ 응용프로그램이 있다. 혹시 취업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 엑셀‘을 무료로 가르치는 곳에 갔다. 교육장에는 퇴임한 노년층이 많았다. 보아하니 서너 번씩 강의는 들은 것 같았고, 강사가 뭔 소리를 하는지 감을 못 잡는 것처럼 보였다. 다 늦게 활용할 곳은 없고, 집에서 복습하지 않으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싶었다. 나 또한 책 한 번 열어보지 않고 다음날 교육장으로 갔으나 그나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강사는 수강생들이 거의 아버지 뻘 이상이었다. 그녀는 화를 낼 수 없어서 답답해 하였고, 또 조심스레 이마를 쓰다듬거나 “허 참~", "내 참!” 하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수강생 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앞으로 걸어 나갔다. 40명의 시선이 땅딸막한 아저씨 등에 꽂혔다. 그는 컴퓨터 대형 모니터 앞에 서서 왼손으로 어느 지점을 콱! 콱! 찍으며 “이기 뭐냐 꼬오~ 이 기 이…"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이 앱은 내게 계륵이나 다름없다. 배우던 날부터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아서 다 까먹었다. 그런데 지우려니 일자무식처럼 보일 것 같고, 그냥 두자니 영 거시기 했다. 그러나 몇 개월 뒤 지웠다. 미련 없이.
손전화기 기능을 독학해보려고 결심했다. 그런데 나 혼자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여지없이 분질렀다. 선머슴아 같은 성향의 나를 붙잡아 앉혔다. 돋보기를 끼고 아들, 사위에게 도움받지 않고 사용하려니 영어문법이 따로 없다. ‘빅스비 비전’은 나의 음성을 저장하였다가 “아들에게 전화를 해다오 “라고 전화기에 말하면 자동으로 인식하여서 통화할 수 있는 기능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신기능이 내겐 구태여 필요 없다. 또 지문과 홍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백수는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뭘 이룬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나다. 사용하던 기기의 기능들을 새 것으로 옮기려고 블루투스를 실행해 봤다. 설명서대로 잘하다가 ‘계정에서 smart switch’를 선택하라고 적혀 있다. ‘설정‘을 찾아서 훑어봐도 도무지 어느 곳으로 들어가야 smart switch’가 있는지…
그리고 선물은 예민했다. 카메라는 살짝 건드려도 연속 촬영되고, 사투리를 적으면 즉시 표준말이 튀어나오질 않나… 뭐가 그리 인증하고 동의할 것이 많은지. “최고라서 그래요 “ 사위의 대답이다. 마음에 들었다 말았다 수시로 내 마음이 바뀐다. 나는 가까운 대리점에 가서 물으면서 짜깁기하듯 배웠다. 암기는 포기하고 아예 메모 앱에 아이디와 비번을 적어놓았다. 젊은 녀석들이 선호하는 앱을 설치해주었어도 노령자는 별 소용없어서 삭제시켰다. 새로운 것을 익히기 위해 파고드니 시급히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많았고, 대신 기능들이 친절할 정도로 편리했다. 감각적이다. 전에 사용했던 기기는 속력이 느려져서 탈이지 통화하고, SNS, 카메라 등 나름대로 활용 잘하고 있어 굳이 ‘최고’가 필요 없는 나였다.
나는 단순 명료한 것을 선호한다. 해가 바뀌고 달이 갈수록 복잡다단한 것은 눈부터 감긴다. 아들이 최신 상품을 선물하겠다고 했을 때 카메라 기능만 좋으면 되니 비싼 것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의사를 밝혔다. 아들은 '이왕이면 젤 좋은 것으로 장만해서 아들 자랑도 하고, 부(富) 티도 내보라' 했다. 아들의 권유가 그럴 싸 했다. 아들은 IT 세대이며, 나는 농경 세대 끝물이자 산업세대다. 그리고 현재 처한 위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 나이와 세월은 세상살이에 대한 애착도 줄여주었다. 감정이 감각적인 언어에 휘말리는 예도 거의 없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된다. 이렇듯 난 그동안 아들과 별개의 세상을 살고 있다. 세대차이가 손전화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좁히려 해 보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했다.
재취업 준비하던 어느 하루 아들이 “엄마는 내게 관심이 있기나 해?”라며 예리하게 물었다. 내가 그만큼 무심히 보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내가 올바른 언행을 하며 살아간다면, 자식들은 나를 본받으면서 장성할 것이리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잔소리와 간섭을 최대한 줄였다.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도 말이다. “엄마는 많은 말보다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 왜 그렇게 묻는 거야?” 식탁에 닿을 만큼 머리를 푹 숙인 채 숟가락질을 하다 말고 “나를 이 정도밖에 키우지 못했나 싶어서…” 아들의 자신감은 멀찌감치서 보일 듯 말 듯. “니가 어때서? 다들 너만큼만 하라고 해. 시시한 곳에 취업을 했다 손쳐도 엄마가 사는 수준은 될 테니 자격지심 가지지 마라. 나는 너를 믿어. 그러니 너도 스스로를 믿어라” 그제야 나를 바로 쳐다보면서 “엄마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믿어 줘서 고마워요”
아들의 분에 넘치는 선물은 자식을 신뢰한 보답이다. “엄마는 내 선물을 받을 자격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분이야. 미안하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세요.” 선물 받기 전까지는 셀 폰을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요즘은 자랑삼아 손에 들고 자주 들여다본다. 평정심은 십 여일이 지나면서 유지할 수 있었다.
28개월이 지났다. 2021년 4월인 근래는 더 좋은 제품이 벌써 나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들의 선물이 최고다. 요즘은 단순하게 사용하던 카메라도 '프로' 기능을 활용한다. 이런저런 앱을 설치하여 웹 서핑도 해봤지만, 내겐 맞지 않아서 일절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기능을 배우는데 두려움은 없어졌다. 어떤 것은 대애충 설명만 들어도 '아하!' 터득이 될 만큼 실력이 증진했다. 아들이 투자한 만큼 모바일 폰 사용 효과를 높이고 있어서 서로 만족스럽다.
내가 아들에게 색감을 살려서 찍은 꽃 사진을 종 종 보내준다. 아들은 날로 발전해가는 나의 실력을 인정했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은 NOTE 9으로 찍은 황매화.
이 봄을 장식하는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매력 있는 꽃이다.
아래는 모과 꽃,
비가 토요일 종일 내리고 일요일 새벽에 멈추었다. 빗방울 머금은 모과 꽃을 찍으려고 아침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흐린 날 빛이 없어서 모과 꽃봉오리 색깔이 선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