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니 먼데 6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오후에 산책을 나서면서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산책을 나서서 검색하니 비가 온다는 예보다. 마침 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대로(大路) 건너편에는 우산을 쓰고 걸었다. 범어배수지로 향하던 발길을 돌리며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바깥으로 헤매려는 망상을 접고, 천리향이 풍기는 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인이 된 어머니의 난 분을 분갈이했다. 어머니는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을 난에게 쏟았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이웃들이 우리 집을 “꽃집”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아침마다 나를 불러서 깨웠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화단에서 꽃을 돌보았다. 나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아마 내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버지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어머니는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의 아버지를 회상하였다. 젊었던 그때는 왜 그렇게 꽃이 싫었는지 모르겠다고 가끔씩 말했다.
어버이날이면 어머니께 카네이션 모종 화분을 드렸다. 어머니는 화분 관리하는데 정성을 쏟았고, 겨울에도 꽃을 피웠다. 그러다 이질녀가 외할머니에게 난 분을 선물했다. 손녀와 딸이 선물한 화분이라며 아기 다루듯 애정을 퍼부었다. 겨울이면 아파트 베란다가 춥다면서 비닐로 냉기를 막아주었다. 그 난이 꽃을 피웠다며 참 좋아했다. 어머니의 애지중지 하는 모습에서 집착이 보였다. 내가 장례를 치르고 화분을 가지고 와서는 화단 옆에 방치하다시피 했다. 온갖 먼지와 낙엽이 화분에 가득했다. 일이 하기 싫어서 본 척 만 척 돌아다녔다.
꽃대가 2개나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무심했던 내가 부끄워졌다. 생명을 지닌 식물이며, 어머니 정성과 사랑을 받았던, 특히 꽃을 피우려는데 데면데면할 일이 아니었다. 난분을 갈아주면서 어머니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왕 장갑 낀 손 다른 화분도 손을 댔다. 나의 내면(內面)을 들여다보며 다스리는 오늘이었다. 짚신이 닳도록 찾아 헤맸건만 봄을 찾지 못했다는 선시가 봄이면 생각난다. 그런데 내 집에는 천리향이 피어서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나는 코로나 19 바람에 오늘 하루 충실했다.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손자와 함께 한다. 손자를 돌보는 동안 글 쓰는 일은 좀 등한(等閑)해지겠지. 그래도 매 순간 알아차림 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손자는 매일 자랄 것이고, 나 또한 나이테가 하나 더 생기겠지. 나는 이 또한 지나가는 세월의 길목에 서 있다. 매화가 미련없이 낙화하 듯 나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제도 흑매 사진을 찍으며 떨어졌던 봉오리를 주워왔다. 바싹 메말랐던 봉오리들이 오후에 꽃을 피웠다. 제법 찻잔에서 향을 내뿜고 있다. 봄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이다.
사진: 정 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