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아미타불

코로나 19, 니 먼데 7

by 정 혜

일요일 늦은 오후는 받아 논 밥상이다. 딸이 데리러 오기 전에 미루던 집안 일을 해결했다. 매실청을 담아 둔 유리 용기의 플라스틱 뚜껑이 햇빛에 삭아서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빈 우유통을 재활용하여 옮겨 담고, 딸이 선물 받은 다육이 화분을 뒤꼍에서 화단으로 들어냈다. 장갑 낀 김에 분갈이도 해버렸다. 그리고 비가 오면 아래 집에서 비 샌다고 하는 상습적인 곳, 뒤 안 청소를 하러 갔다.


뒤안은 나 하나 들어서면 될 너비와 길이 3미터 남짓한 공간이다. 이미 바닥에는 어제 내린 비가 고였고, 모과 낙엽이 빽빽하게 하수구를 막고 있었다. 낙엽을 걷어내며 내 탓을 하였다. 대부분의 여자는 자신의 외모에 치중하지만, 나는 늘 내면을 성찰하면서 산다. 어쩌면 내가 어느 한 구석 이리 소통되지 못하여 체 했을 수도 있다. 푹, 푹 부삽으로 퍼내면서 곰곰이 되짚어 보니 시원스러운 관계가 제대로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고도 뻣뻣이 고개 쳐들고 다닌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다.


허리를 폈다. 몇 년 전에 이곳을 청소할 때 희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아래층 벽에 덧대어 알루미늄 보조 지붕을 달았다. 거기 물 빠지는 곳에 날아온 흙먼지가 쌓여서 채송화가 일렬로 꽃을 피워 장관이었다. 그때 불과 3cm 남짓한 척박한 환경에서 꽃을 피운 생명력에 감탄 연발. 오늘은 떨어진 모과와 낙엽만 수북하였다. 만물은 항상 하는 것이 없었고, 끊임없이 변화했다. 무상(無常)하다는 말이다.


코로나도 그렇다. 인연 따라 모였다가 헤어지는 것이 세상사다. 단지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으면 문제가 커지는 것이다. 이번에는 코로나가 원인이지만, 결과가 있었으므로 원인이 생기는 법. 나도 코로나의 부정적인 면에서 작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또 딸은 시어머니 아파트로 피난을 가서 효도 잘하고 일요일 이사한 집으로 갔다. 사위가 나를 태우러 와서 4 식구만의 단란한 시간이었다며 흡족해했다. 우리는 서로 칩거하면서 충실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다 충족하고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은 욕심이 사람들의 밝은 눈을 가려서 보이는 것들이 온통 희뿌연 하다. 코로나는 밝고 바르게 살라는 노란 경고장을 인간에게 내밀었지 싶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 오존층의 파괴는 심각하다. 그래서 코로나라는 병이 창궐하였다고 짐작한다. 오만한 인간들에게 겸손해지라는 통첩을 보낸 것이리라.


열흘만에 만난 손자가 낯가림을 심하게 했다. 밤새 큰소리로 울어대서 어른 셋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6개월 돌봐 준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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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https://blog.naver.com/jsp081454/221949323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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