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 Sep 24. 2020, 11
계속 미루는 것 한 가지에 대해 써봐요. 무엇을 미루고 있고 왜 미루는지, 어떻게 하면 미루지 않을 수 있는지도 써봐요.
손자와 거실 창으로 밖을 내다봤다. 달이 실눈썹보다 도톰해져 있다. 손자에게 달을 가리키며 "저것이 달이야. 달, 달"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 손자의 눈길이 달을 향했다. 음력으로 초 닷새나 엿새쯤 되려나. 그러고 보니 며칠 후면 추석이다. 택배 차가 대목 밑이라 유달리 많이 보인다. 입구마다 수북이 쌓은 물품들이 힘겹게 밀려 들어가고 있다. 검지 손가락으로 창 아래를 가르키며 "저것이 택배 차야. 선물을 잔뜩 실고 왔구나."
택배가 내 딸 현관문 앞에도 매일 도착해 있다. 볼 적마다 고운 시선이 아니다. 내 집 일은 게을러서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리수거만큼은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다. 내 아이들이 삶을 꾸려나가야 할 이 강토를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며, 생활 쓰레기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어서 내가 몸살이 날 정도다. 그렇다고 두 팔 걷어붙이고 치우는 것도 아니면서.
금요일 밤이면 내 집으로 돌아간다. 깔끔하고 정리정돈 잘 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시컴티티한 내 집은 우선 어수선하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내 저것들을 당장 버려야지' 생각부터 한다. 과감히 버릴 생각은 이전부터 수 없이 하고 있다. 게으른 천성은 일단 하기 싫어서 미루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자 집기들이 방 한쪽을 채웠다. '버리고 올 일이지 다 들고 와서 사람의 심기를 괴롭히네…'
딸도 한 살림 모셔다 밀어 넣었다. 남편이 이것저것 사들였다. 딸이 사용하던 방은 빼곡히 버릴 것들로 메워졌다. 그것을 볼 적마다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내가 답답했다. 왜 못 버리고 문을 닫아야만 하는 걸까. 대단한 지구 보호자도 아니면서 그런 척하며 살고 있다. 지난주에는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문 닫고 나가자." 내가 자는 방에도 정리가 되지 않아 지저분하다.
눈을 감으며 혼자 말을 한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지 말자. 있으면 있는 가보다 무심히 넘기자'라고. 나의 게으름과 핑계가 아주 멋들어지게 맞아서 계속 머물고 있다. 요즘은 주택이 재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재개발이라는 말은 수십 년도 더 끌고 있다. 남편이 재개발 사업에 관여를 하고 있어서 이삼 년 내로 소식이 있을 것 같다고 전해준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는 멀쩡한 물건들이 수북하다. 산책하며 바라보면 버리는 사람들이 한심하다. 바라보는 사람은 버리지 못해 더 안타까우면서… 쓰레기라는 이름의 것들이 윤회를 하고 있다. 윤회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내 손자 및 이후 세대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금호강변으로 나가 보면 눈으로 보인다. 그러나 너도나도 버릴 줄만 알았지 치우지 않고 있다.
지난번 태풍이 불 때 밤새 비가 내렸다. 거실 창으로 금호강 잠수교가 삽시간에 잠겼다. 손자를 유모차에 태우고 강둑 산책로로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안심 습지대'라는 명칭이 있으며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이기도 하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 위로 생활쓰레기들이 둥 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새들이 불어난 수량으로 습지대를 의지하면서 살던 의지처를 잃어 분주히 날아다녔다. 분명 키우던 새끼들도 잃었을 터인데…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장마로 물이 불어난 금호강 수면에 둥 둥 흘러가는 빈 병.
아래 사진: 잠수교가 드러났다.
온갖 생활 쓰레기들이 곳곳에 모여 있었다. 불어난 물은 나무의 중간을 넘어섰다.
댓글8 공감 19
공대생의 심야서재 Sep 24. 2020
버려져야 할 것들은 마땅히 그래야 할까요? 가끔은 그런 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혜나무 Sep 24. 2020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택배가 늘면서 예전에는 사흘에 한 번 오던 재활용 쓰레기 차가 요즘은 거의 매일 오더라구요.ㅜㅜ
우리는 그럭저럭 산다해도 아이들이 사는 환경은 기후변화에다 쓰레기에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으려나 몰라요.
있으면 있는가보다 하는 마음도
또다른 비움일텐데 요것도 안되네요 저는 ㅜㅜ
가진 것이 없어 비움이 힘든 걸까요...
윤혜진Sep 26. 2020
아..뉴스로 보던 것을 에세이로 읽으니 더욱 공감이 되네요. 많이 안타깝습니다..
정 혜 Sep 28. 2020
오늘도 승강기 안에서 버리러 가는 젊은 주부를 만났습니다.
속으로 "버리면 그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나요?"
댓글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가위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정 혜 Sep 28. 2020
못 버리는 것도 게으른 저의 변명이지요.
조금 더 있으면 세월이 저절로 비우게 만듭니다.
그저 혜나무님은 우아하게 글만 쓰시면 됩니다.
추석 내내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정 혜 Sep 28. 2020
공연히 마음 심란하게 해드린 것 같아서 송구합니다.
또 그런 대로 그런 세월이 펼쳐지리라 사려됩니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연휴 내내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상선약수Oct 01. 2020
애초에 버릴 것을 만들지 않도록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하려 노력하는 요즘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해지고 가볍게 살고 싶은데... 작가님의 댓글에 적으신 것처럼 세월이 비움을 도와주면 좋겠어요^^
정 혜 Oct 02. 2020
ㅎㅎㅎ
고맙습니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학생들로부터 느끼는 점이 많아서 빨리 비워내실 것 같습니다. 지금 노력하고 계시는 것이 보이는데요.
상선약수가 그 해답입니다.
Sep 24. 20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