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가 하기싫으네요

by 정 혜

Day 11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청소가 가장 하기 싫다. 설거지와 빨래도 하기 싫다. 빨래가 밀리면 입을 속과 겉 옷이 없으니 세탁기를 돌려야만 한다. 그리고 설거지는 그릇이 몇 개 되지 않으니 얼른 씻어버린다. 또 남편이 빨래나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잔소리를 해서 듣지 않으려고 해 버린다. 그런데 남편이 청소에 대해서는 의외로 이러쿵저러쿵 말이 없다. 청소는 일단 마음이 찝찝하지만, 노안이 심한 내 눈으로는 먼지가 잘 보이지 않아서 핑계 삼아 더 하지 않는다.


근래는 사위가 출근 전에 바닥청소를 해주고 나간다. 그래서 밀대를 거의 잡지 않는다. 아직은 더위가 남아 있어서 거실 창을 열어둔다. 손자가 바닥에 떨어진 아주 작은 것도 집어서 입에 넣는다. 그것이 거북하여 가끔 미는 청소도구를 이용하면 도시의 오염된 검은 먼지가 묻어 나온다. 오염된 먼지나 일반 먼지는 공기가 옮겨놓기 때문에 음식에도 내려앉는다. 그런데 내 딸과 사위는 덮지 않았다. 여러 차례 덮으라고 말을 했지만 하지 않아서 말없이 내가 한다.


언젠가 TV 시청하면서 본 장면이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생각은 나지 않는다. 단지 퇴임한 남자의 일상이었는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그는 서울 큰 은행의 중역으로 퇴임하였으며, 이혼한 채 가족과 떨어져 혼자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식사는 밥을 삶아 먹는 예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가스레인지와 냄비는 전분이 끓어 넘치고 타서 묵은 때가 되어 새카맸다. 그리고 그는 커다란 가방에 책을 가득 채워서 들고 다니며 읽었다. 하루 한 권, 한 페이지, 들고 나온 책을 번갈아 가며 읽는다고 했다. 그것도 원어로 된 책.


그는 경제에 관련된 영어회화 강사였다. 수강생들의 제의를 받아들여 강의하면서 끊임없이 원서를 읽는다고 했다. 독서는 두뇌를 녹슬지 않게 계발하는 것이라며 죽을 때까지 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의 집은 책으로 덮여서 자는 자리만 빠꼼한 기억이 난다. 청소는 당연히 하지 않는다고. 그런 태도가 가족들과 헤어진 이유였지만, 그는 하나도 불행한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청소, 설거지, 빨래를 하지 않아도 전혀 걸림이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강사가 생각난다. 걸림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인상 깊었지만, 가스레인지와 낮에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자는 장면이 잊히지 않았다. 그는 주관과 자신감으로 무장된 사나이였다. 그런데 나의 청소는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뒤를 닦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많다. 그러면 청소기를 돌린다. 아니면 미는 걸레로 밀고 다닌다. 그것도 마음이 내켜야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나는 하기 싫은 것은 거의 하지 않는다. 단순히 처리해 버린다. 그런데 이 청소만큼은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청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내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면 게으름을 더 이상 부리지 않았지 싶다. 그렇지만 청소를 하는 것은 내면의 먼지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고 말들을 했다. 나는 여기서 걸리는 사람이다. 나의 내적인 성장에 영향을 주는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 아주 단순하게 살 것이다. 청소하려면 걸리고, 들었다 놓아야 하는 자질구레한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해보고 싶다. 아무래도 잡다한 인생사를 단출하게 꾸려가는 지혜를 더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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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대문 사진: 딸의 아파트 큰 길 건너에는 박 주영 축구장이 있다. 그쪽을 올려다보며 찍은 하늘.

아래 사진: 아파트 단지 내 감나무의 감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099976672




댓글 7 공감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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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며느리 Sep 26. 2020

마냥 깔끔하고 부지런하실 것만 같은 정혜님이 청소, 빨래, 설거지가 싫다시니 저도 맘껏 싫어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ㅎㅎ 잘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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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샬롬 Sep 26. 2020

저도진짜 청소싫어요ㅜㅜ

나이드니 더하기싫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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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무 Sep 26. 2020

저도 새집으로 이사가고 싶습니다. 이사가게 된다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정말 필요한 것만 놓고 살고 싶습니다. 청소도 쉬울 것 같구요. 덜어내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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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ogo Sep 26. 2020

청소는 내면을 청소하는 것과 같다고 하니 앞으로 청소도 부지런히 해야 되겠다. 모든 청소는 남편이 다하고 난 씽크대만 청소하고 밥하는데 앞으로 신경을 좀 더 써야 되겠다. 글 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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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Sep 27. 2020

@날라리며느리

ㅎㅎㅎㅎ 저랑 차원이 다른 세계를 살고 계시니 비교는 금물 입니다요.
하기 싫을 땐 좀 미루었다가 해요. 먼지도 먹고 살아야 코로나를 이길 수 있답니다. ㅎㅎㅎ

둥근 달을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멋진 글 구상하는 시간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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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Sep 27. 2020

@항상샬롬

먼지 먹고 살아도 이상이 없으니 편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으네요.
이 글을 읽으면 놀라 넘어지지 마세요, 먼지 먹으랬다고요.

공감해줘서 고마워요. 샐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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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Sep 27. 2020

@혜나무

오늘도 집에 왔는데 '저거 언제 버려야 하지?'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요.
이사 가면 좋겠는데 언제 재건축 동의를 다 할 지 갑 갑 합니다.

'더 도 덜 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즐거운 연휴 되시기 바랍니다.


Sep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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