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중죄금일참회

by 정 혜

Day 12 가장 최근에 했던 실수담 한 가지를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 실수를 어떻게 만회하고 개선했는지도 얘기해 주세요.



나는 실수투성이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하지 싶다. 오래전 같았으면 후회하느라 소화제를 먹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그 실수에 대해서 너그럽게 대처한다. 그런데 두고두고 가끔씩 부끄러워지는 나를 볼 때가 있다. 시일이 지나면서 그 농도가 조금씩 옅어지기는 한데 여전히 잊히지 않고 얼굴이 붉어진다.


한 십여 년이 되었나. 어머니께서 하던 사업이 폭삭 내려앉았던 시절이었어.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아는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파산신고를 하려고 나섰단다. 그때 나는 지인의 가게를 무보수로 돌봐주고 있었어.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바로 그곳으로 가려고 집에서 화분 하나를 들고 나왔어. 그 화분은 가게에 오는 손님이 내게 주었는데 아, 글쎄 이 양반이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는 거야. 받을 사람이 나보고 갖다 달라고 하여 들고나갔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변호사 사무실은 4층인지 오층인가 그랬을 거야. 비 오는 날 들고 나왔더니 계단을 오르기가 싫은 거야. 그래서 나는 생각을 했지. '설마 이 별 것도 아닌 화분을 누가 들고 가겠어.' 어머니가 계단을 올라가면서 "야이 야~, 그거 안 들고 가도 되겠나?"라며 물으시는 거야. 나는 아주 호기롭게 "하이구~, 이런 거를 누가 들고 갑니꺼. 들고 갈 사람도 없심더. 가입시더." 나는 남이 내게 가지라는 말을 하기 전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거든.


계단을 올라가면서 뒤돌아 봤다, 보이지 않는 그 누구를 믿어도 될지 하면서. 어머니가 재차 걱정스럽게 물었어. "지 놈도 양심이 있을 낀데 안 들고 갑니더."라고 말하면서 나 자신을 믿듯 "들고 갈라카마 들고 가라카이소오…" 나는 무슨 똥 배짱으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계단에서 상대를 그렇게 믿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말씀에 쐐기를 박듯 하고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단다.


이미 예고된 방문이어서 한 십여 분도 안 앉아 있었을 끼다. 나오면서도 어머니가 "그거 잘 있겠제?

"라고 물으시는 거야. 나도 약간 걱정이 앞서기는 했지만 끝까지 호기를 부리며 내려왔단다. 세상에,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다 있겠나. 참말로 화분 있던 자리에 빗물만 남아 있는기라. "하이고~~ 야이 야, 이일을 우째야 되노~" 평소에 '걱정도 팔자'라고 별명이 붙은 노모가 태산이 무너지는거 있제.


아래 위층, 동서남북, 전후좌우 다 둘러봐도 없더라.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카디 참말이더라. 노모가 내 눈치만 보는 기라. 그래서 "이왕 가져갔는 거 잘 키우기나 했으마 좋겠네예"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은 했어. 그러나 내가 가져가라고 했는기나 다름없는 말을 내뱉었으니… 내 한테 성이 막 나는기라. 그런데 내가 가게에 가가 지인에게 무슨 말로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그기 또 걱정인기라.


그 지인은 한 번 물은 것은 끝장을 보는 사람 이더라. 이해가 안 된다면서 몇 날 며칠 물고 늘어지는데 내가 씻껍을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누군가가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내 자신에게 '어이구~ 이 빙신아'라며 넋두리를 다 했다카이. 지금도 '우째 그리 어리석었는지…' 라 칸다. 그녀는 잊어졌는데, 내가 한 말은 잊히지가 않네.


기어(綺語), 비단처럼 번지르한 말을 뜻한다. 내가 적절하지 않은 때에 근거 없고 무절제하고 이익되지 않은 말, 즉 기어를 범하는 무지한 행위를 했다. 기어는 비말(飛沫)이 되어 화분을 잃었으며, 또 가져간 사람을 도둑으로 착각하는 우(愚)를 범했다. 그리고 지인에게 기가 질릴 정도로 당하는 과보를 겪었다. 과보는 잊었지만, 시의적절하지 못했던 말의 실수는 서서히 퇴색해 가고 있다.


희미해져 가는 과거가 나를 바로 세우기도 하지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말조심을 무척 하며 살아간다. 말은 우선적으로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바른 사고가 가능하다. 그리하여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다. 나 나름대로는 바르게 산다고 자부하던 시절에 그런 언행은 시건방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사건 이후 날마다 바른말을 구사하고, 긍정적인 표현을 하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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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아파트의 큰길을 건너면 안심체육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억새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정말 좋다.


아래 사진: 경주 불국사의 천왕문.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이 종아리 사이에 인격화시킨 악마를 짓누르고 있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입이 비뚤어져 신음소리도 겨우 내는 것 같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07886864




댓글 10 공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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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풍차 Oct 06. 2020

문우님! 애타셨겠지만 저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적절히 구사되는 경상도 말씨가 정겹습니다.
그런데 누가 가져갔을까요? 주인이 있는 화분이라는 걸 뻔히 알텐데 ㅎ
기어라는 낱말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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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ogo Oct 06. 2020

정헤님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정혜님의 말투와 제스츄어가 막 그려지더라구요
훈훈하게..
실수하는 가운데 사랑이 넘쳤어요..
기발한 글솜씨에 푹 빠졌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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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06. 2020

실수는 늘 할 수밖에 없죠. 인간이니까요. 실수 안하면 기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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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무 Oct 06. 2020

그 '말'이라는 게 신기하더라구요. 감기가 한창 유행일때 주위에서 저만 안 걸린거예요. 그래서

'난 끄떡없다'라고 내뱉은 다음날 덜컥 감기에 걸려 버리더라구요. ^^. 항상 장담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거겠죠.

오늘 작가님 글의 제목이 너무 어러워서 어떤 내용일까 했는데, 본토 ㅎ 말로 이야기를 엮어주시니 그 분위기가 막 살아서 영화처럼 보이네요. 저도 말조심, 그리고 긍정적 사고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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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Scott ParkOct 07. 2020

정혜님의 실수라기보다는 그 화분을 훔쳐간 놈(?)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괜찮겠지 하고 단지 그냥 놓아둔 화분때문에 엄청 맘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인생을 배우라는 부처님의 뜻이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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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08. 2020

@언어풍차

ㅎㅎㅎㅎ
이미 지난 일인 걸요.
저가 실수 했으니 두 말할 염치가 없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언풍님 글 읽으러 가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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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08. 2020

@gogogo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마님 글도 읽으러 가겠습니다.
지금쯤은 컴퓨터 앞에서 글 쓰고 계시겠지요?
글은 많이 쓰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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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08. 2020

@공대생의 심야서재

ㅎㅎㅎ
위로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밤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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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08. 2020

@혜나무

정성이 깃들인 댓글을 읽을 적마다 혜나무님의 마음을 엿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결이 이렇게 고운 분이 거칠어빠진 남성들 속에서 20년을 근무하셨다니...
아마 글 쓰시느라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혜나무님 글도 빠르게 읽으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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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08. 2020

@박유신 Scott Park

저의 편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적으로 경솔했던 저의 말 실수이므로 상대방을 지금까지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써야만 방해를 받지 않는데, 어제와 오늘은 일정이 어긋나서 글이 밀리는 실정입니다.
이유는 저의 이쁜 손자 때문입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Oct 06. 20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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