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 아니고 무우
Day 13 부모님이 해주신 음식 중에서 가장 최고였던 것 한 가지를 써봐요
내 어머니께서는 손재주가 뛰어난 분이다. 내가 살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손재주 많은 사람들은 입과 몸놀림이 부지런하였다. 고로 영리하다는 말이다. 어머니는 참으로 총명하였다. 어쩌다가 나는 그 영특한 머리를 반도 닮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둔하다고 쥐어박히고, 욕 얻어먹는 것은 예사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욕심을 채웠더라면 그렇게 '모질다'는 평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음력으로 12월이면 양력으로는 대개 1월이다. 이때쯤 무우를 채쳐서 소금에 살짝 절여 물기를 뺀 뒤 고춧가루로 색을 낸다. 삶은 무우 시래기는 겉껍질을 벗겨내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서 물기를 꽉 짠다. 시래기는 무우 채와 섞어서 된장, 마늘 다진 것, 깨소금 및 참기름으로 버무리면, 나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에
밥을 더 먹게 된다. 경상도가 아닌 남편과 혼인을 하니 이 무우시래기 무침을 해먹을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무우시래기 무침을 했다. 남편도 좋아하리라 상상하면서. "남편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음식을
만들어! 이것도 반찬이라고!" 남편이 밥상머리에서 얼굴이 붉어지도록 면박을 주었다. 무우시래기 무침은 시래기가 거무티티해서 된장으로 무치면 화려한 색감은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우선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생전 보지도 않던 음식이 올라와 있으니 거부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끔씩 나와 딸이 좋아하여 만들어 먹었다.
무우시래기 무침은 거의 해 먹지 않는다. 내가 부지런하다면 얼마든지 시래기를 삶아서 해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아하는 딸은 직장 생활로 외식이 잦고, 막매 아들만 식성이 피자나 라면을 좋아하여 만들 기회가 줄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수원에서 대학교를 다니게 되어 조리할 시간이 자꾸만 짧아졌다. 졸업 후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선동이는 시집가고, 후동이는 독립하여 달랑 부부만 집에 남았다.
현재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일은 없다. 손자 돌본다는 핑계로 딸의 아파트에 우리 부부가 입성해버렸다. 이제 무우시래기 무침은 참으로 만들기 어렵고 먼 나라의 음식 같이 여겨진다. 나는 돌이 지난 손자에게 붙들여서 반찬을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두루치기나 김치찌개를 만든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제법 맛깔스럽게 해 주었다.
무우시래기 무침하면 어머니가 생각나야 말이 된다. 그러나 무우시래기 무침보다는 지난했던 생활로 찌들을 대로 찌든 어머니의 강도 높은 집착만 떠오른다. 물론 어느 시점부터는 그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어머니의 집착은 나로 하여금 멀리 도망가도록 만들었다. 내 마음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옥죄어 오는 인연이라는 고리.
무상(無常)한 세월은 내가 변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사업이 실패하자 내면의 세계로 파고들었다. 내려놓았다는 집착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말 그대로 무우시래기 무침처럼 어두워졌다. 담백하고 깔끔한 노후가 되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우중충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나도 자식들이 제각자의 길을 걸으며 외로워지는 시간이 되었다. 동병상련으로 어머니의 노후를 맛보았다.
어머니의 집착은 내게서 옅어졌다. 또 좀 더 일찍 어머니를 포용하지 못했던 나의 옹졸함이 부끄러워진다. 두텁게 나를 옭아매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이 나의 변명이다. 벗어나 봐도 별 뾰족한 것은 없다. 아니 한 가지 있다. 드넓은 가을 하늘에 구름이 드문드문 있는 내가 보인다. 무우시래기 무침 색은 짙어서 맛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먹어 보면 뒷 맛이 개운하다. 내 어머니와의 관계 색이라고나 할까.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아파트 단지 내 감이 익어가고 있다. 풍성하여서 입맛이 다셔진다.
아래 사진: 아파트 건너 안심체육공원에 억새밭이 조성되어서 이 가을의 정취를 온 몸으로 느낀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09654664
댓글 29 공감 30
Chong Sook Lee Oct 07. 2020
네. 작가님
세월따라 음식도 달라지고
우리네 마음도 달라지고 변한네요.
맛있는 시래기 된장국 대신에
피자를 먹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때가 그리워지네요.
항상샬롬 Oct 08. 2020
옛맛 어머니맛 할머니맛이
최고인듯해요
상선약수 Oct 08. 2020
저도 경상도 사람이라 어머니가 해주시는 거무튀튀한 시래기 무침을 먹고 자랐어요. 아주 어릴 때는 맛없는 음식으로 치부했는데 자라면서 언젠가부터 저도 그 담백한 맛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가족간의 관계도 담백하면 참 좋을텐데 그쵸... 집착과 애착, 사랑 그 어디쯤에 있는지.. 평생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애잔함이 묻어나는 글이 가을의 정취와 어울려 더욱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옵니다.
혜나무Oct 08. 2020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지만 마침 집에 시래기가 있어 무하나 사다가 만들어 먹어볼까봐요. 인터넷 검색하면 자세한 레시피가 나올려나요? ㅎㅎ
음식에서도 가부장적인 모습을 놓치지 않으셨던 작가님 남편분께서 손수 찌개를 끓이시다니 세월은 여러가지로 묵은지처럼 남은 시간들을 맛깔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지난한 삶 속에서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셨던, 어머님에 대한 작가님의 마음도 이렇게 비로서 이렇게 표현되고 읽혀지니 말입니다. 어머니...우리 존재의 그림자..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08. 2020
무우시래기 무침과 어머님과 이렇게 연결이 되네요. 시간이 무심하게 지나서 어머님을 포용하고자 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이 됐어요. 우리는 누구나 세월이 지나야 과거의 나도 누군가도 받아들이게 되나 봐요. 잘 읽었습니다.
정 혜 Oct 09. 2020
'無常한 세월'이라는 말이 맞지요, 작가님?
피자 보다는 김치와 된장찌개가 더 좋으니 어쩔 수 없는 노인 입 맛인가 봅니다. ㅎㅎㅎ
공감의 글 고맙습니다.
정 혜 Oct 09. 2020
할머니, 엄마의 손 맛에 길들여져서 인지 맛이 제일 좋더라 구요.
저녁 식사 하셨어요?
편안한 시간 되시고요.
정 혜 Oct 09. 2020
우리 선생님도 그러셨구나.
ㅎㅎㅎ
선생님께서 부끄러운 부분을 공감해 주시니 좋으면서도 머쓱 해집니다.
저의 일상이 바빠서 선생님 글 읽으러 갈 여유가 없네요.
주말이니 곧 읽으러 가볼게요.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gogogo Oct 09. 2020
무우시래기 진짜 영야가많고 구수하고 깔끔한맛
최고지요. 그맛이 어머니와 관계랄까 말씀에 역시 깊은 관계 서로가 은근히 믿어주는관계
이렇게 또 표현이 되네요
구수한글 잘읽었습니다.
정 혜Oct 09. 2020
무우 시래기 무침 해서 잡수셨어요?
혜나무님의 댓글을 저도 화장실에 앉아 읽으며 바로 검색을 해봤어요.
그런데 맛이 어떠했을 지 궁금합니다.
세월이 약이네요.
고지식했던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조리를 해서 먹으라고 권하니 말입니다. ㅎㅎㅎ
손자 덕분에 호강하고 있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 하시구요.
정 혜 Oct 09. 2020
공심님, 고맙심데이~
사유 적인 글을 써보려고 구상은 하면서 글로 연결이 되지 않고 있네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용!
일과삶 Oct 09. 2020
무우시래기로 시작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전 시래기 좋아해서 잘 먹을 자신이 있는데 말이죠 ㅎ~
정 혜 Oct 09. 2020
@일과삶
토론 시간에 서울 분인 줄 알았더니 부산 분이라고요?
무우 채와 시래기를 합쳐서 무쳐 잡숴보시면 아마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옥돌여행 Oct 09. 2020
무우시래기 무침.. 어릴 적 추억을 부르는 맛.. 군침이 도네요.^^ 이제 과게에 못해본거 맛껏 누리시길요~^^
꼬마마녀 Oct 09. 2020
무우시래기 무침은 작가님에게 그런 맛이자, 추억이며, 어머니로 연결되는 군요.
글중 손재주가 좋은 사람에 대한 표현은 작가님의 오랜 경험담이시군요. ㅎㅎ
어릴 적 저도 어머니가 해주셨던 적이 ~.
작가님 글 잘보고 가요
강지원 Oct 10. 2020
정감 있고 푸근합니다.^^
화몽 Oct 10. 2020
제게는 엄마표 탕국이 있지요. ㅎㅎㅎ 지금도 잘먹지 않지만 떨어져 있으면 그 내음이 어찌나 그리운지요.
정 혜 Oct 11. 2020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번 만들어서 맛을 보세요.
상당히 매력적인 맛이랍니다.
일요일 오늘 푹 쉬시고 내일 글로 또 만나요.
정 혜 Oct 11. 2020
코스모스님은 글 재주가 뛰어나시니 음식 솜씨도 엽렵하지요?
안 봐도 다 보이는데요.
손자 돌보느라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을 여유가 없어요.
곧 코스모스님의 글을 읽으러 가야겠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정 혜 Oct 11. 2020
일요일 잘 지내고 계시지요?
지원님의 글도 빨리 보고 싶어집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정 혜 Oct 11. 2020
만나보면 시들해지고, 헤어지면 그리운 것이 우리네 심성인가 봅니다.
북경의 날씨는 어때요?
일요일 오늘도 잘 지내시기를요!
희망 Oct 11. 2020
무우시래기 무침에 밥을 비벼 먹으면 참 맛있어요. 어머니가 가끔 해주시는데 예전에는 요리하는 일의 수고로움을 몰라서 그저 맛있구나.. 하고 말았네요. 요즘엔 엄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 가끔 하나씩 그리워요. 나물을 잔뜩 무쳐서 고추장에 슥슥 비벼 먹던 날이 그립네요. 가족과의 관계도 무우시래기 무침처럼 담백하면 좋을텐데 쉽지 않네요. 추억에 잠기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정 혜 Oct 11. 2020
맛을 아는 희망님이 게셔서 신이 납니다.
공감하면서 써준 댓글 또한 공감이 됩니다.
일요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하이북 Oct 13. 2020
시래기무침에 얽힌(?)재미있는 글입니다. 저도 무우 시래기무침은 아직 안먹어봤는데 그 맛이 궁금합니다ㅎ
성실한 베짱이 Oct 16. 2020
무우시래기 무침이라. 작가님의 어머니, 남편, 자식들과의 추억이 이 음식에 담겨져 있군요. 한 번도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지만 작가님이 느끼셨을 몽글함, 짜증, 아쉬움, 기쁨은 충분히 느껴집니다. 저도 조금은 위로를 받고 가네요. 글로 위로해 주시는 작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영우 Oct 20. 2020
무우시래기 무침의 색깔과 어머님과의 관계의 색깔이 이렇게도 연결이 될수도 있군요~~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왜 항상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때는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까요? 그 때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 혜 Oct 22. 2020
그 맛은 무우와 시래기가 된장에 어우러진 맛인데 무척 담백하답니다.
인터넷 검색해서 한 번 맛 보시기를 권합니다. 건강식품이거든요.
편안한 밤 되세요.
정 혜 Oct 22. 2020
경상도 분이 아니면 모르는 음식일 수 있어요.
언젠가 보왕삼매론이라는 글이 저의 마음을 붙잡아 주었어요.
위로 받고 싶은데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헤매일 때 만나 마음의 심지로 삼고서 외우다시피 했답니다. 생활에서 적용하며 저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지요.
격려의 글 고맙습니다.
정 혜 Oct 22. 2020
영우님의 댓글을 기다렸어요.
어떤 관점으로 보았을 지가 궁금했답니다.
살뜰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Oct 07. 20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