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다른 사람과 꼭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그 사람과 왜 같이 가고 싶은지도요
손자의 자장가는 '누이'다. 손자가 태어나서 약 3개월 뒤 코로나가 세상을 뒤 흔들면서 주 3회 다니던 스포츠 댄스 교실이 완전히 문을 내렸다. 딸이 스포츠 댄스 22년 차인 내게 두문불출을 요구하였다. 막막했던 나는 운동 차원에서 손자를 업고 손전화기로 설운도 씨의 누이를 재생시켰다. 아이를 재울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어찌 되었건 신통하게 잘 잤다. 잠이 들기 어려운 손자가 그 바람에 잠이 들었고, 나는 대략 천 여보 걷는 효과를 냈다. 돌이 가까워 오면서 누이에 이어 싫어하지 않는 대중가요가 자동으로 나왔다. 그중에 최 성수 씨의 '해후'가 있었다.
그동안 그저 노랫가락이 좋아서 끄지 않았다. 무심히 듣기만 하던 중 해후의 가사가 궁금하여 귀 기울여 음미했다. "~창 넓은 찻집에서 다정스러운 눈빛으로~" 현재 이런 딸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창이 넓은 거실에서 차를 마실 여유는 없다. 하나 카페에 가서 조용히 노래처럼 낭만에 젖고 싶은 생각은 조금 있다. 그런데 나는 내 돈을 내고 카페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근래 가끔 같이 가는 유일한 사람은 나의 사돈이다.
나의 딸 후동이를 만나야만 한다. 딸은 수원에서 독립하여 살며 새로운 문화로 나를 이끌어 주는 선구자다. 손자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제사와 설, 추석 명절과 시가(媤家)의 행사로 상경하는 예가 많았다. 그럴 때는 미리 올라가서 딸과 데이트를 한다. 딸은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국악원,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에서 전시하는 표를 예매해둔다. 우리 모녀가 카페에 들어간 적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없다. 대신 전시회를 관람하며, 이동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끊임없이 다방면으로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이 딸과 문화생활을 즐긴다.
한 번은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에서 '간송과 백 남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있었다. 신구(新舊)의 결합은 마치 우리 모녀와의 관계 같았다. 오래된 것과 근래의 충돌, 결합 그리고 어울림이 있는 전시회였다. 그 날의 나와 딸은 집을 나서기 전부터 언쟁이 오갔다. 버스와 지하철 속에서 팽팽한 감정의 설전이 계속되었다. 딸은 나의 말 하나하나를 꼬집어 지적하면서 가르치려 들었고, 나는 붙잡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나와 딸이 평행선에서 만났다. 냉기류가 떠돌던 지하철 안이 온기류로 따뜻해졌다. 그때 우리 모녀는
'상대를 인정해주는 발언' 그리고 '상대방을 수용하는 태도'를 배웠다. 다시 손을 잡았다. 다음 날은 새롭게 부딪혔다. 나는 내 딸을 인정하는 말을 연구하였으며 기회를 노렸다. 딸에게 말재주 없는 엄마를 이해해 달라며 수용을 부탁했다. 딸은 딸대로 내게 인정하여 주어서 고맙고, 포용해 달라며 애교를 부렸다.
전시회 내내 훈훈했다. 딸은 동대문 역사 문화공원 부근 카페 쿠폰으로 커피를 마실 거냐고 물었다. 우리는 들고 나오기로 합의하였다. 그것을 하나씩 들었다가 귀찮아서 다 버렸다. 코로나가 진정되어서 내가 상경을 한다면, 내 딸은 어디 괜찮은 북카페에나 가보자고 할 것 같다. 만약 하지 않는다면 카페가 아닌 곳으로 나를 안내할 것이다. 나는 내 딸이 추천하는 곳은 무조건 수용한다. 딸의 안목이 뛰어나서 내가 배울 것 이 많기 때문이다.
깊어 가는 이 가을에 나는 누구랑 카페에 가보나. 아, 사돈이 보름 전 대구 팔공산 자락에 새로 생긴 카페로 이끌었다. 산기슭에 산세를 이용하여 지은 카페는 창이 넓었다. 그리고 골짜기의 물을 이용하여 대형 카페 옆으로 시냇물이 흘렀다. 손님이 없을 거라는 이유로 갔지만 인산인해였다. 가족이 동반하여 즐길 수 있는 카페였으므로 나와 무관한 곳이었다.
나는 방콕에 머물며 글 쓰는 것이 참 좋다. 하루 종일 들어앉아 글을 써도 질리지 않는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내게는 창이 넓을 필요도 없다. 눈이 피로하면 화단으로 나가서 눈길을 돌린다. 또는 옥상으로 올라가서 화분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나는 커피 대신 덖음차를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카페 대신 조용한 전통찻집에나 가서 차향을 흠향해 볼까나. 그런데 전통찻집도 위치를 알아야 찾아 나서지…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11층 거실에서 바라 본 가을 날의 초저녁 풍경이다. 창 넓은 찻집은 바로 저 앞의 풍광이 좋은 자연 카페다.
아래 사진: 박 주영 축구장 옆에는 축구장보다 더 넓은 잔디밭이 있다. 손자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 김에 가을을 만끽했다. 이 이상 더 좋은 카페가 어디 있으리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10650096
댓글 10 공감 20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09. 2020
방콕하면서 글쓰는 거 참 좋죠. 하지만 따님과 티격태격하더라도 전시관도 가고 역사공원에 가는 건 더 좋겠죠.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Chong Sook Lee Oct 09. 2020
유행가가 자장가가 되니 일석이조 이군요.
할머니는 흥이나고
손자는 코..하고
참 좋은 아이디어인데
코로나 때문에
손주들을 못만나네요.ㅜ
상선약수 Oct 09. 2020
작가님의 글은 항상 유머가 있으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함께 옵니다. 누이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손주를 재우는 작가님 모습을 상상해보며 혼자 미소 지었습니다. 마침 저도 오늘 친정어머니 모시고 단둘이 분위기 좋은 카페를 다녀왔어요. 베트남에서 돌아와 둘만의 데이트는 처음이었네요. 갤러리를 겸하고 있는 정원이 넓고 예쁜 카페였어요. 가을 햇살 가득한 창넓은 카페에 앉아 엄마랑 오붓한 시간 보냈지요.
저도 산사에 있는 조용한 전통찻집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그런 곳에도 온통 카페가 자리를 차지하여 전통찻집은 찾기가 더욱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고즈넉한 전통찻집에서 작가님과 차 한 잔 하고 싶은 휴일 오후입니다^^
박유신 Scott Park Oct 11. 2020
지하철에서 따님과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따님께 전통찻집 어디가 좋은 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알려달라고 하면 5분이내에 답이 올 것 같습니다. 그 찻집의 창가에 앉아 최성수의 해후를 낮게 불러보시면 어떨까요?
정 혜 Oct 11. 2020
코로나가 전시회에도 못 가게 해서 데이트 한 지 손을 꼽아도 됩니다.
딸내미 손 잡고 이 가을을 만끽하고 싶어지네요.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 혜 Oct 11. 2020
손자가 자장가를 울리면 저의 등에 얼굴을 옆으로 하여 댑니다.
그런데 우리 작가님은 못 보셔서 많이 보고 싶겠어요.
그래도 화상통화를 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정성스런 댓글 고맙습니다.
정 혜 Oct 11. 2020
언제 상선약수 선생님 만나면 저가 직접 차를 우려서 대접하겠습니다.
한 일 년 다도 강사를 한 사람이라 아마 입 맛에 맞으실 겁니다.
진실한 댓글을 써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답글 빨리 못 쓰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 혜 Oct 11. 2020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딸은 저와 취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딸의 추천 곡을 유신 님에게 알려드릴게요, 한 번 들어보세요.
'막 문위의 애정'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용!
혜나무 Oct 11. 2020
예전에 제 아들녀석을 시어머님께서 두살때까지 봐주셨거든요. 그리고 유치원 다닐 때 방학이면 할머니집에서 보냈어요. 아침, 저녁 드라마를 다 꿰고 있어서 얼마나 웃었던지요. ^^
작가님 손자도 말 할 때쯤이면 '누이'랑 '해후'를 흥얼거릴 것 같아요.
따님과 서울 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문화도 접하시고 무엇보다 사돈분과 카페에 가시다니 정말 좋아 보이세요. 저도 커피보다는 차를 좋아하는데 좀 비싸더라구요.ㅎㅎ. 전통차집의 진한 쌍화차도 좋아한답니다.
작가님, 남은 오후도 이 글처럼 평안하시길요...
정 혜 Oct 11. 2020
혜나무 님 브런치로 옮기려고 하는 차에 댓글을 먼저 봅니다.
누이는 따라 불러 댈 것 같은데요.
우리 언제 서울 괜찮은 전통찻집에서 만나요.
저가 덖음차를 잘 우려서 혜나무님께 드리고 싶어요.
혜나무 님도 좋은 시간 되시기를요.
Oct 8.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