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에 무한질주만

by 정 혜

Day 17 가장 최근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 그 여자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꿈속에서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남편은 업무를 마치고 술을 마시면서 가끔 전화를 내게 하여 옆에 앉은 여자를 바꿔준다. 그럼 나는 그 여자에게 남편이 허튼짓하지 않더냐고 되려 묻는다. 그리고 힘들게 하거든 내게 알리라고 응수하며 전화를 끊는다. 그런 내가 여자를 밤새 떼어내면 또 생기고…


아주 오래전에 꾼 꿈이지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꿈이다. 90년대 후반 남편의 장군 진급 심사가 있었다. 장군은 하늘에서 내린다는 말을 들었다. 하늘에서 내릴 정도로 어려운 일이면 나의 기도가 크게 작용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실력과 운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남편은 그때까지 대통령상을 두 번 받은 상태였고, 대위 시절에는 '강 재구 상'까지 받은 선두주자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주위에서도 장군은 따 논 당상관이라고 이구동성이었다.


92년 연말 중령에서 대령 심사 때는 보름 전부터 계획을 세워서 기도를 했다. 대승불교에 입문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한참 물불 모르고 기도하면 다 되는 줄 알던 시절이다. 오전에 남편과 아이들을 내보내고 출입문을 잠근 뒤 전화기 선도 뽑았다. 그리고 좌정하여 예불 책을 펼쳐서 혼자 법회의식 순서대로 독송했다. 이왕 하는 기도 접하지 않던 불경도 두루 섭렵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불경을 독송하다 보면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진급 축하 전화가 남편의 최고 전성기임을 알렸다.


그런데 더 중요한 시기에는 혼자만의 판단으로 조용히 있었다. 전적으로 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춘기의 아이들을 다루기 힘들어 한자 불경 사경을 하면서 잔소리 대신 행동으로 보였다. 나는 사경 하면서 남편의 승진을 간절히 발원했다. 남편에게도 한 마음이 되도록 염불을 권했지만 그는 일언지하로 거절.


어쩌다 남편이 군인에 대한 예우가 나쁘다고 불평한다. 전형적인 군인이었으며 청렴결백한 특별 공무원이었다. 대령 발표가 난 뒤 옆집 동료 부인이 동그라미 갖다 주지 않은 것으로 소문이 났더라는 말을 해주었다. 이 맹추는 남들도 다 그러는 줄 알았다. 남편이 최고 지휘관에게 오천만 원을 바치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내게 넌지시 입을 뗐다. 나는 뒷감당 못할 빚이 두려워서 직접 남편이 나서라고 진심으로 등을 떠다밀었다.


내가 통이 크지 못하여 장군 심사에서 누락된 것만 같아 종종 회한에 잠긴다. 간 큰 사람이 널 장사를 한다나. 내 손으로 오천만 원을 빌려서 관사로 찾아가 들이밀었다면… 승진이 되었다면 오만불손한 남편의 기는 더 거세졌을 것이고, 나는 교만해져서 남의 말을 경청하려는 꿈도 꾸지 않았을 테고… 그런데 나의 후회가 반전하는 날이 꿈같이 다가왔다.


내 집안 언니가 남편을 알았다. 언니는 남편과 생면부지인데, 경찰이던 지인을 통하여 장군 심사에서 누락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남편은 그 당시 친구를 좋아하여서 밤마다 술 마시러 나갔다. 그는 고속도로처럼 쭉 뻗은 사람이라 일방통행만 했으며 무한 질주하였다. 무한질주는 자동차에나 해당되는 용어이지 사람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꿈이다. 그의 얼굴은 피가 덜 닦인 채 새벽에 귀가했다. 음주면허는 무조건 꿈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어느 때부터 거의 꿈을 꾸지 않는다. 꾸어도 기억나지 않는 지저분한 꿈을 가끔씩 꾸긴 한다. 나는 잠이 들기 전 빨리어(語)로 삼귀의(三歸依) 염불을 매일 하다시피 하고 있다. 잠이 오는 날은 암송하다 잠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수십 번을 되풀이하며 잡념에 빠져 헤매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꿈을 꿀 여가가 없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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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대문 사진: 남편의 일방통행에 무한질주를 막았던 먹구름이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무한히 쏟아지는 것은

내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아래 사진: 남편이 퇴임한 지 20년 다 되어 간다. 나의 노년은 저 하늘 마냥 가벼워서 편안하다.



https://brunch.co.kr/@0814jsp/137




댓글4 공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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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무 Oct 13. 2020

정말 요상하고 기분 나쁜 꿈이네요.그래도 꿈속에서 조차 상대방을 배려하는 작가님...^^

별을 달려면 헉! 그러해야 했군요. 참... 세상의 것들에 취해계셨던 남편분과 기도로 마음을 다스리며 빌었던 작가님의 마음이 대조가 되네요. 일방통행 무한질주... 는 답이 아니었음을. 마음 다스림이 무의식조차 다스리게 되네요. inner pea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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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13. 2020

와 그래도 대통령상을 세번이나 받으셨네요. 충분히 축하받을 일이죠. 말씀하신대로 교만하게 살지말라는 꿈의 계시는 아니었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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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18. 2020

@혜나무

저의 글을 정리 잘 해주셨네요.
남편은 의지처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남이에요.
그래서 저의 길을 빨리 선택했고 자신을 돌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의 댓글 고맙습니다.
일요일 잘 보내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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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18. 2020

@공대생의 심야서재

그때는 교만해지더라도 진급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대우가 확 달라지거든요.
아쉬웠어요.
남편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의 편파적이고, 편협한 사고들로요.
인연이 아니었음을 시사하던 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Oct 13. 20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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