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우니 내려 놓을래?

by 정 혜

Day 21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 하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에 대해 써주세요.


얘야, 지금은 잠을 자고 있을 새벽이구나.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기가 무섭지 않니? 넌 무서움이 많은 것 같더구나. 네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면, 편안히 자라고 자주 하는 말은 밤에 잠을 설쳤을 것 같아서 권하는 거야. 그리고 아기를 보는 일이 은근히 힘이 든단다. 내가 한의원 가는 동안 손자를 돌봐줘서 정말 고맙다

.


너와 나는 8년 터울이지. 근래 손자 바람에 너를 가까이서 보며 대화를 나누게 되는구나. 내가 참으로 오랜 시간 허겁지겁 사느라 주위를 돌아볼 여지가 없었단다. 물론 그동안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어머니를 통해서 듣는 너에 관한 이야기들은 편파적이었고 일방적이었어. 그러나 너의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흥분한 엄마의 말에 동조하면서 귀담아 들어야 하는 내 입장이었단다. 그래서 엄마를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라고 표현한 것이야.


얘,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글로 표현한단다. 나는 네가 중견 화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워. 너의 프로필도 화려하지.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 특히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네가 더 잘 알 거야. 그래서 너는 동분서주했지만 결과는 항상 참담했어. 엄마는 그 점이 가슴 아팠고, 당신 사후 너의 앞일이 걱정이었지.


어머니는 임종 때 너를 기다렸어. 그런데 넌 엄마 곁에 없었어. 어머니가 우리와 이별하기 전 날 면회 시간 2분을 남기고 내가 중환자실로 다시 달려들어갔단다. 그리고 의식만 남아 있는 엄마의 흩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가 헤어져야 할 것 같은데, 막내 때문에 그러지요?"라고 물었더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더구나. 내가 너를 잘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단다. 그제야 얼굴이 편안해지더라.


달리는 말에게 채찍질을 한다더구나. 어머니가 너에게 더 빠르고 앞서 나가라며 표현한 말들은 감정적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갔고, 너를 궁지에 몰았다고 생각해. 엄마의 욕심이었지. 너의 그릇은 한정적이었고, 엄마의 욕심은 무한대였으니까. 욕심은 채울 수 없는 그릇에 채워 넣으려고 하는 억지야. 욕심이 눈을 멀게 하면 단순히 채우지 않아도 되는 이치를 엄마는 알아차리지 못하더구나.


엄마는 외할머니가 일찍 별세했던 탓에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우리들에게 주는 방법을 몰랐어.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은 반대로 말을 했고, 당신 성정대로 자식을 대하는 거였지. 특히 네가 생속이어서 어머니의 강도 높은 질타를 견뎌내기 힘들었던 거야. 나는 그 점이 늦었지만 기회가 닿았을 때 어머니 대신 따뜻한 정을 주고 싶어. 나는 네가 알다시피 너의 조카들과 또 손자가 있어서 외로울 시간이 없어.


많은 것들이 너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지? 사람들은 살아가는 유형이 있단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소원하는 바를 생각만으로도 뜻이 저절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어느 사람은 노력을 했는 만큼 얻는 경우, 또 남보다 더 벌어보려고 죽어라고 일을 했건만 손에 쥐는 것이 적은 사람이 있단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관찰한 결과야. 너나 나나 세 번째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부류는 눈이 멀어서 욕심을 더 내는 거야.


나는 그 욕심을 알았단다. 그리고 무조건 놓아버렸어. 그동안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모른단다. 발버둥 치느라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어. 적게 먹고, 적은 것에 만족하니 이젠 마음이 편안해서 살 만하단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하루 바삐 들고 있는 그 욕심을 내던져 버리려무나.


노년의 얼굴은 살아왔는 흔적이야. 거울을 들여다 봐. 네가 편안한 인상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라는 거야. 나는 네가 온화한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말하고 싶다. 너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을

생각해 봐라. 그림은 그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디 언니의 글을 눈여겨 읽고 한시바삐 실천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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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대문 사진: 국화꽃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왠지 빗방울을 빨리 떨구어 버리지 못하는 무거움이 마냥 힘들어 보인다.


아래 사진: 초록잎이 연두로, 연두는 노랑연두로 변하면서 노란색 단풍이 된다. 나는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단풍의 조화를 격조 높은 색이라고 생각한다. 단풍은 버리고 떠날 때를 알므로 무겁게 들고 있지 않았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26484471




댓글 4 공감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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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무 Oct 26. 2020

욕심은 우리의 생활을 쪼글거리게 해서 얼굴마저도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동생분의 능력이 세상에 빛을 발해 어머님도 동생분의 얼굴도 반짝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
삶이란 태생 자체가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 저도 제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비운 마음에 더 고운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채우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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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Scott Park Oct 30. 2020

정혜님의 마음이 동생분께 전달되길 빕니다.

덕분에 저도 손에 쥐고 있는 욕심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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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31. 2020

@혜나무

혜나무님,
덕분에 또 저를 돌아봅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비움에 아름다움을 채우도록 가르쳐 주고 가셨네요.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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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31. 2020

@박유신 Scott Park

고맙습니다.
글은 써 놓고 동생에게 보내지 못했어요.
언제 1박 2일로 동생을 데리고 여행을 가서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Oct 26. 20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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