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4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 한 점과 그 그림을 묘사해 주세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나의 손전화기 하단을 누르면 나타나는 첫 번째 바탕화면이다. 이 화면을 위로 밀면 꽃분홍의 흑매 사진이 나온다. 첫 번째일 만큼 좋아하는 그림인가 하는 의문도 가져 보았다. 무지무지 하게 좋아하는 그림도 아니고 그저 몇 년 전 우연히 TV에서 본 영화 탓인 것 같다. 바탕화면에 명화를 띄우면 좀 유식해 보일 것 같은 어쭙잖은 어리석음이 한 몫했다. 사실은 그림보다 내가 찍은 꽃분홍의 흑매를 더 사랑한다. 순서를 바꾸려고 여러 번 시도하다 포기해버렸다.
딱히 정해 놓고 보는 TV 프로그램은 없다. 그때그때 TV 상황에 따라 바뀌므로 채널을 계속 돌린다. 그러다가 마주친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처음엔 제목도 모르고 중간에서 보다가 어느 날 재방영을 하길래 차분히 시청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 잊힌 채 몇몇 장면만 떠오를 뿐이다. 또 화가의 부인이 잦은 임신으로 이 소녀를 질투의 대상으로 감시하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이 주제의 글을 쓰기 위해 네이버 검색을 하면서 '속눈썹'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빛으로 인하여 눈썹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줄로 얼핏 생각했다. 그러나 속눈썹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쳐다보는 눈망울 선이 선명하여서 예상치도 못했다. 그런데 어느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문제를 풀다가 '속눈썹이 없다'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다시 들여다봤지만, 소녀의 순한 듯 무심히 쳐다보는 눈길에서 멍청한 느낌만 들었다.
나는 이 그림의 작가 이름도 까먹고 있었다. 손전화기에 올리면서 화가의 이름은 알아야겠다 싶어 메모도 따로 해놓고 외웠지만 생활 속에서는 까마귀가 더 친했다. 어젯밤에 기억을 더듬었더니 다행히 떠올랐다. '바이마르 네이마르'. 확인해보니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다. 소리 없는 웃음이 나왔다. 깡그리 잊어도 이렇게 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다짐을 했다. '이젠 잊지 말자.'
검색하며 내용을 읽으니 어렴풋이 영화가 생각났다. 돈 많은 후원인이 일하고 있는 이 소녀를 강제로 끌어다가 벽에 밀어붙이고 젖가슴을 마구 짓 만지면서 키스를 하려 했다. 소녀가 거부하며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는 광경을 이층에서 동갑내기 화가의 딸이 보는 장면은 참으로 이색적이었다. 요즘 같았으면 'Me too'의 대상자였지만 17세기에 하녀는 소모품에 불과한 대상이니 능히 그럴 수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서민층의 삶을 느낄 수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애인에게 지키던 순결을 짚더미 속에서 주는 것을 보며 그녀가 처한 힘든 상황이 전이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그 집에서 나가야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하얀 면포에 쌓여서 그녀에게 전해지는 진주 귀걸이 한 쌍. 그녀는 그 귀걸이를 귀에 꽂았다. 내가 잊힌 기억을 소환하는 일도 정말 만만치가 않다.
검색 창의 내용을 끝까지 읽으니 2020년 4월 말 네덜란드 마우리츠 하이스 미술관은 엑스레이와 디지털 현미경으로 페인트 샘플 등으로 1665년에 그려진 이 그림을 정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는 속눈썹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피터 웨버 영화감독이 명작의 탄생을 감독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수작인 영화였다.
"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17세기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있고 뜨거운 사랑을 받은 명화다. 고개를 돌려 보는 이와 눈을 맞추는 듯한 자세와 오묘한 표정, 약간 벌어진 입가와 커다란 눈망울에 맺힌 '해맑은 웃음'을 마주하노라면 근심이 물러가고 아늑한 미소가 함께 지어진다." (홍 종선의 올드무비의 글 일부를 옮기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요하네스 페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아래 사진: 비 오는 날 성능 좋은 전화기를 가진 사위를 불러서 찍은 매화.
댓글 8 공감 19
gogogo Oct 29. 2020
그림한점에 스토리가 아주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작가님의 글에 감탄이 나옵니다. 마냥 멋지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네요
잘읽었습니다
fragancia Oct 29. 2020
저두 이 영화가 떠오릅니다^^ 아주 오래전에 봤었는데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 행복감을 안고 글을 읽었어요
음 사실 그림보다 마지막 꽃사진이 지금은 더 좋아요 홍홍!!
혜나무 Oct 29. 2020
저는 이 그림을 동명의 소설을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물론 영화도 봤는데 넘 오래되어서 몇 장면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이 허구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소녀의 눈빛이 천진하지만 슬프게도 보이나 봅니다.
저도 '꽃분홍의 흑매화'(작가님께서 직접 찍으셨죠? ^^) 가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홍홍!! ^^
박유신 Scott Park Oct 30. 2020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꽃분홍 흑매가 서로 묘하게 닮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정 혜 Oct 31. 2020
@gogogo
칭찬해주니 어깨가 으쓱 해집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잘 보내고 계시지요?
108일 글쓰기 하시느라 많이 힘드시죠?
ㅎㅎㅎ
우리 열심히 해봐요, 글고님.
정 혜 Oct 31. 2020
@fragancia
향기님에게 배웠는지 혜나무님도 '홍홍!' 그러시더군요. ㅎㅎㅎ
향기님 말씀 대로 저도 흑매가 더 좋아요.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찍었는데 얼마나 예쁘던지요.
홍매는 연분홍이나 분홍색이라 흑매와 차이가 느껴져요.
내년 봄에는 눈을 크게 뜨고 비교 관찰 해보세요.
고맙습니다.
정 혜 Oct 31. 2020
@혜나무
ㅎㅎㅎ
향기님에게 배웠는지 혜나무님도 '홍홍!!' 하더라고 했어요.
저 사진은 몇 년 전에 찍었는데, 그 당시는 손전화기 성능이 좋지 않을 때라서 사위를 불러 좋은 전화기의 카메라로 우산을 쓰고 찍은 사진이랍니다.
꽃 빛깔이 오묘한 매력이 있어요.
내년 봄에는 꼭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정 혜 Oct 31. 2020
@박유신 Scott Park
진주 귀걸이와 흑매가 서로 묘하게 닮은 것 같다는 말씀에 문득 드는 생각이 흑매가 머금고 있는 빗방울이 그렇게 연상 된 것 아닐까요?
매력적으로 찍힌 사진이라 아낍니다.
이후 비 오는 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지요.
Oct 29. 20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