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맛짜리야

by 정 혜

Day 23 당신의 이름 또는 닉네임으로 에세이 한 편을 써주세요


"정말 많아요, '정순'이라는 이름이요." 내 이름은 간호사 말 대로 동명이인이 많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남들에게 웬만하면 본명을 부르지 못하게 한다. 동성동명도 수없이 많아 괜히 촌스런 이름 같아서 더 못 부르게 한다. 그런데 곳곳에서 원색적인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민학교 일 학년 담임도 같았다. 그때는 한 교실에 학생이 칠, 팔십 명 정도였으니 아마 그중에서, 다른 학년들 사이에도 있었다고 짐작한다. 또 중학교 가정 선생님과는 내리 삼 년을 한 울타리에서 인상에 남을 정도로 부대꼈다. 선생님도 수업 시간에 역시 동명이인이 많다고 말씀하였다. 그 이후 동명이인을 가는 곳마다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다.


나의 집안 항렬 자(字)로 순박할 순(淳)을 쓴다. 대부분의 여자는 순할 순(順)을 주로 사용한다. 아버지가 남자들이 주로 쓰는 순박할 순(淳)으로 바꿔서 차이를 주자고 말씀하였다. 곧을 정(貞), 순박할 淳, 한자 그대로 나는 곧고 순박한 사람이다. 영리하지 못해서 뒤쳐지는 것도 속이 상한 데, 그동안 이름 따라 인생도 전개되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나는 모임에서 각자 자기를 소개할 때, 이름의 한자 설명을 필히 하여 다름을 강조했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조금 편안했다.

1992년 '지장행(地藏行)'이란 법명(法名)을 수계 했다. 지장보살은 세상사 우여곡절이 많은 내게 희망적이었다. 나의 의지처였던 보살의 크나큰 서원이 마음에 들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구제하겠다'며 서원을 세운 보살이다. 오늘도 그 서원을 실천하고 있다며 웬만한 대승 불자는 그리 믿고 있다. 그 서원의 이행이란 언설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지옥중생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오로지 구제하겠다는 서원의 의미는 나의 고달픈 삶을 곧고 순박하게 또는 순하게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법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속이 끓을 대로 끓고, 닳을 대로 닳고 나니 문득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우연한 기회에 비공식적으로 받은 법명이 정혜(定慧)였다. 붓다의 가르침은 필히 명상수행이 뒤따른다. 그것은 교학을 실천하는 동안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릴 수 있는 도구가 명상수행이기 때문이다. 평상시 나의 언행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명상수행으로 사띠(sati, 알아차림)의 기능을 키워야만 한다. 그래서 가르침을 배우는 것과 명상수행은 동격이다. 두 가지 다 실천해야만 된다.


가르침이 넓어지면 당연히 명상수행도 깊어진다. 그런데 나는 명상수행이 그리 쉽지 않았다. 잘못 배운 탓도 컸고, 내가 꾸준하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이다. 명상수행이 원만하지 못하여 교학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편중된 길을 걸었다. 그리고 좌선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만 부렸다. 그럴수록 내면으로 집중하는 힘은 약해지고 명상을 기피하는 현상이 지속되었다. 명상수행은 꼭 해야 한다는 그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내 삶이 바뀌었다. 비록 수행은 깊어지지 않았지만 사유의 폭이 넓어졌다. 내가 편안해지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당당하였고 자신만만했다.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 의지는 붓다의 가르침대로 바로 살려는 것이다. 이 마음가짐은 항상 실천하도록 이끌었고 점차 삶의 질이 높아졌다. 삶이 윤택해지니 넉넉한 마음자리를 깔 수 있게 되었다.


근래 명상수행을 잘하고 있었다는 것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일념 삼매를 원했다. 그러나 수행력이 약한 내가 일념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명상을 하면 잡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고 단지 그 망상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수행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잡념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충돌이다. 그 좌충우돌의 불길이 잡혔다. 그리고 욕망이라는 불구덩이를 헤치고 나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깊은 선정(禪定, 삼매라고도 함)에 들기만을 지향했다.


지혜(智慧)가 생겨났다. 지혜의 차원은 상대가 내 모습에서 존경심이 우러나도록 위의(威儀)를 갖추게 되었다. 내가 지향하던 법명이라 이제는 필명으로 사용한다. 나의 정식 법명은 빨리어로 사맛짜리야다. 그 뜻은 명상 수행하며 키워진 '한 마음'으로 바른 가르침을 펼쳐 보이라는 것. 그런데 모양새 구겨지게 sns에서는 본명을 써야 하니 은근히 이것이 발목을 잡았다. 바꾸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과거 없는 내가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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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공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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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풍차 Oct 28. 2020

옛날 이름을 보면 진짜 많은 이름이 정숙, 정순, 순자, 춘순 등등 많더군요. 문우님 이름은 부를때도 한자 풀이로도 멋지잖아요. 저는요

진짜 한자도 한글도 정말 촌스러워요.
정혜님도 좋지만 정순님이 왠지 더 끌리는 이윤 뭘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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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ogo Oct 28. 2020

과거없는 내가어디있으랴

완전 모든것이 포함되나리네여
명상을 한지 저도 3년차입니다
참 나로 이끌어주는거같아요
아직 깨달음의 경지는아니디만
늘순간알아차리고살아갑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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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무 Oct 28. 2020

아 법명이셨군요. 제가 생각하는 작가님 이미지와 정말 잘 어울리세요.

아버님께서 지어주신 본명은 특별한, 차별화된 따님에 대한 사랑이 묻어있어 귀한 것 같습니다.
명상을 통한 마음의 평화가 한 때는 뒤로 했던 많은 것들을 이제는 앞으로 놓고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하는군요... 어떤 것으로 명명되든 작가님의 향기는 그대로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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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ancia Oct 28. 2020

아아 지금까지 정말 성함이 정혜님인줄 알았지뭐예요~ 이름에 이런 사연이 있을거라 생각못하고~ 읽으면서 공감했습니다. 시낭송으로 작가님 목소리까지 들을 수있어 행복했어요!! 자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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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29. 2020

@언어풍차

먼저 브런치 작가 선정되심을 축하합니다!
본명이 싫은 이유가 공통분모여서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브런치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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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29. 2020

@gogogo

글고님의 글 속에서 순간을 알아차리고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럼 됐지 우리가 뭘 더 바라겠어요?
우리 열심히 글 쓰면서 살아요.
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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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29. 2020

@혜나무

혜나무님께도 명상을 권합니다.
명상을 통해서 알아차림의 능력이 커지면 생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저는 그 덕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지하게 평을 써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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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Scott ParkOct 30. 2020

정혜님이 법명이셨군요. 편안하고 자존감이 높은 정혜님께 항상 배우고 있답니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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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혜 Oct 31. 2020

@박 유신

편안하고 자존감 높은 글이 되기를 발원하며 글을 씁니다.
다행히 그렇게 느껴지셨다니 오히려 저가 더 고맙습니다.
내일도 좋은 날 보내세요.



Oct 28. 20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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