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6 슬픈 기억 한 가지를 소개해 주세요. 다만 그 에피소드에서 감정을 뜻하는 형용사를 절대 쓰시면 안 됩니다.
나이 탓인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감정이 없어졌다. 나의 하루는 손자와 함께 시작하여 마친다. 손자가 저녁에 잠이 들기 전까지 같이 뒹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슬플 이유와 그럴 시간은 더욱 짧아졌다.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남의 눈치가 보일 정도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슬픈 감정보다,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망자(亡者)가 인연을 끊는 순간 사랑하던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들으면서 삶에 대한 애착심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애착심'이라는 집착을 떨구고 편안히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평정심을 유지하였다. 어머니는 생전 많은 집착심으로 쌓아놓은 악업도 엄청난 데, 내가 주도하여 마지막 길은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나와의 마지막 짧은 대화에서 불편했던 인상이 정말로 편안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어떤 대상이나 사연에 감동과 감정전이가 됐을 때다. 그것은 '슬프다'와는 완연히 다르다. 어젯밤에는 '슬프다' 보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날이었다. 내가 어멈에게 손자를 보내고 잠자리에 엎드렸다. 오늘 낮에는 서로 바빠서 아들과 통화를 하지 못했다. 겨우 밤에 대화를 재개하였다. 아들이 "엄마"라는 소리에 내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색은 하지 못하고 아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귀에 신경을 모았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어." 옳고 그르니, 잘했다 잘못하였다며 시시비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아들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들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힘이 든다고 했다. 엄마도 아니라니 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소리인가. "엄마가 지금부터라도 네 편이 되어 줄게" 공명만 전해질뿐이다. 아들의 말을 들으며 문득 나의 18번 문자 '자신감과 자존감'이 부족하다를 느꼈다.
"이모는 나와 불교 캠프에 참여하는 사촌에게 일일이 소지품을 다 챙겨 주었어. 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 나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며 스스로 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맞아, 엄마는 그랬어. 엄마가 세상 물정 몰랐던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너에게 무조건 하라고만 했었어." 나는 온몸에서 땀이 날 정도였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몰라서 그랬어. 미안하다."
나의 자존감이 확립된 것은 십여 년 그리고 자신감은 길어야 20년 남짓. 내 나이 40 후반에서 50 중반이다. 그런데 아들은 30 초반이다. "엄마는 무식하게 그랬어. 너는 지금의 경계를 뛰어넘고 나면 아마 룰루랄라의 시간이 올 거야. 잘 넘겨주기를 바란다." 나는 손자가 잘 못하는 행동들을 보면서 격할 정도로 박수를 친다. 그리고 잘했다고 큰 소리로 격려한다. 내 아들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잘한다고 했지만 손자에게 하는 것처럼은 못 하였다. 손자를 대하는 순간은 항상 아들을 생각한다. 과거 나의 부족했던 점을 깨달으며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것이다.
손자는 14개월을 향하고 있으며 매우 당당하다. 소리 지를 때도 거침없다. 나 또한 마구 소리를 높이고 손자도 크게 하도록 권장한다. 나는 손자를 통해서 자신감을 배우고 자존감의 실체를 깨달았다. 사회에서 부딪히고 있는 아들을 손자처럼 키웠다면 과연 저리 의지할 사람을 찾을까. 온전히 아들을 위한 통화였으므로 다른 말, 가르치려는 말을 삼가였다. 세대차이의 폭이 넓은 아들과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사실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늘 기다린다.
"너와 세대차이가 많이 나서 먼저 말을 잘 못하겠더라. 아들이 감정 표현을 해주면 도움이 되어주겠다"라고 했더니 "엄마, 내가 회사 때려치우고 가면 나 먹여 살릴 수 있겠어?" '오잉, 웬 뜬금없는 소리' 하는가 싶었지만 "무조건 내려와. 엄마가 먹여 살릴게" 속으로 '정말로 내려오면 어쩌지' 그렇지만 큰소리쳐야 했다. "걱정 말고 와서 쉬어.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야" 아들은 몇 개월 전 대인관계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독서의 부족함'이라고 짐작했다. 자신감과 자존감 부재'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않았다.
손자가 아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나를 깨우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아들에게 나의 부족함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차,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아들이 조금 밝아진 음성으로 "엄마가 원하던 노트북 샀어요. 매형한테 이런저런 기능 설치해달라고 말씀하세요."라며 당부까지 한다. '이 녀석은 나를 끝까지 감동시키네…' 어미가 아들에게 또 부끄러워졌다.
나는 아들이 혼인을 했으면 좋겠다. 지 마누라와 시시콜콜한 것들을 알콩달콩 살아가면서 대화로 풀어갔으면 한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 육아하면서 느끼고 배우는 점이 많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 어떤 언행으로 부모와 자식을 충족케 하며 자신의 부부도 만족할 수 있는지를 연구할 테고, 그와 동시에 사회성을 비롯하여 아들의 내면이 성숙해지는 변화를 알아차리리라. 아들이 지금처럼 남에게서 원하는 바가 크면 실망도 당연히 크다. 남은 타인이지 내가 아니다. 또 나도 내 마음을 몰라서 헤매는데 타인이야 더 모를 수밖에. 그런데 나도 아주 젊었을 적엔 무척 방황했다. 내가 해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남이 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그 답을 40대에 알았다. '남이 내 뜻대로 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해주면 교만해지기 쉽다.'라고 했다. 나는 오늘날까지 이 잣대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11층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 입구.
양쪽으로 나뉘어진 화단은 서로의 바람벽이 되어줄 수 있을까.
아래 사진: 노란 소국이 옹기종기 이웃하면서 서로의 시름을 덜어주고 안아주는 듯하다.
댓글 13 공감 25 공유 13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02. 2020
손자와 아드님을 보면서 성찰하셨네요
키키리리 Nov 02. 2020
전 왠지 아드님의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아요. 전 어린 시절부터 칭찬과 인정에 목말랐거든요. 엄마는 좀 매정했어요. 감정을 읽어주지 못하셨죠. 40쯤 되니 (물론 심리 상담 덕분에) 내 안의 상처도 들여다볼 수 있고, 그 후에 부모님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키키리리 Nov 02. 2020
아드님은 과거의 저보다는 훨씬 나아요. 그래도 마음을 표현하잖아요. 그게 중요해요.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을 어머니에게 말하는 일이 쉽지 않거든요^^
gogogo Nov 02. 2020
아드님이 스승이죠
깨우치게 해주니 말입니다
아들과의 인연이 소중하다는생각이 듭니다
다 필요해서 맍나는 인연이겠지요
글잘읽었습니다
상선약수 Nov 02. 2020
작가님에겐 만나는 모든 이가 마음 공부의 스승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원래도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게 하는 힘이 있었지만, 갈수록 글은 더 담백해지고 그런 만큼 마음에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깁니다. 부지런히 글 쓰기에 정진하셔서 그러시겠죠.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오늘도 많이 피곤하셨을텐데 편히 쉬세요~^^
혜나무Nov 03. 2020
얼마전 작가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무조건 아들편이 되어주고 믿어주라는 말씀을요.
아드님의 지친 목소리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때로는 다 큰녀석이 엄마 이거 해줘, 저거 해줘하는 것이 퇴행인가 했는데, 엄마에게 보살핌을 받던 어린시절이 그리워서 그랬나 싶습니다. 다 아들을 위한 잔소리라고 훈육이라고 하면서 정작 아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저를 요즘 부쩍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드님께서 좋은 반려자를 만나 또 한명의 '완전한 내편'이 생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는 힘이니까요.^^
박유신 Scott Park Nov 04. 2020
"남이 내 뜻대로 해주면 교만해지기 쉽다"라는 글귀가 가슴을 때립니다.
아드님도 시간이 지나면 정혜님 처럼 자존심과 자신감을 갖게 되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 혜 Nov 08. 2020
@공대생의 심야서재
네.
일요일 오늘 혹시 와이프랑 데이트 하고 계시지 않나요?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 혜 Nov 08. 2020
@키키리리
40대를 불혹(不惑)이라고 하더라구요.
확실히 흔들리지 않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각자의 성격이 좌우하는 것 같아요.
속에 품지 못하여 뱉아내야만 하는 형이 있는가 하면, 속으로 끙끙 앓는 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품는 형도 아니고, 대학교 때 상담을 받으면서 배운 것이 자기 표현을 긍정적으로 하는 것. 덕분에 저도 배웠고 관계가 원만해지는 계기도 되었답니다.
요는 개인인 각자, 즉 저나 아들이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했다는 점이지요.
불혹의 시대를 맞으면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을 배웠고, 아들에게 배우려고 했어요.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달은만큼 실천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
어제는 대구에 내려온 아들에게 저의 글 '해넘이가 해돋이에게'를 읽어보라고 보냈어요.
글 잘 봤다면서 좋아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더군요.
키키리리님의 글에서 하루 다르게 조금씩 변모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 혜 Nov 08. 2020
@gogogo
글고님 말씀처럼 아들이 저를 깨우치려고 저에게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항상 고마워요.
공감해 주셔서 고마운 글고님.
좋은 하루 되셔요.
정 혜 Nov 08. 2020
@상선약수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선생님께서 저의 글을 그렇게 평해주시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가 글을 쓰면서 독자들에게 '향기가 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발원을 했고, 브런치 프로필에도 그렇게 썼거든요.
상선약수 선생님의 지지가 굉장히 큰 힘이 됩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시고요.
저가 사진을 찍어서 선생님께도 보내고 싶은데, 브런치는 그런 것이 없어서 아쉬워요.
정 혜 Nov 08. 2020
@혜나무
퇴행이 아니었고 그냥 어린광을 부리고 싶었던 것을 빈 자리도 많았으면서 약간의 틈도 내 주지 않았던 것 정말 부끄러워요.
혜나무님은 아마 아드님에게 더욱더 강력한 울타리가 될 것 같습니다.
슬 슬 장가가야 하는 이유의 글을 준비 해야겠어요. ㅎㅎㅎ
혜나무님, 용기 북돋워 주셔서 고맙심데이~
정 혜 Nov 08. 2020
@박유신 Scott Park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아 가면서 남이 내 뜻대로 해주기를 바라지 마라는 말씀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답니다.
좌우명이다시피 해요. 저는.
일요일 하루도 좋은 시간이 되고 계시겠지요?
Nov 02. 20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