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밭 신작로를 지나서

by 정 혜

Day 27 다음 소설의 첫 문장을 이어서 써주세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시퍼러니 높디높은 산만 보였다. 산은 부챗살을 손안에 오목하게 펼쳐 쥐고 있는 듯했다. 하늘만 빼꼼히 뚫려 있었다.

"어, 길이 엄네. 잘못 왔는 갑따! 우야노"

정인은 가던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이 일을 우야마 돼노? 먼길 왔는데 이 일을 우짜지…"

정인이와 여동생 그리고 정인의 큰엄마는 오던 길을 돌아보면서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그 자리에서 우두망찰 할 뿐이었다. 정인의 큰 엄마가 풀썩 맥없이

주저앉았다. 정인과 여동생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방은 산 그림자만 길고 짙게 드리워졌다. 추석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정인이가 있는 골짜기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를 찾아 나선 어젯밤은 집도 절도 모르는 곳에서 생고생을 했는데, 오늘은 길도 없는 곳으로 오다니…' 정인이 또한 땅바닥에 털썩 앉으며 중얼거렸다.

'엄마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정인은 몰래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쳤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한 달이 지났다. 정인이 아버지는 어린 정인이와 여동생을 큰집에 잠시 가 있으라며 데려다주었다. 정인은 큰 집에서 몇 달 그럭저럭 잘 지냈다. 정인의 큰집이 있는 곳은 집성촌이다 보니 대소가에서 큰일을 치르면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때마침 마을이 집단 식중독 사태가 벌어졌다. 정인이와 큰집 언니가 아주 심하게 설사와 구토를 하면서 앓았다. 농사를 짓는 큰아버지는 그 일로 많이 놀라셨던 모양이다. 큰아버지는 큰엄마와 의논 끝에 조카들을 데리고 정인이 엄마를 찾아가 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정인의 큰엄마는 두 조카의 손을 잡고 대전 가는 기차를 탔다. 대전에 도착한 정인과 여동생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채 큰 엄마가 역무원에게 싹싹 비는 것을 보았다. 역무원들은 기세등등하게 벌금을 내라며 큰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정인의 나이를 속여서 기차표를 끊었다는 것이다. 정인의 큰엄마는 아니라고 누누이 말을 해도 그들은 믿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정인의 큰엄마는 돌아서서 치마 말기에 꼬불쳐 둔 비상금을 꺼냈다. 그렇게 하여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왔더니 엄마에게 가는 버스가 조금 전에 떠났다는 것이다. 막차였다고 했다. 그날은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승무원이 안내해 주면서 다음날 첫 차를 타라는 것이다. 세 사람은 갈 곳이 없었다. 정인은 대구에서 큰집이 있는 창녕까지 방학 때 몇 번 왔다갔다한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대전은 큰엄마조차도 생면부지의 고장이었다. 부득불 버스 정류장 의자에서 무작정 앉았다가 밖을 내다보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 없었다. 밤늦게 순찰하는 사람이 그녀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긴 의자에 누워 있는 정인의 큰 엄마를 툭툭 쳤다. 그리고 숨을 쉬는지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정인은 엄마를 찾아가는 이 밤이 무섭고도 두려웠다. 정인은 잠이 들지 않으려고 의자에서 앉았다, 섰다, 그러나 날은 쉽게 밝아지지 않았다.


엄마에게 가는 버스는 하루에 세 대 뿐이었다. 정인이와 여동생과 큰 엄마는 아침 첫 버스를 탔다. 정인이와 여동생은 큰엄마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대전 시내를 벗어나자 울퉁불퉁 주먹만 한 돌이 깔린 신작로를 덜컹대며 달렸다. 버스 바퀴에 깔린 돌들이 눌리는 소리, 튀어나가는 소리가 요란스레 들렸다. 먼지가 버스를 따라서 누렇게 날리는 것이 차창으로 보였다. 들에는 추수하여 거둬들이지 못한 벼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드문드문 초가집들이 휙 휙 지나갔다. 정인이 자매는 어느새 머리를 끄덕끄덕 하면서 졸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얼마나 달게 잤는지 운전사가 깨우는 바람에 겨우 눈을 떴다. 운전사는 그녀들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내려 주었다. 인적은 드물고, 사방은 높은 산으로 둘러 쌓였으며, 이미 산 그림자가 내리고 있었다. 정인의 큰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큰엄마는 한숨을 내리 쉬었다. 길은 막혔고, 해는 지고… 넋을 놓고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으려니 누군가가 지나가며 더 앞으로 나아가면 길이 있다면서 얼른 가라고 알려주었다. 큰엄마는 정인이 자매를 일으켜 세워서 손을 잡았다. 서로 아무런 말 없이 걸으며 정말 길이 있으려나 반신반의하면서 한 발을 내딛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무수한 돌이 발에 차이고 밟히는 길이었다. 엄마를 찾아가는 길 가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 가을 석양빛 사이로 주홍빛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자갈밭이나 다름없는 길에는 감나무가 차츰차츰 시커멓게 보였다. 세 사람이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길은 끊어진 듯 산모퉁이가 나타났다. 산굽이를 돌고 돌으니 멀리서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기 냄새도 났다. 큰 엄마가 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에게 봉투를 내보이며 사실을 확인했다. 그곳의 주민인지 잘 찾아왔다면서 반겨주었다. 그리고 정인이 엄마가 있다면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큰엄마를 배웅하고 오면서 정인이에게 말했다. "니 엄마가 하던 계가 깨졌다 카더라. 그래가 종적을 감차뿠단다. 아부지가 알고 본이끼네 이리 먼 전라도까지 빚쟁이를 피해서 와 있더라. 나도 물어서 물어서 찾아왔다. 큰엄마하고 여 찾아 온다꼬 느그 고생 많이 했더라. 인자 마음 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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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서 대봉 감이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정인이 자매가 엄마를 찾아서 떠났던 계절이 이때가 아니었나 짐작해본다.


아래 사진: 안심 체육공원에는 억새 군락지가 있다. 2020년 11월 초 석양빛의 억새밭에도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134679512



2020.11.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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