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3 당신이 누구인지 스스로를 인터뷰하는 글을 써보세요.
"전생에 훌륭한 장군이었네" 자리에 앉자마자 처음 보는 어떤 분이 대뜸 했던 말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잊히지 않는다. 항상 나를 둘러보면서 '여자'다운 구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 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마 굉장히 멍청한 장군이었을 거야"라며 웃었다. 나도 동감이라서 크게 노엽지 않았고 전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슬며시 궁금한 적이 여러 번이다. 그 소리를 들은 지 그럭저럭 이십년을 지나서 삼 십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미술 시간이었다. 데생을 하면서 내가 그린 나의 왼 손을 보니 상당히 투박하였다. 꽤 잘 그렸다고 스스로 흡족하였으나 여자 손 같은 느낌이 적었다. 옆의 친구들 손가락은 연약하고 가늘었다. 이상하게 생각은 하면서 무심히 넘기고 말았다. 나의 얼굴은 갸름하니 이목구비 선이 가녀리지 굵거나 큼직큼직하지 않다. 아무튼 외모는 '예쁘장스럽다' 소리를 들었다.
나는 어느 모임을 가던 정시에 도착하거나 늦는다. 이상하게 느낄 정도다. 집에서 일이십 분 빠른 출발이면 엉뚱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끈다. 그러다 보면 지각생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얼마 전부터 무조건 미리 집을 출발한다. 그런데도 어정거리게 된다. 묘한 이 버릇이 그렇게 싫지도 않다.
중학교 일 학년 어느 날,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나의 돌발 발언이 하나 있다. 약국에서 약을 사려니 약사가 누가 먹을 거냐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나'를 어떻게 칭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본관이요"라고 대답했다. 약사가 파안대소를 하면서 "본관이라…" 부적절한 용어임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나는 어른인 약사에게 '나'라고 표현하면 틀릴 것 같고, 또 '저'라는 말은 나를 낮추는 것 같아서 얼른 "본관"이라고 했다.
내가 남에게 나를 칭할 때 상대가 손 위면 '저'라고 하면 된다. 그때도 알았는 말인데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의문스러웠다. 나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 전생(前生)의 나를 많이 염두에 두고 있다. 웬만한 사람들이
현재의 나를 보면 전생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내가 남자였고, 장군이었다는 말이 성립이 된다. 장군이었다면 상당한 지위를 가진 계급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군인은 전쟁할 때 필요한 인물이다. 장군이면 예하 부대 및 장졸들이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지휘권이 주어진다. 막중한 임무를 맡았지만, 백전백승은 있을 수 없는 논리다. 한 순간의 판단 잘못으로 장병들을 모두 잃는 판국이 있다. 나의 수하의 장졸들을 잃는 반면 적군 또한 수없이 살상하게 된다. 아무리 전쟁을 수행 중이라 해도 엄연히 살생이다. 살생한 과보는 살아 생전, 또는 내생 그 이후까지 받아야만 한다.
내가 힘든 삶을 사는 결과가 군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명령은 내렸지만 나 역시 상관으로부터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군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살생의 과보는 무기력증으로 일의 효율성이 부족하면서 병약하였고, 친구가 없는 과보를 겪는다. 현재까지 이렇다 할 친구가 없다. 지금은 친구가 없어도 확고부동한 의지의 여인으로 잘 살고 있지만서도.
베풀며 사는 호의적인 인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내가 신분을 이용하여 악랄한 짓을 하였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이제 겨우 한 숨을 돌리고 베풀려는 마음을 실행하며 산다. 그리고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내생의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물밑 작업이다. 공부는 무기력한 상태로 온전히 할 수 없다. 무기력은 집중력이 낮아서 일념으로 매진 못하는 크나큰 단점이 있다.
내가 병사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원인은 미래다. 전생의 결과로 받고 있는 과보가 현재다. 현생을 사는 이유 중에 전생의 삶을 반추하며 현재를 바르게 살라는 의미도 있다. 찌든 생활에 이끌려 사느라 발 등에 떨어진 불이 뜨거워서 뒤돌아보고, 주위를 살피며 앞을 내다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전생에 불교와 인연이 있었는지 훌륭한 가르침과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이 있다. 그 복 중 제1의 불교는 노후의 삶과 미래를 알게 했고, 지혜롭게 살려고 한다. 둘째는 좋은 이웃이다. 온라인 상의 글 벗들, 잘 자라 준 자식, 법우들이 다 나의 스승이다. 이생에서 선한 인연은 내생에서도 이어진다. 내게 앞으로 남은 나날은 나의 무지를 더 깨우치고, 선근 공덕을 많이 쌓는 것이 이생에서의 과제이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벚나무가 단풍진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로수 아래는 노란 낙엽들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바람에 날려다니고 있다. 이른 오전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가을 향기를 맡으며 산책 중이다.
아래 사진: 햇살 좋은 곳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벚나무를 올려다 봤다. 단풍과 창공의 대비로 자연의 선물을 아낌없이 공유하였다.
Nov.10.20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