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내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
학교 다닐 때 '과학'이라는 과목이 무척 싫었다. 과학 책은 살아오는 내내 최대한 먼 거리를 유지하였다. #한겨레 출판의 #'하니포터-2기'가 되면서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넘게 되었다. #'내 생의 중력에 맞서'는 반전이다. #한겨레 출판의 #'하니포터-2기' 일원으로 지금까지 읽은 책 중 #'내 생의 중력에 맞서' 30장의 글들은 모두 감동적이며, 고무적인 글이었다. 나는 같은 책이라도 내용이 긍정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글을 좋아한다. #'내 생의 중력에 맞서' 는 신선 상큼한 레몬 같았다.
책 표지에 '죽음, 질병, 노화, 망각, 사랑, 이별…'은 이 책의 핵심 내용이자 줄거리이다. '죽음, 질병, 노화, 망각, 사랑, 이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비과학적으로 오해하고 있던 것들을 기분 좋게 긍정적으로 "증거에 기반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였다. 과학을 말하면서 과학적이지 않았고, 어느새 과학을 기준으로 증거를 제시하며 인문학으로 이해하도록 배려하였다. 5쪽의 '과학과 인문학의 중간지대, 어디쯤 닻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처럼 과학과 인문학의 중간이어서 손에서 책을 놓기 아쉬울 정도였다.
7쪽 '작가의 말'에서 '과학은 소수의 백인 남성 과학자, 엘리트나 전문가가 독점하는 지배 또는 힘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편견을 깨고 세상을 바꾸는 해방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상당히 매력적인 문장이자 내가 추구하는 '인간의 무지와 편견을 깨고 세상을 바꾸는 해방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에서는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어하는 나를 알아차렸다.
'자존', '나'와 '너'의 균형 앞에서. 모가 난 사각의 틀을 벗어나 둥글어서 막힘이 없는 내일을 지향하듯 배경 사진이 녹색이다. '자존'이란 쪽배를 타고 너와 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물 위 중앙에서 미래로 배를 저어간다. 1장 제목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은 '진정한 나를 만나다'라고 결론을 내린 부제목에 이끌려 문장 문장 줄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자존'을 한자로 쓰면 스스로 자(自), 높을 존(尊)이다. 나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를 만나러 가는 문장마다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한 자 한 자가 모두 소중했다.
14쪽 1장은 탄생, 사람이 태어나는(생,生) 것으로 첫 글이 시작된다. 작가는 이 장에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논리를 인문학으로 전개한다. 시대적인 역사에 대해 모르던 부분을 일깨워주기도 하여서 배울 것이 많은 책이다.
#'내 생의 중력에 맞서' 1부 '자존' 16쪽 둘째 문단
16쪽 '오늘날 과학적 관점에서 미국 독립선언문의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고, '진화'했습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밝힌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지구에 우연히 출현했어요. 인간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한 신이나 창조주는 없습니다.' 작가는 문단을 바꾸어서 과학으로 '우리는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윈은 진화 과정에서 우연히 인간이 탄생했다고 하였다. 붓다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으며, 살아 생전의 행위는 다시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 사람의 일생은 해탈하기 이전까지 윤회를 거듭하는 삶의 연속이다. 붓다는 살아가는 동안 계를 지키고, 보시하고, 명상 수행하며 공덕을 쌓으라고 가르친다. 선한 행위의 결과는 죽은 후 선처(善處)에 태어나는 조건이 된다. 사람은 진화 과정에서 우연히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각자 의도된 삶의 결과로 윤회라는 수레바퀴를 굴리게 된다. 진화는 우연이 아니라, 진화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이 책은 읽는 동안 '불교는 과학적이다.'라는 평을 확인 시키는 책이었다. 지방 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마성(摩聖)스님의 강의 교재 내용에는 "일찍이 서구의 학자들은 불교의 합리성, 논리성,과학적 실증주의 등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불교는 과학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날 서구인들이 불교에 대해 호감을 갖는 이유도 이러한 불교의 특성 때문이다. 또 과학과 불교의 접근 방법은 다르지만, 둘 다 진리를 보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달라이 라마 스님은 말했다." 또 한국 테라와다 불교 아짠 빤냐와로 진용 대장로 스님은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여 기독교를 알리려고 불교부터 연구하였으나 결국 팔리성전협회<The Pali Text Society, 약칭 PTS)는 1881년 리스 데이비스(Rhys Davids)가 창립한 단체로, 팔리어 성전 보급과 영어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를 설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말씀하였다.
74쪽 '양육가설'의 부제목이 '나를 위해 너를 사랑한다'이다. 부제목에서 '집착'이 연상되었다. 첫 문장이 '우리는 사랑을 사랑하는 생물종입니다.'로 문단이 열린다. 75쪽 '확증편향'은 '우리 뇌는 보는 대로 믿지 않고, 믿는 대로 봅니다.'의 태도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의 생각대로 보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다. 붓다는 보이는 대상을 바르게 보려면 견해(見解: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를 바꾸라고 팔정도에서 가르치고 있다. 견해가 바뀌면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생각이 바뀐다. 집착인 줄 모르고 77쪽 '"네가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 자식 위해서 이러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는데 틀린 말입니다. 부모님이 자신이 좋아서, 자기를 위해서 한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자식에게 향하는 마음을 끊을 수 없지만, 집착하는 마음은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끊는 것은 어렵지만 집착을 경계한다는 문장을 읽으며 작가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80쪽에서 '양육가설은 아이들을 키운 적 없는 백인 남성 지식인들의 만든 허구였습니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이론이었지요.' 교육론에 대한 대반전이었다. 작가는 이어서 '《양육가설》의 문장은 하나하나가 주옥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일상생활의 이론화'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양육지침서에 적힌 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생물학적 차이를 가지고 태어나잖아요. 성격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있겠어요?" "양육은 부모가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손자가 태어난 지 31개월, 손녀가 10개월이 되어간다. 손주를 돌보면서 이 양육가설 장은 육아 담당자인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있었다. 나 또한 자식을 그렇게 키우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을 지녔던 사람으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이다. 81쪽에서 《양육가설》의 저자는 '엄마들에게 죄책감을 내려놓고 양육의 과정을 즐기라고 주문한다.'고.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도 착각에 불과하다. 이제 내려놓다. 아이들은 부모의 꿈을 칠할 캔버스가 아니다. 조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자녀를 사랑하되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랑하지 말고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라. 양육을 즐겨라.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을 만큼만 가르쳐라. 긴장을 풀어라. 자녀가 어떤 인간이 되는지는 당신이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애정을 쏟았는지를 반영하지 않는다.당신은 자녀를 완성시키지도, 파괴시키지도 못한다. 자녀는 당신의 완성시키거나, 파괴시킬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들은 미래의 것이다." 이 문장을 딸에게 카톡으로 보내면서 책도 읽어보라고 권했다. 육아를 할 땐 몰랐던 사실을 다 늦은 나이지만, 손주에게 적용할 수 있어서 참으로 기뻤다.
94쪽 부제목으로 "포용과 이해에 관한 따뜻한 시선, 이 장에서는 102쪽 '성염색체와 성결정 유전자, 호르몬에 의해 분류되는 제3의 성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들 성소수자를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양성평등이라는 말도 잘못된 것이죠.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는 용어를 바르고 정확히 배우게 되었다. 글의 말미에는 '책의 마지막에서 샤론 모알렘은 성과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끝맺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좋은 관계 맺기에 출발점일테니까요.'
124쪽 '포유류의 번식-암컷 관점(사랑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은 페미니스트 이야기다.
132쪽 '우리는 아직 인간이나 여성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또한 우리가 교과서에 배운 생물학 지식은 남성 관점이고, 영장류와 인간 중심이며, 가부장적인 문화에 젖어 있어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고 믿었던 과학이 이렇게 젠더 편향적인데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겠죠.' 한 쪽 한 쪽이 소중한 정보가 가득하여서 '주옥과 같다'는 말씀에 동의한다.
처음 책 제목을 보면서 부정적이고 대항하는 느낌이 들었다. '생'이라는 중력에 맞선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만약 내가 제목을 짓는다면 긍정적인 책의 내용을 부각시켜서 '#내 생의 중력을 마주하여' 아니면 '#내 생의 아름다운 중력' 식으로 부드럽게 정할 것 같다.
134쪽 3부 '성격의 탄생'에서는 162쪽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자기를 객관화하는 작업은 자신의 성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지요.' 163쪽 '자신의 성격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꿀 수 있습니다. 성격심리학에서 하는 심리치료가 이런 방식으로 이뤄져요. 부정적인 사고를 극복하고 자신의 성격을 긍정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242쪽 나이 듦에 관하여(좋은 인생은 좋은 이야기와 같다). 내 나이가 70 밑이다. 젊은 작가가 나이 듦에 대하여 어떻게 글을 썼을지 상당히 궁금하였다. 책의 주제 생,노,병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 당연히 죽음을 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245쪽 '《나이 듦에 관하여》에서는 노화의 개념부터 새롭게 정의하자고 제안합니다. 노화는 모든 생명체가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신체적 기능이 감퇴하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건 살아있음을 알리는 생물학적 징후이지요.'
246쪽 '노년기에도 성장은 계속되고 나이 듦을 배워갑니다. "노화에 대한 가치관은 자기최면과 같다. 노년기의 건강과 삶의 질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각자 상상해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실현된다"고 합니다.' 또 249쪽 '뇌과학에서는 나이 들수록 삶의 지혜가 생기고 온유하고 현명해진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고, 노력도 하는 사람이다. 만족과 행복 지수는 올라가고, 불안과 스트레스 지수는 내려가고 있다.
298쪽의 퍼스트 셀(우리는 서로 삶과 죽음의 증인이기에). 300쪽 '사람답게 아프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모두가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최상의 죽음으로 꼽는답니다.' 그런데 현대 의사들은 그러한 죽음을 맞지 못하게 하였다. 《퍼스트 셀》의 저자 아즈라 라자는 '암은 균일하지 않고, 계속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무한히 진화합니다. 계속 분화하는 마지막 암세포가 아니라 첫 번째 암세포의 흔적을 찾아서 암세포가 퍼지는 것을 방지하자.'고 주장합니다. 작가는 "의사의 본분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공감하고 보살피고 걱정하는 과학'이 그녀가 추구하는 과학입니다.'
나는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아즈라 라자 같은 의사가 우리나라에도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작가는 307쪽의 글을 마무리 하며 이렇게 썼다.
'우리가 탄생을 결정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죽음 또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가 생전에 이 불멸의 질병과 맞닥뜨릴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마주칠 것인가이다"라고 해요. 우리, 이제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삶과 죽음의 증인이라는 것을요.
작가는 인간의 전 분야를 30장에 과학을 말하면서 인문학으로 해석하였다. 나에게는 상쾌한 내용이어서 다시 읽을 생각이 많다. 30대의 아들과 딸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과학을 바르게 알지 못했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