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헤어진 이틀 째 날이다. "엄마, 어디야?" 범어 4거리에서 받은 전화다. 드넓은 횡단보도를 건너 편 범어 지하도 11번 출구 옆에서 매화사진 찍기에 푹 빠진 나였다. 딸은 "초등학교 운동장 걸으라고 했지, 누가 번잡한 대로(大路)를 선택하라고 했어!" 큰 소리로 나무라며 대뜸 경계태세의 목소리다.
2월 27일 딸이 경산시에서 대구광역시로 이사를 했다. 경상북도에서 다리 하나 건너 오면 대구 땅이다. 딸이 이사를 하여서 또 손자의 감기 증세가 염려되어 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기 전, 일주일 간 강제로 두문불출 하여서 없던 우울증까지 생길 정도였다. 딸과 오전에 이별한 후 그 시간부터 혼자 살그머니 산책을 다녔다. 소문내고 다니면 조선 천지가 시끄럽기 때문이다. 나는 내 집에서 범어 4거리에 위치한 이비인후과까지 걷고, 돌아올 때도 걸으면서 내일 목욕탕에 갈 계획을 세웠다.
"3월 4일까지 임시로 휴업합니다" 목욕탕 문에 벌겋게 써서 붙여 놓았다. 일주일 간 귀양 살면서 목욕탕 근처도 못 갔다. 나는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어 목욕통을 들고서 동네 마트로 갔다. "마스크 안 쓰면 입장 불가예요. 빨리 나가주세요!" 등 뒤에서 주인이 소리를 마구 질렀다. 나는 마스크를 평소에도 잘 쓰지 않는다. 이유는 안경이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근데 오늘은 마스크를 까마득히 잊고 목욕탕을 거쳐 예까지 왔다. 갑자기 무식한 사람이 된 듯하여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얼른 얼버무리며 나왔다.
오후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동대구 복합 환승 센터로 갔다. 건물의 별관에는 유니클로 등 여러 매장이 있다. 별관으로 가는 길은 산책하기 참 좋은 공간이다. 신기하게 다섯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매장 역시 직원을 합해야 열 사람 될까 말까. 느긋하게 저가(低價) 판매대를 찾았다. 백 원 빠지는 만 원짜리 바지가 제법 짭짤했다. 장내 방송은 6시에 문 닫는다면서 협조해달라며 떠들어댔다. 바지 길이를 줄이는데 이 천 원 수선비를 주었으며, 내일은 찾으러 가면 된다. 전부 만 천 원이다. 마음에 드는 스키니 바지 하나와 면 셔츠를 건졌다.
매장이 문을 닫기 전 바지를 찾으러 집을 나섰다. 매장으로 가는 통로에는 여전히 몇 명만 오고 갈 뿐이다. 5분만 기다려 달라는 직원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저가 판매대로 갔다. 두 가지 품목을 골라서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다음은 신매동 한살림 매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승객이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좌석 가운데 내리는 문 가까운 곳에 앉았다. 딸이 손잡이를 잡지 말라던 말이 생각났다. 사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면서도 손을 대지 못했다. 속으로 나 자신이 참으로 우스웠다. 나의 팔랑 귀가 부끄러웠고, 세상인심도 한심했다.
한살림도 6시까지 영업을 했는지 매장이 캄캄했다. 다음날로 미루고 근처 '자연드림'으로 갔다. 그곳은 성업 중이었다. 코로나 19가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속으로 이 잡놈을 과장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딸의 간절한 요망사항은 내가 이곳에서 오래 어정거릴 수 없었다. 나 또한 혹여 면역력 약한 손자에게 여파가 미칠 것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집으로 오는 버스도 헐렁했다. 속도 또한 나르는 듯 빨랐다. 앉은 좌석 앞에 손잡이가 있어도 꺼림직한 딸의 경고로 손을 댈 엄두를 못 냈다.
"엄마, 비닐 장갑이라도 끼고 손잡이나 기둥을 잡아"
라고 어제 나의 등 뒤에서 했던 말이다. 사실 나 혼자 같으면 구애될 것이 하나도 없건만, 손자로 인하여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모르면 약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돌아다니고 있다. 입도 뻥긋하지 않는 내가 궁금하였는지 딸이 전화를 하더니 아들도 했다. 가까이 있는 딸은 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았고, 코감기로 병원에 다니는 사실을 아니까 통제의 주문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공무원 딸이 조목조목 주의사항을 알려줄 땐 고개만 주억거린다. 나는 혼자가 되면 멋대로 발길이 닿는대로 다니면서 돌아다닌 척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주특기다. 서울에 있는 아들은 나의 근황을 모르니까 그저 조심하고 마스크 사용하라며 신신당부다. 또 건성으로 대답한다. 세인들이 요 멋진 놈 때문에 초긴장을 하고 있지만, 나는 아주 느슨하다. 만약 내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난 그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사진: 정 혜
아래 사진: 범어 4거리의 지하도 11번 출구 옆에 핀 흑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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