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비단이 굽이쳤다. 방형(方形)의 긴 창을 휘감았다. 초록 잎이 노랗게 물들어버렸다. 햇살이 따가운 날 초록색은 풀빛으로 연해지기도 한다. 금호강 안심습지에는 유채꽃이 흐드러졌다. 강물조차 맑은 노랑으로 출렁댔다. 녹황색 주단도 건들거린다. 강가에 사는 나무들의 잎 색은 거의 누런빛이 사라졌다. 유채꽃이 개화한 지 벌써 몇 주 지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노란색이 짙어져서 다급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바심을 숨긴 채 내려다보는 나에게 노란 물결이 수런거리며 밀려왔다 물러간다.
딸이 사위가 출근하지 않는 날 한의원을 다녀오라고 했다. 그 소릴 들으며 유채꽃이 넘실대는 안심습지를 돌아 볼 계획을 세웠다. 그 예쁜 사위가 출근을 하였다.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딸과 손자가 낮잠 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툭, 툭 다 던져버리고 모자를 썼다. 손전화기만 있으면 되니까.
『팩트풀니스』의 작가 한스 로스링은 “’다급함 본능‘을 위험이 임박했다고 느낄 때 즉각 행동하고 싶게 만든다”고 하였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힘 있는 꽃잎은 싱싱하다. 농염한 향기와 만발한 군락의 아름다운 순간은 꽃의 절정을 이룬다. 그렇지만 꽃이란 이내 시들면서 낙화한다. 시기적절할 때 행동으로 옮겨야만 하는 이유다. 더 이상 마음을 끓일 수 없으므로 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무방하다.
며칠 압박감이 약간 느껴졌다. ‘약간‘이란 의미는 유채꽃 피는 적기를 놓쳐서 못 보는 경우다.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꽃이란 피었다 지는 기간이 짧다. 하여 산책을 나가지 못하자 은근히 조급함이 밀려왔다. 사위는 출근했고, 손자가 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현관문을 나서도록 유혹하였다. 딸이 마음에 걸려서 ‘나가지 말까’ 하는 고민을 과감하게 떨쳐 버렸다.
안심습지에는 강풍이 대찼다. 산책하기 좋은 날이 아니었다. 바람에 밀리면서도 안식처 방콕보다 훨씬 나았다. 바람이 거센 드넓은 습지에는 뭉게구름이 하얗게 흩날렸다. 잠시 흐르는 구름을 보노라니 바람에 떠밀려서 날아오를 것 같았다. 사람들은 눈만 내놓은 채 짝을 지어 걸었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으며, 혼자 열심히 앞만 보고 걷는 이, 강변 둑에 주저앉아 쑥을 뜯는 여인들도 있었다. 나는 습지의 사물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었다. 유채꽃이 두런대며 나에게 말을 붙이는 것 같아서 꽃들의 대화를 엿들으려 몸을 숙였다.
한 달 전 유채꽃이 피기 전에 이곳을 산책하였다. 습지대는 ‘갓‘의 싹이 풀색으로 뒤덮여서 봄이 온 것을 알려주었다. 갓은 초록에 암자색이 혼재된 이파리와 순수 초록 잎의 두 가지 품종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오래도록 모르고 있다가 여기 안심습지대에서 두 가지라는 것을 배웠다. 문득 내가 신혼일 적에 짙은 자주색 갓으로 동치미를 담갔던 기억이 났다. 아무 것도 모르던 풋내기 시절 동치미 국물이 자주 빛이어서 무척 의아했다. 맛에는 차이가 없었으나 국물 색이 달랐다. 하얀 그릇에 담으니 멋스럽기는 하였으나 눈에 익숙하지 않았다.
유채꽃이리라 짐작했다. 의심 한번 해보지 않은 노란 꽃들에게 파묻혔다. 꽃 아래 잎들은 자주색과 초록이 어울려 녹자색을 띠었다. 그제야 얼마 전에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안심습지대에 핀 꽃은 유채가 아니었다. 갓 꽃도 노랬다. 앞이 툭 트인 아파트에서 바라보던 유채꽃이 아닌 갓 꽃을 발견한 셈이다. 김치 담가먹던 갓은 노란색 꽃이 피었다.
금호강 주변에는 밭농사를 짓는 곳이 많았다. 근래는 비닐 하우스가 온 밭을 채우고 있다. 아마 오랜 시간 습지대의 유채를 밀어내며 갓이 자리를 잡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갓이 꽃을 피웠던지. 아무튼 갓 꽃은 흐드러져서 모질게 불어대는 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강풍에는 향긋함이 실려서 나 잡아보란 듯 스쳐갔다. 허리를 구부려서 갓 꽃의 향내를 느껴봤다. 달달한 향기가 야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휘감겨서 금호강을 어루만졌다.
금호강에는 퇴적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작은 섬들이 많다. 그곳까지도 노랗다. ‘장관’이라는 용어만 생각날 뿐 어떠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유채꽃의 개화기간이 짧을 거라는 나의 노파심은 안심습지 갓 밭에 거름되라고 묻어버렸다. 한 줄기에서 나온 꽃봉오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갓 꽃은 말 그대로 피고지기를 한 달 여. 11층 거실의 통 유리 창은 갓 꽃 전람회장이었다. 갓 향은 바람에 흩날리며 나의 온 몸에도 문신을 새겼다.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갓 꽃향기는 금호강 강바람에 흩어졌다.
지인이 “저거 뜯어다 먹어도 되겠지예?” 글쎄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갓 꽃이 흐드러졌다.
아래 사진: 금호강과 안심 습지대의 갓 꽃이 '무상'을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