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185일째다. 딸 내외가 아기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칠곡에 있는 소아과로 부랴부랴 떠났다. 의사가 모유수유를 강력히 추진하는 곳이다. 딸 성향에 맞는 의사여서 멀리까지 예약을 하고 다닌다. 나도 가보니 신뢰감이 들었다.
세 식구가 나간 뒤 외출 준비를 했다. 신천동에서 내복을 챙겨 오지 않아 아랫도리가 썰렁해서 나서기 영 그랬다. 이 방 저 방 짐 정리가 덜 되어서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속에 입을 것을 찾아 헤맸다. 딸은 세간 도구가 많지 않아서 34평은 수납할 공간이 남아 돌았다. 그러니 동선도 길어져 왔다 갔다 몇 번 하다 겨우 얇은 것 하나 찾았다. 내 자식이지만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삿짐 직원들이 짐을 옮기면 거의 본래 자리로 넣어준다. 직원이 좁은 곳에서 넓은 거주지로 옮기니 정작 정리할 때는 어떻게 넣을 건지 질문을 했다. 딸 내외는 코로나 때문에 대충 해주고 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저희들이 하나씩 소독하며 다시 정리해야 한다면서. 두 사람은 이삿짐을 들여놓은 것을 확인하고 바로 사돈한테 일주일 피난 가 있었다. 맟선 이삿짐 직원들의 몸에 묻었을 코로나 균들이 손자에게 영향이 미칠까 봐서.
우리는 새 집에서 만났다. 세간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엉망진창이었다. 딸을 향한 내 마음도 불편했다. 주인이 살림살이 놓을 곳을 지정해주면, 인부들은 거기에 포장을 풀어서 놔둔다. 일주일 뒤 소독하고 정리정돈을 취향대로 하면, 온 돈을 주었으니몸이 고생을 덜했을 것이다. 돈은 이미 다 주었고, 짐 정리는 병아리 눈물만큼 해놓고 사위는 감기 증상으로 콧물을 훌쩍거렸다. 딸도 피곤해서 절절 거리며 헤맸다. 딸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빤한 시간에는 컴퓨터로 물건 구입하느라 시간 다 가고, 틈틈이 카톡 주고받아야 하니 집안일은 손도 못 댄다. 그러면서 나를 가르친다.
고인이 된 딸의 외할머니가 잘 쓰는 문자, '온 돈 주고 반 머리 깎는 놈'이라는 말. 어머니의 말 뜻은 돈을 준 만큼 효과가 덜 나타났을 때 하였다. 얘들에게 딱 맞는 것 같다. 딸에게 긴 말 짧은 말 하기도 주저된다. 대화가 짧아졌고, 내가 거리를 유지하려 말문을 닫았다. 내면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좋은 말로 바르게 가르쳐야 하나' 갈등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손자의 돌보미 비용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경제력이 필요하다'를 심각하게 배운다. 노모의 번뇌가 이제서 이해되었다. 본인이 벌어서 쓰다가 말년에는 가진 것 하나 없었으니 얼마나 그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을까.코로나로 인하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온갖 망상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휘말리기도 했다. 하여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귀가 길에는 아파트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11층에서 보이던 매화를 찾던 중 토종 동백이 붉게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올 겨울엔 동백 씨를 받아서 파종을 해봐야겠다.
매화는 역시 내 사랑이다. 운룡매나 와룡매는 매화 가지를 의도적으로 휘도록 했지 싶다. 매실나무는 곧게 뻗는 성질의 나무인데 구불구불 휜 것을 보면.
코로나는 잠시 잊었다.
사진: 정 혜
살구꽃.
살구꽃은 꽃받침이 사진처럼 뒤로 제치고 있으며, 향기가 매화보다는 한 수 아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