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가 내리는 산속 선원. "초작, 초옥, 촉" 낙수의 무질서한 마찰음. 지붕의 빗물이 대롱을 타고 내려오는 멋대로 가락. 꿩, 꿩, 꿩! 장끼가 까투리를 부르는 애정 어린 육성이 바람에 퍼져가는 산사의 오후는 모든 불협화음이 조화롭다.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은 새끼들을 유도하는 소릴까. 테라스에 앉아서 녹음방초들이 비 맞는 경음악을 들으니 마치 가뭄을 해갈하는 정기연주회를 듣는 것 같다.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 남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경청하는 것도 버릇이다. 호응을 해주고, 동조를 해주면서 '그랬구나' 머리를 끄덕이며 지그시 눈을 맞추기도 한다. '나는 네 편이야' '정말 잘했어' 이렇게 말 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경청하는 것이 되지 않는다. 무수히 빗발치는 화살을 맞은 후에야 말하는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타인보다 내 가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크다. 그런데 가족이 더 어렵다.
오늘은 코로나 19 바람에 정기법회가 6개월 만에 열렸다. 대구는 확진자 소식이 일주일째 없다. 아파트 앞 박 주영 축구장에 설치되었던 코로나 19 선별 관리소가 벌써 3주 전에 철거되었다. 3일 전부터 축구장도 개방했다. 그렇게 만난 법우들은 반가움뿐이었다.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빠니디 법우의 남편이 한 달 전에 별세했다. 역병이 대구에서 최고조를 기록하던 때라 다들 난감하였다. 이 법우는 아주 현명하게 장례를 마쳤다. 다른 법우가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하던 시점에 그 원칙을 어기는 불상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동승하고 가던 빠니디가 중요한 시기에 위반된 행동을 하더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빠니디의 말을 들으면서 '좀 섭섭하여 저러나…' 혼자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그기 아이고오~" 하며 불가피하게 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변론하였다. 듣고 있던 빠니디도 대화 중간에 끼어들어서 "나도 그기 아이고오~ 그렇더라 카는 말이다" 이런 대화가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서너 차례 반복되었다. 언성이 올라가지 않았으나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확실히 알아주는 것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법회를 마치고 법담이 오고 갔다. 한 쪽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대중 가운데 고령자가 "그기 아이고오~" 하면서 계속 이어질 법담을 분질러버렸다. 자신의 견해를 꺼낸 법우도 고령자에게 밑질세라 "그기 아이고오~ 그렇게 말 하마 안 되고오~" 평행선을 달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좀 다르면 어때서… 왜 내 말만 옳아야 하는데… 상대방의 말도 옳다고 인정을 좀 하면 본인의 격이 낮아져서 저러나.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내가 소중하면 타인도 그러하다.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내가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원(禪院)에는 신록이 짙어지고 있었다. 저리 무성하게 푸르러지건만 어느 것 하나 시기하거나 나서지 않았다. 키 큰 나무가 아래 잎을 누르면, 작은 나무 잎들은 눌리거나 옆으로 밀려나갔다. 나무 잎들은 비를 맞아 줄기가 쳐져도 그 비를 피하지 않았다. 인간이 모르는 것을 저 생명체들은 알고 있었을까. 안에서는 나의 의견을 내세우기 바빴지만, 바깥 자연만물은 소리를 내면서 비를 맞았다. 그릇은 비워야 빗물을 담을 수 있다. 비는 빗물을 받는 용기에 모여서 함께 흘러내렸다.
대문 사진: 울주군 '붓다의 길따라' 선원 화단에 핀 붓꽃.
아래 사진: 선원 담장 밖으로 아카시아 꽃이 비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