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왈츠 리듬에 몸을 실었다. 손자는 미소를 띤 눈빛으로 할머니를 내려다보고, 한 손은 그녀의 등에 살포시 대고 있다. 파트너 할머니 검지 끝에는 드레스 자락이 들린 채 손자와 빙글빙글 돌면서 박자를 타고 날았다. 손자는 세련된 맵시로 그녀를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다.
쿵 짝짝 쿵 짜자 쿵 짝짝 쿵 짜자~ 할머니는 손자를 재우려고 손전화기로 왈츠를 재생시켰다. 잠이 와서 눈을 비비던 녀석이 등에 뺨을 갖다 댔다. 흘러나오는 음률에 맞춰서 '안나 카레니나'가 된 듯 나붓, 나붓 방 안을 돌았다. 콧노래를 흥얼대며 허리를 다소곳이 앞으로 숙였다. 오른쪽으로 두어 번 돌다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돈다. 손자가 잠이 빨리 들지 않으면 의도적으로 크게 원을 그린다. 손자가 잠이 들 때까지.
신생아 손자를 재우는 것은 난제였다. 특히 밤에 재우기만 하면 잘 잤으나 재우기가 어려운 까칠한 손자였다. 난 손자가 네,다섯 살 즈음되면 한자서예교실을 함께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 궁여지책으로 아기 재울 때 천자문을 외우려고 시도했다. 사위에게 인쇄를 부탁하여 겁 없이 덤볐다. 기해년 11월 어느 날 도전장을 던졌다.
딸은 예기치 않은 사정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일주일 입원기간은 손자에게 내가 모르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퇴원 후 손자의 잠투정은 내가 황혼 육아에 뛰어든 것만큼 높디높은 철벽이었다. 이때는 수심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손자는 신생아실에서 무수한 별이었다. 근무자들이 손자를 면회하러 갈 적마다 멀리서 침대를 밀고 왔다. 자주 아기 위치를 바꾸어서 이상하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손자를 보러 대기실로 가면 매번 악을 쓰며 우는 아기가 있었다. 누군지도 모른 채 "저 녀석 한 성깔 하네"라고 무관심하게 들었다.
손자의 울음은 유별났다. 울기 시작하면 벌렁 뒤로 힘을 주어 뻗대면서 입은 벌린 채 호흡을 멈추었다. 몇 초간 새파랗게 입술이 변했다. 숨을 쉬지 않고 있다가 일시에 천둥 같은 소리를 토해냈다. 손자가 호흡하지 않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며칠 지켜보니 대단한 성미의 소유자임을 알았다. 내 친정어머니가 그랬다. 그래서 손자를 이해할 수 있었고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요란한 잠투정인 줄 짐작은 했지만, 나와 딸은 손자의 강한 울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는 아기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손자의 성정이 그러한 것을 버릇 들인다며 울리는 것은 인성 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우는 녀석을 눕히지 못해 계속 안게 되었다. 손자를 안고 재우면 두 팔이 아파 오면서 힘이 들었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딸에게 포대기 타령을 불렀다. 딸도 포대기의 장점을 영상으로 보고 필요성을 느꼈다. 급기야 53일 만에 내가 손자를 업었다. 손자가 업히는 순간 머리를 등에 댔다.
손자는 업고도 빨리 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염불삼매에 빠지지 못하고 마음만 조급해졌다. 그래서 염불은 세 번으로 끝내고 천자문을 암송하면서 왔다 갔다 했다. 나의 급해진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었다. 천자문은 지능이 낮은 내게 쉽게 안겨들지 않았다. 손자가 듣는 것은 분명한데 자꾸 더듬거려지고, 생각이 나지 않으니 슬며시 부끄럽고 멋쩍어졌다.
"할머니, 그것도 못 외워요. 할머니 외우는 소리 듣고 저는 다 외웠거든요."
하고도 남을 녀석인데 아직 말을 못 해 천만다행이다. 손자는 하루하루 행동발달 상황이 달라져서 외우고 암송하는 것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768자 멈춤 상태에서 커서가 반짝거리고 있다.
외운 것이 아까웠다. 틈틈이 짧은 시간을 내서 외우면, 그동안 외웠던 것들은 다 어디로 출타를 했는지. 그만두려고 생각하니 손자와 한 약속을 어기는 꼴이 되는 것 같고. 번뇌하느니 하차를 떠올리지만 외운 만큼 집착이 생겼다. 다 외우고 싶은 마음과 몸은 따로였다. 지 어미가 복직하면 천자문 외우기가 가능할 것 같다. 형편 닿는 대로 생활하면서 외우는 끈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내가 올 3월부터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아기를 업고서 재울 방법을 달리해보았다. 정식으로 추는 왈츠가 아니고, 아기를 업은 채 손자와 나를 박자에 실었다. 탁월했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양 왈츠를 즐겼다. 손자는 검지와 중지를 빨면서 잠이 들었다. 문득 손자가 20살 될 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나는 87세가 된다. 그 해 나의 생일에 손자에게 왈츠를 요청할 것이다. 손자의 선물 대신 "Shall we waltz?" 이바노비치나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도 좋지만 쇼스타코비치의 곡으로 드레스 한 자락을 예쁘게 잡고 손자의 품에서 심장이 펌프질 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8개월 즈음에는 업혀서 잠드는 시간이 십여분 남짓으로 짧아졌다. 항상 하는 것이 없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찔레꽃.
아래 사진:
빙글빙글 돌아가며 왈츠를 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