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스크 코 위로 바로 써"

코로나 19, 니 언제 갈 낀데 1

by 정 혜

손자를 유모차에 태웠다. 지 어미처럼 나도 유모차의 차단막을 내렸다. 아기는 승강기에 설치된 안내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또 눈동자가 층마다 불이 켜져도 눈여겨보느라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승강기 이용자가 뜸한 시각, 나는 딸 먼저 손자와 승강기에 올랐다. 차단막만 내리고 느긋이 1층 도착을 기다렸다. 7층에서 나이 든 남자가 탔다. 딸이었다면 유모차를 돌렸을 것인데, 난 그대로 있으면서 찝찝함을 느꼈다.


나의 주관이 코로나 19로 인하여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딸은 공무원으로 육아 휴직 중이고, 사위는 장애 어린이집 교사다. 두 사람은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으며 코로나 19를 '피하자, 마주치지 말자' 파다. 나는 정면 돌파하자는 주의다. 딸의 '강도 높은 잔소리는 사위다' 할 정도로 나를 괴롭힌다. 세뇌가 되다시피 하여 노인이 타자마자 경계심부터 생겼다. 그런데 승강기는 눈치 없이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가 버렸다. 영감님은 승강기 조작이 서툴렀다. 그 사이에 딸이 타게 되었다.


"엄마, 마스크 코 위로 바로 써" 나는 난시 안경을 쓴다. 마스크는 안경 쓰는 사람에게 상당히 불편한 소품이다. 딸의 지적은 여러 번 반복되었으며 오늘 또 매의 눈에 포착됐다. 나의 이유는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렇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내 처지는 안중에도 없다.


나도 내 어머니에게 마구 몰아붙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후회하면서 오늘까지도 반성하고 있다. '내가 한 만큼 되받고 있구나'를 느끼면서. 그때는 왜 그렇게 30여 년의 알음알이로 50년 이상 살았는 어른에게 대들었는지.


내가 철이 들었는지 자꾸만 머리가 숙여진다. 그러니 딸에게도 엄마라는 명목으로 반박할 의사가 없다. '저 아이가 후회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해야만 될까.' 손자가 자라서 말대꾸를 하거나 부모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할 때 '아차' 싶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손자가 함께 있을 때 더 조심한다. 그리고 지 어미의 위상을 높여주려고 한다.


나와 딸, 손자를 데리고 3대가 외출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도중하차하고, 사돈과 사위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갔다. 시어머니에게는 딸이 고분고분했다. 어떤 이는 '시금치 시'자 꼴도 보기 싫다고 했다. 나는 아예 포기하고 시어른을 대해서 그랬는지 오히려 친정어머니보다 편했다. 시집 식구들에게는 생색이 날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친정은 해봐야 빛을 보지 못했다. 내 가슴이 아프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딸은 상황이 다르다. 내가 나의 친정어머니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배워서 자비를 베풀려고 실천한다. 말은 불자네 하면서 행동이 반대인 사람과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식에게 집착하지 않으려고 붓다의 가르침을 항상 공부한다. 딸이 사돈에게 사랑스럽게 구는 것이 밉지 않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딸은 시어머니가 멀게만 느껴지나 보다. 그거야 내 알 바 아니니까.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내가 딸의 계획과 다르게 어떤 일을 처리했다고 언성이 높아졌다. 가족과의 대화가 타인보다 더 어렵다. 자식의 심정을 헤아려 주면 그것으로 끝이건만, 이 속 좁은 아낙은 나도 알아달라고 소리를 높였으니··· 손자가 옥신각신하는 할머니와 엄마를 쳐다보느라 눈이 왔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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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장미꽃이 많이 핀다. 그러나 찔레꽃도 피어서 향기를 가만히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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