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달 두 셋째 토요일 오후에는 한자를 배우고 있다. 나는 4개월 만에 동참하였다. 2월 교재 내용은 코로나 19에 관련한 영국 BBC 방송 기사였다.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져 지하철을 탔다. 내 옆에는 두 여자가 재잘거리고 있었다. "이곳은 노약자실이니까 마스크를 끼고 말하든지, 바르게 끼고 이야기를 하세요."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얼핏 누군가 앞자리에 앉았다. 중년은 지난 것 같은 남성이 눈 밑에까지 마스크를 하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차 "대화를 하려면 마스크를 바로 하고 말을 하세요. 여기는 노약자실이니까요." 나는 순간 지하철에 노약자실도 있었나 하고 기억들을 불러냈다.
한 여자가 일어섰다.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로 옮겼다. 나는 난시 안경 때문에 콧구멍 아래로 마스크를 내려서 사용한다. 나도 모르게 손이 마스크를 콧등 위로 올렸다. 천이라서 금방 내려왔고, 갑갑하였지만 잠시 견디면서 '저 양반은 원리, 원칙주의자일 거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앞뒤가 콱 막힌 원칙주의자가 필요하다고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말한다. 그 옛날 중국 위나라의 '위앙'이 진나라로 가서 효공에게 채용되어 변법을 만들었다. 그 변법에 의해서 자신도 죽었다. 그런 원칙주의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숨 막혀 죽는 위인은 나다.
지난 금요일 오후 손자를 업고 딸 몰래 승강기를 탔다. 딸은 손자를 데리고 타면 좁은 승강기의 공기를 차단하려고 얇은 천을 씌웠다. 그런데 나는 마스크도 하지 않고 손자와 탔으니 당연히 도마 위에 올라앉는다. 아니나 다를까 정색을 하고 "엄마, 나랑 얘기 좀 해요." 뻔할 뻔 자라 능청스럽게 딸 옆에 앉기는 앉았지만 편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간절히 부탁하는데, 제발 마스크 사용하고 아이를 감싸주면 고맙겠어요."라고 언중유골을 선포했다.
손자는 후덥지근한 실내보다 바깥을 좋아했다. 나도 앉아서 노는 것보다 핑계를 대며 손자를 둘러업는다. 이 녀석이 좋아서 업힌 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근래는 매일 복도로 나가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금요일 오전부터는 내가 간도 크게 살짝 승강기 단추를 눌렀다. 만약 아파트 단지 내 불상사가 발생했다면 어떤 조치가 벌써 취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앞에 위치한 '박 주영 축구장'에 설치하였던 '코로나 선별 관리소'가 철거된 지 1개월이나 되었다. 일주일 전부터는 축구장을 활용하고 있다. 걱정할 것이 없는데도 외부로 나가면 역병이 옮을까 전전긍긍이다. 딸 내외는.
일주일 전, 딸이 여동생 기일이어서 상경 표를 예매해 주었다. 그리고 바로 카 톡이 왔다. 서울에는 코로나로 인해 난리가 났으니 다녀오면 자가격리를 하라는 것이다. 전화가 다시 왔다. 면역력 약한 손자가 관건이었다. 내가 빼도 박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손자가 아니면 다 떨쳐버릴 것 같았다. 밤 11시 지나서 고민하다가 예매한 표를 취소했다.
딸과 사위는 한의원에 가야 한다. 이 코로나가 꺼림칙해서 움직일 연구를 하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건강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정도가 된다고 해도 뭉그적거리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위인들이다. 똥이 더러워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만에 하나 나로 인해 연기적으로 발생하는 소용돌이의 원인이 된다고 강변한다.
"아이고, 그래라. 잘난 느그 가고 싶을 때 가거라."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 임당동고분군.
경산에 위치했던 신라시대의 지방 소국, ‘압독국(押督國)’ 혹은 ‘압량소국(押梁小國)’
임당유적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약 천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고대 경산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임당유적은 1982년 임당동고분군을 시작으로 경산 임당동․조영동, 압량면 부적리․신대리 등에서 현재까지 대규모의 고분군과 마을유적, 토성(土城), 환호와 소택지 등이 발굴되었다.
아래 사진: 선원에 봄이 머물고 있다. 연두빛 이파리에 맺힌 빗방울이 청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