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빠지는 소리도 자주 하면

by 정 혜

딸의 아파트로 가기 전 한의원까지 걸었다. 야산을 넘어가는 동안 나는 꽃이 되었고, 이 순간 충실히 꽃 사진에 빠졌다. 지금을 놓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것이 꽃이다. 손자도 중요하지만, 나의 취미생활은 더 귀한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3일 밤을 보내고 월요일 오후에 손자를 만났다. 그동안 울음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강하면서 밀어붙이는 소리가 '사내답다'가 확연했다. 배가 고파 울어대는데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팔짝팔짝 뛰며 들뛰었다.



손자가 이유식 먹는 의자를 바닥에 엎드린 채 짚고 일어섰다. 며칠 전부터는 내가 아이를 붙잡고 한 발씩 의자에 올라가도록 훈련을 시켰다. 그랬더니 손자가 기어 와서 의자를 잡고 일어서는 것은 쉽사리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발을 올리려고 계속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얼른 아기를 뒤에서 부축했더니 한 발을 올리면서, 엉덩이에 힘을 주어 남은 다리도 힘겹게 당겼다.



내가 말 못 하는 손자 뒤에서 용을 얼마나 쓰는지 배가 이내 고플 지경이다. 그제는 느리지만 발발 떨면서 오르내리는 동작이 이어졌다. 또 어제 아침에는 손자가 잽싸게 기어가길래 유심히 바라보니 의자를 짚고 일어나 올라갈 자세를 취했다. 가벼운 플라스틱이라서 급히 다가가 의자를 잡았더니 이내 발을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곧바로 내려오려고 다리를 휘저었다. 손자는 나를 의지하여 연습을 여러 차례 했다.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인이 문조 한 쌍을 주었다. 삼 남매 정서함양을 위해 키우면서 내가 공부를 많이 했다. 문조는 진하지 않은 잿빛의 참새만 한 새다. 귀티 나는 잿빛이었으며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로 소통했다. 내가 각별한 애정으로 키우면서 관찰을 해보니 이쁜만큼 주변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단점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암수가 번갈아가면서 알을 품어 부화시켰다. 이 소리를 지인에게 했더니 성질이 급해서 알을 품지 못하는 새라며 곧이듣지 않았다. 그러면서 십자매와 함께 키우라는 것이다. 십자매 부부가 알을 품는 것을 보고 따라 한다는 것 같았다.



아무튼 부화한 새끼가 두 마리였는데 가만히 보니 한 녀석이 횃대에 올라앉아 "쉭, 쉬이"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싶었는데 차츰 휘파람 배우는 것처럼 자꾸 소리를 냈다. 모이 먹고 물 먹고, 횃대로 돌아가 날개 다듬고는 이내 연습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문조를 키우며 반복학습의 의미와 효과를 배웠다.



문조의 옥을 굴리는 듯한 노래는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바람 빠지는 소리의 되풀이가, 은쟁반 위 옥구슬이 구르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었다. 듣는 가족들이 다 좋아하며 맑고 영롱한 새소리에 신기해했다. 새끼 문조의 자신감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였다. 이내 여자 문조를 꿰차고 횟대에 올라앉아서 뽀뽀를 해댔다. 사람 같았으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뽀뽀라니...

손자는 식사 의자를 붙잡고 오르고 내리는 동작과 목욕통에서도 앉았다 일어나는 연습을 병행했다. 기는 것은 빛의 속도처럼 빠르다. 그런데 양 팔을 번갈아가면서 움직여야 한다고 딸 내외가 조바심을 냈다. 손자가 기는 모습은 마치 물개가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은 순차적으로 이루지기에 기다리는 자세부터 어른은 갖추어야 한다. 인내하라고 조언하는 일은 조부모의 몫이고, 초년의 부모는 그 어른에게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했다. 부모의 바른 언행은 자식과 타인에게 존경받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손자를 키우며 나의 가정교육관이 새롭게 정립되었다. 잘 배운 가정교육이 자식의 인성을 좌우한다. 그리고 부모는 담담(淡淡)해야 한다. 또 자식의 등대가 되어야 한다. 멀리서 찾아드는 배를 인도하는 것이 등대다. 바르게 찾을 수 있도록 곧고 일정한 빛을 비쳐야 한다. 그것은 바른 견해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 이것이 '어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부모의 역할이다.

20190518_214624.jpg


https://blog.naver.com/jsp081454/221974875644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애고~ 겁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