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지난 해 이맘 때부터 육아휴직 준비를 했다. 나날이 더워지는 대구광역시의 무더위를 피할 곳이 생겨서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 가까이 하기엔 멀고, 멀 것 같은데 가까운 딸과의 줄 당기기. 일년이 다 되어가니 '혼자 이렇게 편안해도 되나?'라는 의문이 문득 문득 사흘 내 스치고 지나갔다. 나의 일상이었던 딸과 손자의 하루가 간소하게 지나가니 하는 말이다. 이렇듯 반복되었던 순간들은 나의 의식 속 한 부분에 자리잡았다는 뜻이다.
어제는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저께 흠뻑 뿌리가 젖도록 물을 주었다는 핑계로. 하지만 오늘은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는 성의를 보이려고 슬리퍼에 발을 넣었다. 옥상에는 오전 햇빛이 물통에 가득 찬 물 위를 비추어 눈이 산뜻했다. 물과 햇살이 있으니 가나안 땅이 부러울 것 없는 옥상이 되었다. 다 죽어가던 호박이 수꽃을 노랗게 두 송이나 피웠다. 대추나무에도 자잘한 꽃봉오리가 제법 보였다. 석류는 주홍빛 봉오리가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내밀었고, 블루베리는 열매가 하나도 달리지 않았다.
호박은 자웅동체(雌雄同體)하며 넝쿨을 뻗어 바닥에 뿌리를 내리며 기는 식물이다. 수꽃이 먼저 꽃을 피웠다. 옥상을 정탐하는 것인지 계속 수꽃이 피다가 호박이 달린 봉오리가 뒤를 이어 꽃을 피우는 것을 해마다 봤다. 어제 사진을 찍으면서 관찰하니 암꽃이 보였는데 이미 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덩굴손이 뻗기 시작했다. 원인과 결과가 잎 줄기 마디마다 한 넝쿨에 뭉쳐 있었다. 덩굴손, 수꽃, 암꽃이 한 덩어리로 출발하여 제 갈길을 갔다. 덩굴손은 뻗으면서 지지할 곳을 더듬어 찾고, 암수꽃은 각각의 역할에 충실했다.
어제 본 암꽃 봉오리는 꽃이 필 인연이 아니었다. 자랄 환경이 좋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옥상은 식물이 자라기 척박한 곳이었다. 여름에는 사막을 능가하고, 겨울은 시베리아 못지 않은 맹추위가 도사린다. 그런 장소에 내가 올라가서 환경을 변화시켜 보려 했지만, 호박은 해마다 견디기 힘들었다. 모름지기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농부가 경험이 풍부하고 사랑을 쏟아야만 했다. 나는 그동안 얼치기 경험과 사랑이라는 욕심만 가득한 채 오르내렸다.
어디 식물만 사랑과 관심이 필요할까. 사람은 사랑과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하다. 손자 때문인지 올해 유독 심각하게 느껴진다. 호박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많이 주었다. 호박은 사람의 손이 닿는 관심이나 간섭을 싫어하고, 제 멋대로 뿌리내리기 원하는 것을 배웠다. 이 바보는 바르게 뻗어나가라고 길을 인도했다. 물론 옥상의 열기도 한 몫 했겠지만, 나의 간섭을 완강히 거부했다. 아기를 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과 호박의 일생 또한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요즘 손자가 그렇다. 스스로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눈이 더 반짝이며 장난감에서 내 손을 밀어냈다. 8개월 지난 아기가 자기주장을 강력히 표시했다. 애초에 손자의 울음소리로 다 알아봤지만. 이 여름 더위를 이겨내면서 호박은 암꽃을 피우며 멋대로 자랄 것이고, 내 손자는 혼자 서서 걸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꿀과 관심이라는 건강식품을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