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 꿍!

by 정 혜

드디어 손자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쿵! 소리에 놀라서 쳐다보니 손자가 이미 누운 상태였다. 잽싸게 다가가서 아이를 품에 안았다. 놀란 울음소리가 자지러지듯 요란했다. 딸이 방으로 달려 들어와 애를 받아서 달랬다. 오른쪽 이마 끝이 방바닥에 들이박은 빨간 흔적이 역력했다.


사위는 출근하려고 몸을 씻고 있었다. 다행히 손자의 울음소리는 듣지 못했다. 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딸의 한숨소리에 불현듯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 내가 갓난쟁이일 때 아버지가 퇴근하여 나한테 티끌만 한 흠이라도 있으면, 그날은 어머니 마음이 무지무지하게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내가 생채기라도 생기면 아픈 것은 뒷전이고 아버지에게 야단맞는 것이 더 두려웠다고.


내 남편은 그런 적이 없다. 아이를 예뻐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사위가 눈치챌까 봐 은근히 걱정이 앞섰으나 손자가 이내 울음을 그쳤다. 그런데 사위가 내 아버지를 닮아 지 아내를 은근히 닦달하고 있었다.


손자와 자주 숨바꼭질을 한다. 손자가 침대 끝머리에서 나를 찾으려고 고개를 들어서 빠끔히 아래로 내려 보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내가 '까꿍!' 하면서 손자와 눈이 마주치면, 손자는 손과 다리를 흔들어대며 깔깔거렸다. 나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배를 손에 쥐고 손자처럼 아기가 되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며칠 전 소파에 누인 채 분유를 먹였다. 언제 적부터 분유통을 제 손으로 잡고 먹었는데, 때마침 거실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제 손으로 잡고 계속 먹으리라 싶어 벌떡 일어나 한 발 떼는 찰나 아기가 구르면서 소파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재빠르게 손을 뻗었다. 내 손가락 끝이 닿으면서 아기 무게만큼 바닥에서 마찰음이 났다. 나는 급히 아기를 끌어안고 진정을 시키려니 성깔 있는 내 손자가 벌떡 뒤로 넘어가며 울어 젖혔다.


내 아이들 키울 때는 침대와 소파가 없었다. 두 딸이 떨어져 다친 사고는 거의 없었다. 빨래와 기저귀 빨고, 청소 외에는 거의 아이 옆에서 놀아주었다. 나는 요즘 젊은이들처럼 컴퓨터에 손 전화기, 각종 편리한 가전제품이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힘들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다. 그리고 아이와 한마음이 되어서 놀아주지 않는 것이 참으로 못마땅하다.


딸도 손자만 할 때 다친 일이 있다. 나의 쌍둥이는 방에서 둘이 잘 놀았다. 먼저 태어난 손자의 어멈이 개구쟁이였다. 하루는 방문을 닫는데 비명에 가까운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개구쟁이가 장난친다 싶었으나 혹시 하는 마음에 얼른 문을 열었다. 고사리 같은 딸의 손가락이 문틈에 끼여 있었다. 나는 질겁하여 딸과 함께 울다시피 했다. 즉시 남편에게 전화를 하여 병원에 갔더니 다행히도 별 탈이 없었다,


그 딸이 엄마가 되었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무상한 세월은 또 과거가 되고 있다. 우리 모녀는 주관과 개성이 완전히 다르다. 사사건건 불똥이 많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언제나 내가 먼저 뒤로 물러나면서 잘못됐다고 고개를 숙인다. 나도 그때는 그랬으니까.

첫아이를 키우는 풋내기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의 경륜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백 번 이야기해도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이나 동감은 없다. 서울 가 보지 않은 사람이 가 본 사람을 이긴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나는 조용히 사는데 손을 들었다. 마음을 비워 내는 일은 수행이다. 나는 날마다 손자를 돌봐주면서 조금씩 그릇이 비워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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