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렸다. 길 건너 버스 정류장 보도에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신기한 광경이라 눈을 떼지 않고 몇 분간 계속 봤다. '다쳤거나 조금 있으면 날겠지' 하며 산책할 장소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난데없이 까마귀가 떠들어 댔다. 까치와 까마귀의 영역 다툼은 종종 봐 왔던 터라 그러려니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보도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다시 훔쳐봤다. 산책을 하지 말까.
사진을 찍으려고 까마귀 가까이 갔다. 꾀죄죄한 몰골의 새까만 녀석이 나를 힐끗거리며 바라봤다. 다리를 다친 것 같기도 하여 '내가 구해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사진부터 찍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겁도 없이 큰길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학교 주변이라 차들이 서행을 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내가 차들에게 손짓을 하며 양산을 편 채 까마귀를 밀어서 갈 길을 재촉했다. 갈 곳이라고는 대로 한복판이었지만 그래도 안전할 것 같은 길 건너 인도로 몰았다. 새끼는 날지 않고 폴짝폴짝 앞으로 뛰었다. 마침 초등학교 후문이 열려 있어 그리 들어가도록 유도하였다. 초등학교 건물 위에서 부모가 새끼를 확인했다. 새끼도 응답하며 건재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까마귀 부부는 학교 건너편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새끼가 있는 곳을 응시했다. 잠시 관망하나 했더니 학교 옥상 위로 날아와 선회하였다. 뒤따라 남은 한 마리도 자리를 옮겨 학교 옥상 피뢰침에 앉았다. 새끼 주변을 빙 빙 돌던 녀석이 피뢰침 옆으로 착지했다. 그리고는 이내 날아오르자 피뢰침에 있던 까마귀도 날개를 펼쳤다.
까마귀 부부는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날아다녔다. 새끼는 안심이 되는 듯 가만히 한 자리에 있다가 3~40cm 정도 되는 난간으로 날개를 피고 훌쩍 올라앉았다. 까마귀 한 마리가 새끼 가까이 있는 나무에 앉아서 '가만히 그 자리에 있으라'고 달래는 것처럼 나직이 깍깍거렸다. 불안하던 내 마음이 그제야 새끼도 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발걸음을 떼면서도 자꾸 그 가족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학교 건물 옥상 피뢰침에는 까마귀 한 녀석이 진득이 머물렀다. 한 까마귀는 잠시도 머물지 않고 새끼 가까이서 배회하였다. 그러다 두 마리가 같이 공중을 선회하며 "까아~악 깍 깍" "꺄꺅" 소리를 주고받았다. 먼저 날아오르는 것은 필시 암 까마귀 이리라. 까마귀의 어미는 오로지 새끼 생각뿐이었다. 아비는 피뢰침에 올라앉아 있는 것은 '나 여기 있으니 안심하고 있거라.'라는 뜻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것 같은 인상도 감출 수 없었다.
새끼가 날기 연습을 하다 보도에 내려앉아서 농땡이를 친 것 같다. 까마귀 부부는 새끼에게 얼른 날아오르라고 그들만의 대화가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대부분의 새들은 새끼를 유인하기 위해 어미 입에 잘 먹는 먹이를 물고서 곧 줄 듯이 하면서 날기 연습을 시켰다. 그러나 차가 번잡하게 다니는 대로(大路) 상에서 까마귀 부부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자식이 속을 썩이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이런 미물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 적 화단이 새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주방에서 일을 하다 말고 급히 창문을 열었다. 이름 모르는 작은 새들이 나지막한 나무에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뻐서 한참 소파에 배를 댄 채 재밌게 눈여겨봤다. 가만히 보니 새끼들에게 벌레나 곤충 잡는 것을 가르치는 것 같았다. 부모가 번갈아 가면서 먹이를 잡아 한 놈에게 먹일라치면 다른 녀석들이 입을 동시에 벌리고 짹! 짹! 거렸다. 그래서 요란스러웠던 것이다. 할 일은 태산인데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면서 계속 내다보게 되었다. 한참 후 부모가 담장 위로 올라앉아 낮게 지저귀니 일시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며칠 새끼들을 데리고 내 집 화단에 왔다.
다 떠난 줄 알았다. 한 마리가 얕은 나무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조용히 놀고 있었다. 옆 가지로 날아오르기도 했는데 도무지 위로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높지 않은 곳에서 날기 연습도 하는 것 같았다. 주방에서 궁금하여 내다보면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놀았다. 그렇게 유유자적했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겁이 많거나, 엉뚱한 구석이 있어서 부모나 형제들에게 눈총 받을 확률이 높았다. 형제들은 잘 따라 했지만, 저 녀석이 높은 곳에서의 연습은 가슴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으리라. 내 아이들이 성장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눈총 줄 일 아니라는 것이 느껴지기도.
날이 어둑해졌다. 밖에서 낮은 새소리가 들렸다. 얼른 창문을 열었더니 담장에 어른 새가 새끼를 불렀다. 그제야 새끼가 빼꼼히 올려다보며 화답을 했다. 어른이 아래로 내려와서 함께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 새끼는 어머니가 딴짓하는 아이를 부르면 못 들은 척 능청스럽게 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끄럽게 "왜 엄마 따라다니면서 배우지 않고 애 먹이느냐.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그러는 것 같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서 뭐 하고 놀았어? 배 고프지 않아? 나랑 함께 집으로 갈래."라고 의사를 묻는 것 같았다.
까마귀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태양신 아폴론의 새였다. 아폴론의 연인 코로니스가 인간과 정을 통하자, 까마귀가 이를 알려주었다. 분기탱천한 아폴론은 쌍둥이 동생 아르테미스를 시켜서 죽이게 했다. 그리고 불행한 소식을 전한 까마귀를 검은 새로 바꿔버린다. 이때부터 까마귀는 흰색에서 까만색 새가 되었다고 한다.
까마귀는 두목 없이 자유롭게 가족중심으로 산다고 한다. 그래서 오합지졸(烏合之卒)이란 말이 나왔다나. 가끔 다른 배우자와 바람도 피운다고 하니 인간들과 그리 차이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은혜를 아는 영리한 새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또 까마귀만의 복잡한 신호체계가 있다고 했다. 아, 새끼를 독려하느라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댔나 보다. 문득 나를 알아보고 보은 하기 위해서 반짝이는 물건을 물어다 나르는 것은 아닐는지. 만약이지만, 주인이 주지 않은 물건을 들고 온다면? 그것은 작은 것일망정 습득이 아니고 도둑질이 된다. 나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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