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초순 일요법회일. 일주일 만에 법당 현관문을 열었다. 어둑한 법당으로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갔다. 어둠이 눈에 익자 사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 여름 내 결로(結露)로 법당 바닥에는 냇물이 흘렀다. 장병들과 장판을 걷어내고 바닥을 말렸다. 아직 장판을 깔 시기가 아니어서 법회 봉행할 부분만 자리를 깔아 절하고 앉을 곳을 마련했다.
뭔가 작은 물체가 희끗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이름 모르는 새 한 마리가 눈만 끔벅거리며 앉아 있었다. 순간 충격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병들에게 살며시 집어서 밖으로 날려주라고 했더니 “그거 징그러워서 못 만져요” 20 초반의 청년 그것도 군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무척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내가 잡으려고 새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 어~, 어~~~ 살 살 하세요" 고참이 앓는 소리를 했다. 살그머니 잡았다. 어떤 반항도 못하고 내 손 안에서 동그란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그제서 “안 무서워요?” “유리창을 향해 날아가려다 부딪힌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졌나 봐. 아직 정신 차릴 여유가 없는 것 같구나”
맑은 유리가 허공인 줄 알고 돌진하다 부딪쳐 죽는다고 들었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 법당 유리창을 둘러봤다. 열린 곳은 없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의문스러웠다. 이른 오전, 작고 까만 새가 법회 전에 발견되었다. 법당 문을 열기까지 혼자 나가려고 얼마나 애를 태웠을지 짐작이 되었다. ‘새 대가리‘라며 상대를 폄하하는 말이 있다. 한 번 부딪혔으면 다시 비행을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새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날아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새는 본능적이다. 새는 오로지 목적을 향해 날아다닌다. 자신과 새끼를 먹일 모이를 찾아서. 생존을 위해 먹을 뿐이다. 그리고 종족보존의 교미. 봄이면 수컷은 멋지게 집을 지어 놓고 암컷에게 구혼한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키워서 이소(移所)시킨다. 이것이 새의 한 생이다. 단순하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동물이다. 유리창이라는 장애물을 만나면 피할 연구를 미리 한다. 새처럼 무지한 도전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한다. 목적이 있지만 쉽게 주저앉으며 추락해버린다.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닥쳐 고통스럽게 만드는 거야”라며 비탄에 빠져버린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무기력해진다. 사람은 생각이 많아 매사 복잡하다.
새는 뇌진탕 여파로 내 손에서 가만히 있었다. 법당 밖으로 나가 화단 분리대 시멘트 위에 올렸다. 새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중심을 잡으려 허둥대는 새를 보면서 신라시대 솔거 선조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유리창이 아닌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내려앉으려다 부딪혀 죽는 새가 셀 수 없을 정도였다면, 그 그림이 얼마나 사실성이 뛰어났겠는가.
새가 정신 차리지 못할 때 손으로 만져본다며 고참이 나섰다. 후임이 “어, 어~~, 어~~~ 사알 살 하세요~~” 바라보면서 지레 몸을 움츠린다. 새는 몸을 가누려고 뒤뚱거리느라 선임이 손을 내밀어도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선임의 손 안에서 심장소리만 할딱거렸다. 몸은 본능적으로 바로 잡는 것 같았으나, 두 발은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많이 아팠지?” 선임이 새를 쓰다듬으며 안쓰러워했다. 후임을 바라보며 “너도 만져봐. 괜찮아” 형제가 하나나 둘 뿐인 장병들인데 마치 친형제처럼 다정했다. 새가 모이를 먹지 못해 빨리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론을 장병들이 내렸다. 내가 간식으로 먹을 김밥 한 개를 선임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김밥 먹어 봐” 후임이 새에게 권했다. 자비를 베푸는 인간들이 두려워 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임이 소리를 지르며 후임을 기선 제압하려는 곳이 아닌, 이곳 법당은 극락이다. 새는 천당을 알지 못한다. 단지 살아서 날아올라야 하는 목적뿐이다. 살았으니 포기는 없을 것이다.
새와 김밥은 연(蓮)을 심어둔 함지박에 물도 먹으라고 연잎 위에 놓아주었다. 법회를 마치고 새가 궁금하였다. 작은 새는 사람의 인기척에 숲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생각 없는 새가 사유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말라’ ‘최선을 다 하라. 최선을 다한 삶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가르침만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렸다. 장병들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마음, 자비심을 배우는 반나절의 하루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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