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니 언제 갈 낀데 6

자가격리 이틀째

by 정 혜

화요일 어제 아침, 창 밖으로 화단을 내다봤다. 붉게 피는 인동초가 봉오리를 바나나처럼 펼치고 있다. 해가 중천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꽃이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하였다. 인동초 꽃 향기는 신선하면서도 은근히 나를 유혹하는 매력을 가졌다. '야성적이다, 때 묻지 않았다' 등의 단어가 연상되면서 짧은 어휘력의 한계를 느꼈다. 꽃 사진은 한 낮보다 지는 햇빛에 찍는 것을 즐긴다. 옥상에도 시멘트 바닥의 열을 낮추려고 키우는 화분이 생각났다. 내일은 꼭 올라가 보자며 미루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손전화기를 들었다. 정오의 해가 따가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휘 둘러보니 물을 담는 큰 통은 이미 메말라 물 때와 먼지가 누룽지처럼 들떠 있고, 한 포기의 작두콩과 호박은 기절 상태, 대추나무와 석류, 복숭아나무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다 지쳐서 축 쳐졌으며, 블루베리는 흙이 많아 그나마 버티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내가 느껴야 할 더위가 싫어서 큰 소리로 "해 지고 올라와서 물 줄게." 하고 등을 돌렸다.


고민 아닌 고민으로 좀 끙끙 대는 중이다. 손자가 있는 아파트에 있으면, 한 여름의 옥상은 매일 물을 주어도 모자랄 열기(熱氣)로 몸살을 앓는다. 멀쩡한 생물을 죽으라고 내팽개치자니 내가 잔인한 것 같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더위만 깊어지고 있다. 법정스님의 글처럼 나도 과감히 버리거나 남에게 주어야 할 상황이다. 지난해 상치를 키워서 뜯어먹은 뒤 딸의 아파트에 다니느라 무관심했더니 제 멋대로 올봄에 싹을 소복하게 틔웠다. 상치는 솎아내거나 뽑아내야 했건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냥 두었더니 바싹 말라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궁리를 해봐도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수도꼭지에 긴 줄을 연결하여 옥상으로 갔다. 빈 통에 물을 받으며 사방으로 돌면서 동네를 둘러봤다. 무상(無常)한 세월의 공간과 시간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했다. 뒷 집 소유 모과나무는 내 집 옥상으로 다 넘어와서 해마다 모과를 선물했다. 해갈이를 하여 올 가을에는 많이 따게 생겼다. 나무조차 무상한 것을 이성을 지닌 인간이 항상하기를 바란다면 어불성설이다.


화분마다 물을 주면서 나의 무심함을 '미안하다'라고 표현했다. 앞으로의 향방은 정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자가격리 기간 동안은 매일 오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어야겠다. 그리고는 식물 각자의 몫이다. 여름은 번성한 시기인만큼 거름과 물이 많이 필요했다. 필요할 때 공급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가차없이 매몰찼다. 풍성하게 키우기도 했지만 냉정하게 돌보지 않는 경우를 엄단했다. 내가 화분 주위를 맴돌면서 옥상은 활기가 가득했다.


내 손자가 화분의 식물처럼 자라고 있다. 옥상이라는 아파트에서 지 어미의 젖을 먹으며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사랑과 관심을 가족 모두에게 받는다. 손자에게는 한 시도 끊이지 않는 사랑과 관심이 최고의 자양분이다. 여름날 옥상은 5일간 사랑과 관심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연도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내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없는 여건이 안타깝지만 나는 놓아야 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집에 있는 동안이라도 최선을 다 하자.



물을 듬뿍 주었건만 얼마나 지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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