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두 어 시간 잤나 보다. 손자가 있었다면 어림없는 말이다. 내가 그동안 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서도 엉거주춤했었다. 그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딸에게 집착하는 내 마음이었다. 내가 쌍둥이를 키울 때 힘들었으니 현재 딸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자는 나 만의 생각. 어제부터 지금까지 딸은 아무 말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어제 화요일은 여행의 여파로 몸이 찌뿌듯했다. 한의원은 버스를 타고 갔으며, 올 때는 걷는 쪽을 선택했다. 자주 다니는 빵집에서 빵을 하나 사서 손에 들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는 항상 꽃이 아름답게 핀 정원이 있어서 안 본 듯 지나가지 못한다. 거기서 꽃과 풍경사진을 찍으며 몇 십분 머무른다. 집으로 향하면서 기억하고 있는 골목을 쳐다본다. 꽃이 피고 있으면 그 담 밑에서 기웃거린다. 사진 찍을 각도와 방향, 빛을 조정하면서. 그렇게 저렇게 내가 사는 동네까지 오는데 무려 한 시간이 넘었다. 보통 걸음으로 30~40분 정도면 될 거리를. 동네 초입에 들어서니 지인이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며 아는 체를 했다. 집에 들어서니 오후 4시가 가까웠다.
손자의 모습이 카톡으로 도착했다. 손자는 자고 있고, 개켜야 할 빨래가 소파에 수북이 있었다. 딸은 빨래 빨기는 잘하면서 마른 옷가지를 정리하는 예가 없었다.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잔소리가 곧 입에서 나오려고 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틀림없이 일장 연설이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의도적으로 입을 봉한다. 말없이 행동하는 나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어머니가 일일이 지적하면서 말로 가르치려고 했다. 효과는 '반발심'이라는 단어와 '거부감'만 생겨서 부정적인 시선의 소유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딸이 무엇을 할 적마다 쫑알대며 가르치려고 하는 것을 본다. 두 말할 것 없이 내 탓인 것이다.
늦은 오후, 손자가 있었더라면 파김치 상태이지 싶다. 요즘 내가 매사 귀찮아지면서 손자에게 업히라고 등을 내밀게 되었다. 이 녀석은 내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알고 좋아라 등에 업힌다. 손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그까이 껏' 하며 우습게 생각했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보면 손자 때문에 힘이 들어서 불평하는 예를 많이 봤다. 나는 친구의 불평하는 자세가 속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에게 미안하다며 혼잣말을 하는 처지로 바뀌었다. 맞는 말이었으므로. 그래서 딸에게 예상치 못한 몸의 퇴화로 힘이 든다고 고백했다.
'어린이 괴질'이 새롭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이 나는 손자의 발목에 있는 아토피 피부 건조증과 연관되어서 사전예방을 위해 자가격리를 원했다. 현재 격리된 상태가 손자를 보기 전 나의 일상사였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모든 사물을 관찰하며 무상을 배우고 깨달았다. 내 인생이 어느 한 구석 똑같이 전개되었던 적이 없었다. 길 위에 펼쳐지는 자연의 이치는 내가 살아가면서 보고 배우는 학습장이었다. 격리 기간을 서성이지 않고 빠르게 차분해지는 것도 이런 학습의 결과다. 이차에 딸이 복직할 때까지 나를 부르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