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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n 18. 2020

와 그카고 인능교

  외할머니가 되었다. 딸이 혼인한 지 3년 만의 잉태 소식, 들은 지 엊그제 같은데 오는 9월 초순이면 첫 돌. 명실상부한 할매다. 타인이 하얀 머리카락만으로 먼저 불러준 ‘할머니’라는 호칭. 손자가 이태 뒤면 정식으로 불러 줄 나의 애칭이다. 그동안 원하지 않았지만 이젠 내 손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구비조건을 완전히 갖추었다.


  친정 노모는 단념했었다. ‘새끼가 허연 머리로 다니는 것도 불효’라며 볼 적마다 나무라셨다. 내 자식 역시 포기 상태다. 남편은 아예 관심 없다. 그러나 친구, 이웃, 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불협화음으로 윤창(輪唱)을 해댔다.


  중년 여자들이 버스 정류장에 하나씩 모여들었다. 산전수전, 염색 전(戰)까지 겪고 있는 아낙들이 스스럼없이 서로 나이를 물었다. 한 반백(半白) 아주머니는 자식들이 성화를 부려서 핑계 삼아 하지만 귀찮다고 했다. 간이의자에 앉았던 여인은 두피에서 하얗게 올라오는 것이 보기 싫어서 계속한다며 넋두리가 길었다. “와 그카고 인능교”라며 드디어 나에게도 화살이 날아왔다. 대답 대신 ‘히‘ 하고 웃으며 말을 아꼈다. 나와 마주 보고 섰던 파마머리가 “주름이 없어가 물 들이마 훨 절머 빌 낀데...”라며 거든다. “염색 하마 옻이 옮아가 늙은이처럼 댕기능교?”


  50대 초였던가. 서울 조계사 법당에서 불상과 불화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련히 들리는 고아한 화음을 찾아 발밤발밤 경내를 배회하게 되었다. 군계일학이 설핏 열린 문으로 나의 눈길을 붙들어 맸다. 한 마리 고고한 학은 단상에 올라서서 지휘자만 바라보며 합창 연습하는 은회색의 단발 천녀(天女)였다. 신라 동종(銅鐘) 속 비천상(飛天像), 공양 올리는 천녀였다. 붇다 에게 음성 공양 올리는 진지함은 내게 무한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고 가벼운 충격이었다. 은회색 단발 천녀는 옆 모습만으로도 가히 천상에서 노니는 듯했다. 이후 나를 딱하게 쳐다보는 남의 눈길과 거들고 싶어 하는 입 후원을 부드럽게 무 자르듯 잘라버렸다. 마음이 충만하면 어딜 가든 걸려서 넘어지는 일이 잘 없다. 넘어져도 금방 일어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지인들이 노인인 나에게 ‘늙은이처럼 댕긴다‘며 애정 어린 금과옥조는 마이동풍으로 흘려버렸다.


  바람이 강변의 억새들을 마음대로 흔들면서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버스가 입 바람을 피하려 해도 빨리 오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가던 바람이 주저앉아 억새들을 집적거리며, 내가 며칠 전에 당황해했던 일을 쑥덕거렸다. “할머니, 여기 55번 버스 와요?” 순간 멈칫했다. 흰머리는 외국인 눈에도 할머니였나 보다. “내가 할머니로 보여요? “ ”그럼 할머니 아니 예요? “ 알고 보니 네팔에서 왔다고 했다. 네팔 청년이 가까이 다가와 나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이모는 머리만 그렇지 얼굴은 팽팽해요.“ 바람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기웃거리면서 멋대로 휘저어 놓고 떠나버렸다.


  20년 지기가 나에게 꿋꿋하게 버텨내는 비결을 여러 차례 물었다. 뿐만 아니라 달리 묻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사실 머리색에 관심도 없다. “머리와 관련된 말은 듣는 즉시 흘려버리고, 남들이 주고받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말며, 결심이 흔들리지 말라”라고 일러 주었다. 내 말이 맞다면서 어렵겠지만 본인의 의지대로 실천하겠다고 하였다. 지인의 머리 밑이 눈에 뜨이게 새하얘졌고, 머리카락은 금 새 길어져 한참 동안 핀을 꼽고 다녔다. 그녀는 모래성을 한 달 남짓 쌓았나. 어느 하루는 하얗던 앞머리를 연분홍색, 양 옆과 뒤는 갈색으로 세련되고 멋스럽게 나타났다. “멋져요! 미적 감각이 뛰어난 원장이네요” 우선 보기 좋아 칭찬부터 했다. 그러나 나의 조언을 듣지 않는 지인이 떨떠름했지만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미용실 원장이 사촌동생이라 믿고 맡기면 알아서 해준다며 갈등도 없어 보였다. 지인은 칠면조가 되어갔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요즘 다시 하얗게 다닌다. 나를 보면서 자신감을 키우는 중이라고도 했다.


  염색하는 이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열이면 열, 매력적인 은발이라며 나를 부러워했다. 내가 그들에게 멋지다고 칭찬하면, 다들 “나는 안 그러타 카이~. 그래가 하는 기고, 중단 못해가 자꾸 안 하나.” 본인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수용하지 않았다. 나는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다. 자연처럼 살아가고 싶다. 그녀들의 염색론도 존중하면서 말이다.


  바람은 나뭇잎을 단풍으로 염색했다. 나도 의사를 찾았더니 빛 고운 단풍잎으로 전이되었다나. 며칠 전, 몸살감기에 허리까지 보태서 한 일주일 무척 아팠다. 내 아이들은 어릴 적 조금씩 자라느라 밤마다 성장 통에 시달리며 울었다. 사흘들이 감기다, 예방접종이다 아이를 업고, 걸리며 병원을 누볐다. 그러나 잎들이 희나리 져 시름시름 떨어지는 떨 켜의 통증은 그 누구도 몰랐다. 어릴 적엔 성장 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어머니의 보살핌과 사랑이 나를 키워주었다. 노화는 혼자서 겪어야 했으며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아 서성거리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퇴행성 질환은 모든 병에 대한 저항력이 낮아져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했다. 또 유 소년기 자라면서 겪었던 ‘성장 통‘들은 노년에 퇴화하면서, 하나하나 되짚어서 무(無)를 향해 가는 현상이었다. 나는 아프면서 자랐고, 아파하면서 마지막 길을 걷고 있다. 성상(星霜)은 내게 ‘생(生)에 대한 비밀’이 풀리도록 가르쳤다.


  오늘 오전에 내가 탈 시내버스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정류장으로 천천히 가는 버스를 타려고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다. 기다리고 있던 기사가 “머리 허연 할매가 디기 잘 달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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