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남았다. 나는 바깥 활동이 거의 없다. 남편은 퇴임한지 16년차이건만 여전히 출입이 잦다. 그러다보니 혼밥이 부지기수다. 혼자가 좋으면서도 식사만큼은 예외였다. 나는 끼니때마다 반찬을 새로 만들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먹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늘 부실하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애써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몇 년전부터 여기저기 자꾸 아프기 시작했다.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남편이라도 집에 있는 날은 뭔가 준비해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날은 대충 해결했다. 그 결과인지 모르지만 한의원 문턱이 닳아빠질 지경이다. 하루는 남편이 쇠고기를 많이 사올 것이니 장조림을 만들어 달라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일이 괴로운 사람에게 일거리 맡긴다는 불만이 잔뜩 생겼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꾸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내 마음이 편하다’는 지론에 따라 튀어나온 입을 정상 복구하여 앞치마를 걸쳤다.
남편은 성정이 불같다. 그런 남편에게 이건 이러고, 저건 저렇다고 설명을 하고 싶지 않는 것이 나다. 자연스레 부부 사이에 말이 없어진지 오래 되어버렸다. 그런데 장조림을 만들라고 지시를 했다. 장조림하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사건이 하나 있다.
신혼시절 내가 장조림을 상 위에 올린 적 있다. 장조림 덩어리는 내손으로 찢어서 밥 위에 놓아 주거나 그릇에 먹기 좋게 담았다. 나는 쇠고기를 삶아 간장에 조릴 때 미리 찢어서 간편하게 일을 줄였다. 그랬더니 남편이 “장조림은 물고 뜯어야 제 맛이지, 이게 뭐야”라며 버럭 화를 냈다. 며칠 뒤 다시 만들어서 간이 배인 쇠고기는 딱딱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남편은 젓가락으로 들었다 놨다, 이리 찔러보고, 저리 건들며 겨우 밥 위에 놓는 것 같더니 하나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후 찢어놔도 말이 없었다.
남편은 다 잊고 있었다. 뭐 어찌 되었건 체력이 바닥난 나로서는 현재가 중요하다. 장조림하면서 넣은 메추리알과 마늘과 고추를 상치에 싸서 먹으면 한 끼 거뜬히 해결됐다. 남편은 나를 먹이려고 했던 것임을 눈치 없는 내가 잠시 퉁퉁 불었다. 보름 전에는 남편이 몇몇 친구와 4박5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장조림에 상치 쌈은 닷새간 나의 휴가였다. 별 것도 아닌 식사준비가 왜 그렇게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지.
남편이 그동안 달라지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남자들끼리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삼시(三時) 세끼’가 ‘삼식이 새끼’로 변한 이 시대 부정적인 용어가 그도 싫었던 모양이다. 남편도 무척 끼니에 대하여 신경을 썼고, 세 끼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남편을 위해 하는 밥이지만, 나도 잘 먹는 좋은 점이 있어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반찬을 두세 번 먹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어느 날 점심약속이 있다고 말하면서, 저녁식사는 집에서 먹겠다고 했다. “찌게 두 번 먹어도 되겠어요?”라고 물었다. “당신이 하자는 대로 다 할게” ‘이 무슨 소리지. 안 하던 말을 다하고‘ 귀가 의심스러웠다.
이날 이때까지 제왕으로 군림하며 호령하지 않았던가.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면 처자(妻子) 마음 다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독립해서 떠난 아이들이 TV를 보고 있어도, 자리를 비키게 하고 자기가 봐야 할 방송을 봤다. 배려라고는 쥐꼬리 만큼도 없다. 근래 남편은 혼자 거실 소파에서 누웠다 앉았다, 바닥에 좌우로 구르며 보고 싶은 자세를 취한 채 시청한다. 그런 그가 “당신이 하자는 대로 다 할 게” 귀 안을 후벼봤다. 실실 웃음도 나왔다. 며칠을 가겠나마는 아무튼 표가 났다.
쇠고기 장조림은 돌덩이다. 간이 배여 들라고 조리면 조릴수록 더 굳어졌다. 굳어질 대로 굳어진 고기를 결대로 찢어내기도 만만치 않았다. 조리방법을 바꿔 봤다. 속이 익을 정도로만 익혀서 뚜껑을 덮어둔 채 식기를 기다렸다. 뜨겁지 않을 때 건져내어 먹기 좋게 칼로 썰어서 미리 간장을 풀어둔 용기에 손질된 메추리알도 투입하여 한 번 더 끓여준다. 간장이 끓을 때 통마늘과 풋고추를 얹고 불을 꺼준다. 이번에는 고기를 삶으면서 내가 말린 표고버섯과 연잎도 함께 넣었다. “당신이 만든 장조림은 언제나 맛있어” ‘얼 시구, 이 아저씨 봐라. 칭찬도 하고…’
장조림은 쇠고기 조리방식의 하나다. 주부가 먼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끓는 물에 삶아서 식용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그 다음 간장으로 보관기간을 조절하여 맛을 더 내고, 마늘과 고추를 첨가하기도 한다. 우리 인생도 장조림 맛과 육질 같다.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 듯 사람의 인격도 그러하다. 싱겁거나, 짜든지, 싱겁지도 짜지도 않은 알맞은 간. 장조림 덩어리가 익혀지는 시간에 따라 돌덩이같이 딱딱하거나, 겨우 익기만 하여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경우, 알맞게 익혀져 먹기 좋으면 모두가 칭찬한다. 거기에 마늘과 고추 맛으로 누린내를 잡아주기도 하는 맛깔스러움까지 곁들이면 최고다.
사람은 부모의 가정교육에서 비롯된다. 자식교육의 효과를 아는 부모는 다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자식에게 모범이 되려고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한다. 그런데 두 딸이 대학을 졸업한 연후, 나의 교육이 올바르지 못했음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여전히 초보(初步) 인생살이가 진행형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남편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내 의지대로 하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해달라는 바를 귀 기울려 듣고 움직이려 한다. 살아온 만큼의 습관이 있어 엇박자가 많이 나온다. 그럴 땐 경보음이 요란스럽다. 그 소리가 오래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길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남편 스스로도 다 죽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그 곁에는 작은 동물들이 얼씬도 않는다. 물론 종(種)이 다르니 그렇겠지만 성장한 새끼들은 아버지 구역을 떠난다. 각자의 영역에서 살아남기 여념이 없다. 또 무리의 대장 수컷은 자신의 영역도 지켜야지만, 다른 젊고 힘센 수컷과의 힘겨루기에서도 강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부장적인 모습은 요즘 시쳇말로 '꼰대'다. 그래서 인간이나 동물의 숫컷은 언제나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