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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l 11. 2020

허영심을 찾아내다

애플 피부과에서 찾았다

  얼굴의 '색소' 현황을 촬영했다. 기미가 갈수록 색이 짙어지고 그 범위가 넓어졌다. 근래는 내가 봐도 심각할 정도였다.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았다. 색소라고 하는 것이 컴퓨터 화면에서 온 얼굴을 뒤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밀 사진은 나의 기운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빨리 해야겠어요 “ 내 입에서 나온 소리다. 사진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지인이 주근깨를 산부인과에 가서 뺐다고 말했다. 산부인과가 요즘은 파리를 날리는 상황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여자들의 허영심을 아주 싼 가격으로 불러들여 과외 영업을 하는 모양인데,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지인이 피부과로 가서 올바른 시술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나도 그 말을 듣는 다음날 피부과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내가 병원을 향해가는 마음이 묘했다. 


  대구 범어 4거리에 '애플 피부과'라는 병원이 있다. 나만 그렇겠지만 어떤 대상을 향한 선입견이 있으면, 상대가 어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도 '그 기 아이던데~' 하면서 얼른 수긍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았다. 정확하지 않은 상식으로 무장한 내 생각을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명문장이 나왔을 것이다. 


  내 아들은 두 번인가 이미 성형을 했다. 좌우 턱을 깎아낸다든가 그랬다. 솔직히 아들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하는 그런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 나는 어느 부위의 어떤 성형 인지도 자세히 모른다. 그런데 내가 피부과에 왔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아들 또래나 이하의 남성들이 많이 눈에 뜨였다. 찰나 지간, 커다란 바위에 금이 그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들이 약간 이해가 되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시술의 원리를 설명하는 화면을 눈여겨보았다.'정말 저럴까' '과장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피부는 좋은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다. 대부분 나를 보는 순간 잔주름이 없어서, 깨끗하다며 부러워했다. 자타가 인정하던 철옹성 같은 얼굴은 이제 엽 맥(葉脈)만 남은 이파리에 불과하다. 떨 켜에서 떨어질 날도 멀지 않았다. 안내 화면처럼 레이저 광선이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두 조각, 넷, 여덟, 열여섯… 오랫동안 멋대로 자라면서 생몰을 이어왔던 인식이 기하급수적으로 분해되었다. ‘나’를 알아달라고, 내 것이라며, 나의 자아를 움켜쥐려고 우기던 것들이다. 

  

  코로나 19가 대구를 완전히 공포 분위기로 몰아갔다. 딸은 손자를 핑계로 노골적인 협박을 했다. 내심 아무에게나 코로나가 달려들지 않을 텐데 심하게 군다 싶었지만, 손자가 걸려서 나 역시 과감히 문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쥐고 있었던 허상들을 내 안에서 힘없이 놓아버리기에는 아직 미련이 많은 나였다. 기승을 부려대는 역병의 보도는 자꾸만 피부과에 갈 날짜를 연기하게끔 겁을 주었다.


  기미가 몰려있는 부위에 레이저 광선으로 총 쏘듯 마구 쏘았다. 견딜 수 있을 만큼 따끔따끔했다. 이 정도의 아픔으로 나의 고정관념들이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을 달리하였다. ‘따끔 총‘ 맞은 얼굴은 화끈거리며 빨갰다. 직원을 따라서 침대에 누웠다. 얼굴의 열기를 내리는 차가운 거즈를 덮고 뭔가를 두껍게 발랐다. 단백질이 타는 노린내가 코를 뚫었다. 영양제가 함유된 크림을 발라주었다.


  피부과의 매력이 보였다. 선머슴아 같은 내게도 호감이 들 정도니. 누워서 받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편했다. 돈만 내면 내 손으로 관리하지 않고 대우받는 곳이었다. 착각하기 좋은 곳이며 나의 허영심을 발견해냈던 곳이기도 했다. 아무튼 직원이 매만져주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삶이 짓눌러서 어느 구석에 꽁꽁 숨어 있었던 것을 끄집어내는, 나도 여자였다.


  딸에게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딸은 코로나로 신경이 곤두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저승사자를 대하 듯했다. 역병은 내 딸의 새로운 고정관념을 덤으로 1+1의 행사까지 하였다. 택배가 오면 현관에 두고 격리를 시켰다. 비닐장갑을 끼고 뿌리는 액체를 뿌렸다. 나는 금요일 오후를 택해 시술받고 내 집으로 가버렸다. 참으로 고약한 심술을 지닌 역병이다. 딸의 배려로 피부과를 다니는데 고맙다는 말도 못 하도록 하니 참 나. 


  집착이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부서졌다. 그리고 떨어져 나갔다. 고정관념이 옅어지는 것을 알아채고 있다. 그릇이 비워지니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비우지 못해 무겁게 들고 있을 땐 두 어깨가 힘이 들었다. 힘이 드는 만큼 더 애착하여 나를 지키려고 붙들었다. 붙드는 손바닥에서 불이 났다. 뜨거워서 놓아야만 했다. 억척스레 지키려고 했던 것들은 무상(無常) 한 것이었다.


  무상(無常)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 변하는 것들이 가만히 있기를 원했고, 오로지 나만을 바라봐 주기를 기다렸다. 그도 무상을 알아 가는데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어리석음 들은 레이저 광선에 의해 부서졌다. 무상한 것은 괴롭기 마련이니 나라고 할 만한 고정적인 것들이 없다. 레이저 광선이 모래로 잘게 분해해 버렸다. 가루로 만들어서 입으로 불어 날려버릴 일만 남았다. 그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196127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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