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혜 Jul 22. 2020

나도 자고 싶다고오~

잠 쫌 자도오

  딸이 출근을 서두르고 있다. 딸이 7월부터 육아휴직을 마치고 온전히 집을 비운다. 하여 손자를 업고 먼저 밖으로 나와서 아기의 시선을 돌리는 작전을 쓰고 있다. 지난밤 어미의 부재를 울어서 강샘으로 풀어내더니 아침 5시부터 옹알거렸다. 나를 깨우는 자명종 손자다. '늦잠 자고 싶어, 손자야' 누운 자리에서 몸부림을 치며 뒹굴었다. 사위가 나와서 분유를 태워 들어갔지만 몇 분후 "할머니 깨우러 가자."


  지 어미가 떠나는 것을 보고 그늘진 곳으로 걸었다. 손자가 9시도 못 되어서 어쩐 일로 등에다 얼굴을 묻었다. 염불을 외우며 잠이 드는 것을 확인했다. 손자가 잘 때 나도 한숨 잘 요량으로 눕혔더니 이 이쁜 손자가 "헤 헤" 웃으며 고개를 쳐들었다. 완전히 김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김이 다 빠지기 전에 다시 손자를 업고 내 손자만의 자장가를 손전화기로 재생시켰다. 그리고 걸음수를 확인하기 위해 두 손을 뒤로 깍지 낀 채 손전화기를 들었다.


  손자의 자장가는 설 운도 씨의 '누이'다. 내가 스포츠 댄스 동작을 연습하다 자장가로 낙찰되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스텝을 밟았다. 하필 리듬에 몸을 실으려는 찰나 방문이 열렸다. 딸이 서류를 빠뜨리고 갔다며 "엄마, 손전화기 내려놓으세요. 전자파가 나오잖아요. 아기들은 전자파에 약하단 말이에요." 손자가 지 어미 목소리에 숙이고 있던 머리를 들더니 마구 몸을 뻗댔다. "빨리 안 가!" 약이 올랐지만 말은 제대로 못 하고 딸에게 가라고 손짓만 했다.


  향 수, 하모니카 연주로 고향의 봄, 소녀의 기도, 아리아 울게 하소서,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 내가 선정도 하지 않았건만 알아서 계속 나왔다. 겨우 잠이 들자 뜸을 더 들여서 눕히려고 등에 업은 채 요 위로 엎드렸다. 책을 펼치니 눈이 절로 감겼다. 그렇게 한 십 여 분 지나서 나도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현관문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위가  아기 깬다고 숨죽여 들어왔다. 그 소리에 이 녀석이 벌떡! 잠이 깰세라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손전화기부터 챙겼다. 사위가 떠나고도 손자는 눈이 감기지 않는 모양이다. 결국 오전 잠을 공치고 말았다. 부화가 끓어올랐다. 소파에 손자를 내리면서 "할머니가 힘이 들어서 쉬고 싶은데, 니가 안 자니까 나도 잘 수 없잖아!"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이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얼굴을 들어서 내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의기소침해지는 손자를 보는 순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이것이 구부득고(求不得苦:원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느끼는 괴로움) 구나. 나는 자고 싶은데 잘 수 없으니… ' 손자가 나를 깨우치기 위함이라 사려가 되었지만, 나는 잠을 못 자는 것은 고문이라고 생각한다. 잠자기 원하는 사람은 자는 것이 최선이고, 갖고 싶은 명품은 손에 넣어야 고통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결국 하고 싶은 것은 원하는 대로 해봐야 딴전 피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니 잠자고 싶은 나의 욕구는 공연히 손자에게 불똥이 튀었던 것이다. 오전 잠은 포기하고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면서 벽돌을 얹은 것 같은 눈두덩이를 못 내려오게 억지로 붙들었다. 하루가 한 시간처럼 지나가더니 오늘 오전은 시곗바늘이 움직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12시를 넘기면서 잠이 들었다. 나도 아기와 같이 배를 깔고 엎드렸다. "위잉, 위이잉" 진동소리에 내려 감겼던 눈꺼풀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던 분의 현황을 의논해야 하는 입장이라 "AE~ C"가 입술 주위를 맴돌았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통화를 마치면서도 손자를 토닥거려야 했다. 무슨 잠귀가 그렇게나 밝은지…  토닥여서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사촌언니가 서울에 가볼 거냐며 전화를 했다.


  오후 네 다섯 시쯤 딸의 번호가 떴다. 손자가 나의 손전화기에서 닐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래가 나오자  찰떡처럼 달라붙었다. 요즘 손전화기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는 손자를 안고 지 어미에게 "니가 아침에 그카고 나가고 쫌 있으끼네 지 애비도 살며시 기들어오니 아 가 깨서 잠을 자야 말이지. 어이~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이고. 번갈아 가민서 이기 무슨 일이고!" 속이 상해 있던 나는 딸에게 화풀이를 했더니 "하 하"거리며 웃어댔다. "느그 이모도 그카고, 오후에는 강촌 이모까지 남 속을 박박 끌거대고!" 손자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눈길이 손전화기에도 왔다 갔다  번갈아 살폈다.


  제대로 펼쳐지는 하루가 아니었다. 정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잠을 자고 싶은 욕망을 총족시킬 수 없어 손자에게도 짜증을 부렸다. 아이가 눈치를 보다 울음이 터지는 것을 보고 안아서 달래며 나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날 밤을 새우기도 했으면서 자고 싶다는 집착을 떨쳐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화를 내는 아기보다 못한 어른이었다. 손자가 그날 밤에 잘 잤고, 잠자는 버릇이 점차 달라지고 있어 신통하기만 하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038753358

      


    

작가의 이전글 얼굴을 묻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