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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l 25. 2020

"그거야? 나는 그런 거 맛없어…"

옛날 팥빙수를 원해

   아들이 얼마 전 대구를 다녀갔다. 이 녀석이 아버지에게 잘 대해 주라면서 ‘투썸플레이스’의 “cool 스푼”오리지널 빙수 쿠폰을 내게 보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한 턱 쏘는 것처럼 하라고 뻣뻣한 어미를 가르쳤다. 아들이 떠난 이후 계속 날이 우중충 하거나 비가 거푸 내려 아들 대신 아직까지 쏘지를 못하고 있다.


   남편은 팥빙수 그것도 옛날식을 좋아한다. 그가 사 오면 나는 옆에 앉아서 수저로 팥은 밀어내고 달달한 찬 맛을 홀짝거렸다. 근래는 새로 개발된 설빙인지 뭐시기는 우리 부부에게 돈이 아까울 지경이다. 그는 옛 방식을 고수하는 점포를 찾아다녔고, 아이들은 새로운 맛을 접해 보라며 여러 차례 포장하여 사들고 왔다. 남편은 그럴 적마다 "아버지는 그런 것은 맛없어서 안 먹어. 사 오지 마", "야, 맛도 없는 것을 왜 사 오냐"며 반기지 않고 맛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데 둘째 시숙이 별세하였다. 남편은 사후처리 및 그 여파에 이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던 분의 소식은 건강 상태가 눈에 보일 정도로 저하시켰다. 아들이 아버지를 위로 차 대구에 들렸고, 내게 쿠폰을 주면서 아버지 기분을 전환시켜 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이 양반이 고분고분해야 말이지. 일방통행만 아는 이 사람을 위로하라니.


  나는 남편에게 보드라운 여인이 아니다. 나이 먹은 지금은 졸 혼 상태라 데면데면하다. 근래는 손자 돌본다며 5일은 딸의 아파트에서 지내고, 이틀은 내 집으로 돌아가니 더 그렇다. 사랑해서 혼인한 사이가 아니고 선을 본 뒤 한 달 만에 혼인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두 번 만나보고 예식장에서 봤다. 막상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보니 내가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애교가 참으로 많이 필요했다.


  애교라는 것도 상대가 받아줘야 한다. 일방적으로 주거나 혼자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다. 남편이 소령 때 혼인식을 올렸는데 영관장교로써 자부심이 대단했다.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남편은 아내에게 양보하는 것은 지는 것이라 여겼다. 많은 갈등으로 점철된 나날이었고, 내가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제대 후 사업을 한다며 빈 깡통만 남았다. 빚 좋은 개살구였다. 뜬 구름 같은 개살구, 나는 달팽이가 서서히 제 집 속으로 들어가 듯 바깥 모임을 끊었다. 살구의 명색은 완연했지만, 속은 곪고 있었다. 자식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우리 부부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한 여름에도 냉방기를 가동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팥빙수도 남편 혼자서 먹었다.


   황혼이혼을 꿈꿨다. 문득 병마가 남편에게 다가오려고 틈을 노렸다. 헤어지는 모습보다 함께 잘 사는 것이 자식을 위하면서 내가 덜 후회할 것 같았다. 그도 그랬는지 거실에서 만나지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아들이 멋대가리 없는 어미에게 곰 살 맞은 아내 역할을 넌지시 일러주었다. 언제 적에도 이런 쿠폰을 주길래 남편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아들이 이러저러 내가 하는 것처럼 말하라고 했지만 자기에게 말한다, 아들한테 못 들은 척하라고. 내 아들이 대견하였고 기특했다. 그것을 남편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어제, 오늘 무척 덥다. 남편이 손자 보러 온다고 연락이 오면 투썸플레이스에 다녀오라고 해야겠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냉 냉했던 부부 사이를 좀 더 얼려보자. 그럼 플러스 효과가 나타나겠지. 그런데 비가 자꾸 오니 언제 맛을 볼꺼나. 다들 입에 맞을 거라는데…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04165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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