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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ul 28. 2020

내 아들이 왜 똥깡아지야!

 "내 아들이 왜 똥강아지야!"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이쁜 똥깡새이~~" 아들이 어렸을 때, 나는 아들 궁둥이를 두드리며 '똥깡아지'라고 불렀다. 기저귀를 갈아주면서도 "이쁜 강새이~ "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예뻐서 안아주며 "내 똥깡아지~~" 하면서 아들 볼을 비벼댔다. 아들은 그저 좋아서 내 목을 얼싸안았다. 남편이 한 날은 아들을 '똥깡아지'라고 한다면서 민망할 정도로 핀잔을 주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오는 '똥깡새이'다. 나는 그 소릴 듣고 자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지금까지 애용하고 있었다. 


  손자는 2019년 9월에 태어났다. 아들 이후 30년이 지났건만 손자를 얼르면서 "이쁜 똥깡새이"가 술 술. 그럴 적마다 남편 생각이 났다. 67년간 나의 뇌리에 박히고 스며들어서 내생(來生)에도  나오지 싶다. 그만큼 내게는 예쁘다는 말과 동급이다. 그러니 딸은 이유도 한 번 묻지 않고 가끔 써먹었다. 근래는 사위도 딸의 애칭을 공유했다. 


  내 친척들은 대부분 경상도나 대구에 살고 있다. 그들 역시 "똥깡아지"나 "똥깡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안다. 남편은 강원도 원주 출신이다. 그리고 시부모님은 이북 출신이다. 그분들이 손자를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른다. 남편이 내게 화를 냈을 땐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 이리라. 똥강아지는 잡식성이라 똥까지 먹는다. 그런 사실을 아는 남편이 내게 반기를 들었다.


  지금이야 의학이 발달하여 영유아들이 먼 길 떠나는 예가 잘 없다. 그러나 오래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모두가 사용했다. 특히 손이 귀한 집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본명은 지어서 호적에 올리고, 태명(台名)이나 아명(兒名)을 '개똥이'나 '똥강아지' 또는 '바위' 등으로 일부러 불렀다. 아주 천하고 더러운 이름으로 불렀던 이유는 아기의 수명을 늘리고자, 귀하게 여기면 저승사자가 질투해서 잡아간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리고 '바위'는 건강하라는 뜻에서 그리 불렀다고 한다. 


  나는 예쁜 아기를 보면 "애구, 이런 못난이"라는 반어적()인 표현을 쓴다. 또 내 아이에게 "냄이 냄이 못냄이~"라고 장난을 친다. 말귀를 알아들을 즈음에는 싫어라는 것이 역력하여 "냄이야~"라며 '미남'을 '미냄이'로 말을 돌려서 했다. 짖꿎은 구석도 있지만 내 아이 스스로 자신이 귀한 줄 착각하여 버릇없이 자라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도 있다. 





  내 손자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똥깡새이", "똥깨야"라고 부르는 변명이 길었다. 그렇지만 하찮은 애칭으로 부르는 것도 우리 풍속의 하나인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잡아가는 귀신이 개를 무서워해서 못 잡아가게 하려고 '강아지'라 부르는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똥 먹는 강아지'라는 뜻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하여 내 손자가 귀할수록 귀하지 않은 듯 키워서 남에게 존중받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어서다.


  아무튼 남편은 손자도 그렇게 부른다면서 한 불만을 드러냈다. 손자를 부를 때 '똥깡새이' 소리를 현저히 줄였다.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현재 똥을 먹는 강아지가 없을뿐더러, 그렇게 키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똥깡새이'라는 된 발음보다 듣기 좋은 말, 부드러운 말을 하여 나의 언어 구사 습관을 고치는 기회로 삼았다. 입술에서 머물다 삼키거나, 곧 나오려고 달싹거렸지만 의도적으로 입에 힘을 주었다. 대신에 "이쁜 내 강아지"로 바꿔서 부른다.  


  뜻도 좋고 멋들어지게 부른다면 금상첨화다. 선업(善業)은 아니고 그렇다고 악업(惡業)도 아닌 어중간한 무기업(無記業) 쌓는 것보다 선업이 쌓이는 행동을 실천하면 금상첨화가 된다. '똥깡새이'는 나의 본의는 아니지만 더러운 인상을 상대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강아지'는 귀신이 무서워하고, 강아지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말이 빚어내는 결과를 구업(口業)이라 한다. 내가 말을 할 때 좋은 말만 하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나는 화가 나면 입으로 잘 뱉어 내지 않지만 속으로 욕 아닌 말을 구시렁거린다. 나의 욕은 '에이~씨'가 전부다. 그것도 딸이 손자가 배운다고 하여 입단속을 하고 있다. 욕은 악업이다. 욕 속에는 저주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한 행위로 분류된다. 머릿속으로 욕을 할 수도 있다. 생각으로 하는 것을 의업(意業)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악업을 쌓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 아니므로 그렇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좋은 생각으로 말을 하면 듣기 좋은 말이나 배려하는 말이 나온다. 나의 똥깡새이나 똥깡아지, 똥깨 대신 "이쁜 강새이~~"라고 한다면 선업이 되지 않겠나 싶다. 하루에 몇 번은,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똥깡새이"가 나온다. 선업 쌓는 일이자 돈 들지 않는 일이므로 의식적으로 나를 제어해나갈 것이다. 


  나의 '이쁜 강새이'가 스승이다. 내가 날마다 쇄신되고 있으므로.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044629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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