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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보 Apr 23. 2024

제로 스트레스, 코인 노래방

글 잘 쓰기 vs 노래 잘 부르기


딸아이는 새벽 3시만 되면 정말 자지러지게 울었다. 12시쯤 한 번 울고 나서도 3시는 절대 지나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화둥둥 우리 아가 어디가 아픈 것일까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했지만 이제는 짜증 섞인 한숨만 나온다.

울음은 내가 안아주거나 업어줘야 멈추고, 완전히 잠들어야 진정한 육퇴를 할 수 있다.  


돌 지나고 아이의 어금니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6개월인 지금까지도 새벽 울음은 계속된다. 아니, 돌 지나면 좀 편해진다는데 누가 그런 말을 해?

목소리도 커져서 아이가 악 소리 내며 울면 패닉 상태가 온다. 몸도 힘들지만 층간소음 때문에 눈치 보인다. 내일 다시 한번 사죄를 드려야지. 


이런 날들이 계속되자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였다. 마음이 힘들 땐, 혼자 강아지 베개를 퍽퍽 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제대로 치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용 샌드백을 검색했다.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다가 몇 분 후 결제를 취소했다. 이 감정을 다 해소하려면 손목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면, 코인 노래방을 가볼까? 

출산 전에는 꽤 자주 갔다. 업무가 꼬여서 스트레스 받은 날,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친 날은 혼자 동굴에 들어가듯 작은 부스에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

못 갈건 없지. 주말을 기다렸다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딱 1시간 후, 목이 아프지만 잊고 있었던 즐거움을 찾아서인지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역시 재밌네!


코인 노래방과 내 인연은 꽤 깊다.

당시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원하는 곳은 면접 높은 비중을 두는 회사였다.  

면접을 잘하려면 목소리도 좀 커졌으면 좋겠고, 발음도 명확해야 하고.. 방법이 없을까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발성'을 연습하기로 했다. 아나운서 학원이나 스피치 학원이 한두 곳 생겼지만 금액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대신 동네에 저렴한 실용음악학원을 찾아보고 수십 번 고민한 끝에 '보컬 수업'을 등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하게도 발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평생 나를 재밌게 해 줄 취미를 얻게 되었다.


보컬 학원에서 처음으로 배운 곡은 태연의 '만약에'. 보컬 선생님은 나의 노래를 듣고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진단과 함께 나비의 '길에서'까지 두 곡을 배우자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연습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집에서 부르는 건 윗 집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고... 그렇게 코인 노래방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혼자 가는 노래방은 처음이기에 누가 볼세라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재빠르게 들어갔다. 아무도 관심 없었지만.


'만약에'는 고음 부분이 어렵지만 두 번째 곡 '길에서'는 음역대가 낮아 쉽게 불러진다. 계속 연습하다 보니 음정도 안정되고 내 노래가 괜찮게 들려온다. 연습하니 나도 노래 좀 하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행복한 상상도 해봤다. 아주 잠깐. 

물론, 다비치의 애절한 발라드 '이 사랑'을 불러봤다가 30점대가 나온 적도 있었다.(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30점이 나오던데..) 혼자 있어도 낮은 점수가 나오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숨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다. 다비치의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나서 몇 주 동안 다비치 '이 사랑' 노래에 몰두했다. 한 키를 낮추고, 감정을 푹 담아 연습하니 드디어! 100점이 나왔다. 파르와 같이 나오는 100점의 반주는 홀로 부르는 나에게 박수를 쳐주는 최고의 관중이나 다름없다. 짜릿하다. 너스 1곡까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노래'라는 취미는 고음이 쭉쭉 올라가는 우등생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혼코노인(혼자 코인 노래방을 가는 사람들)들은 아마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글 잘 쓸래? 노래 잘 부를래? 묻는다면 글을 선택하겠다. 나의 노래는 나만 듣기 때문에  못 불러도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 육아에, 욕심 많은 내 계획에 치여서 지칠 때는 코인 노래방 생각이 간절하다.

노래의 재미에 빠져 꽥꽥 소리를 지르다 보면 감정중추가 활성화되면서, 행복해진다. 내 감정이 자유롭게 조절되는 느낌이다.

코인 노래방 방문 날을 살펴보면 내 스트레스 주기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한동안 뜸했다면 '아, 내가 요즘은 괜찮구나. 내 감정이 여유롭구나' 생각이 들고, 매주 노래방을 갔다면 '정말 힘들었구나'하며 나의 감정을 돌아보게 된다. 이번 달은 조금 힘들었나 보다. 노래방을 간 횟수가 많은 걸 보면.


코인 노래방은 동네 통틀어 단 한 곳만 있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특히, 사장님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날은 1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주말도 사장님의 1곡 서비스를 기다리며 소소한 행복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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