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예술

by 캐롤라인 캠벨

by 봄봄


<도시와 예술>이라는 책을 처음 봤을 때는 사전같이 두꺼운 책의 두께에 우선 부담감이 몰려왔다. 600쪽이나 되는 교양서를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없는 것 같다. 무게도 상당하다. 밖에서 자투리 시간에 읽겠다고 가지고 다닐만한 책은 아니다. 결국 자기 전에 책상에 앉아 조금씩 읽어서 3주가 걸려 완독했다.



이 책은 제목인 ‘도시와 예술’과 부제인 ‘15개 도시의 운명을 바꾼 예술의 힘’이 나타내듯이 역사에서 선도적이었거나 특이점이 있었던 열다섯 개 도시를 선택해 각 도시에서의 예술의 흐름을 파고든다. 각 장은 대부분 통치자나 주문자의 명령과 요구에 더해 예술인 자신의 의도를 반영해 제작한 예술품과 건축물이 어떻게 한 도시의 분위기와 성격을 형성했는지를 역사적 흐름과 함께 설명한다.



<도시와 예술>이 다루는 역사는 방대하다. 기원전 1800년부터 현재까지의 예술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훑어보는 구성이다. 바빌론에서 시작한 도시 여행은 의외의 장소인 평양에서 끝이 난다. 종교의 탄생과 발전, 왕조의 흥망성쇠, 다양한 정치사상의 출현, 경제시스템 변화는 한 도시의 운명을 가른다. 도시를 강하고 융성하게 만들려는 바람은 세련된 미술품, 정교한 공예품, 웅장한 건축물로 형상화된다.



우리의 현재 생활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평범한 재료와 생활용품이 새롭게 보인다. 건축물의 필수재료인 콘크리트가 로마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읽고는 ‘역시 로마인들은 대단해’하고 감탄하게 된다. 하얀 도자기에 코발트블루로 아랍어 문장을 쓴 바그다드의 도자기는 중국 도자기와 경쟁을 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고 중국이 청화백자를 탄생시키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고 한다. 저자는 명나라의 청화백자를 ‘명품의 대명사’이자 ‘최초의 전 세계적 브랜드’라고 칭한다. 전 세계 부유층이 탐했던 중국의 효자 수출품도 결국은 다양한 문화와 접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이 식민지배로 부자가 되면서 유럽의 여러 도시들이 융성하게 된다. 그중 암스테르담은 치안도 좋고 종교적 자유도 인정하는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여성의 지위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아 사유재산이 있고 사회생활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잡아서 식민지인 남미의 사탕수수농장에서 무지막지하게 착취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저자는 짧은 한 문장으로 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도시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관용, 아이디어와 차이에 대한 개방성은 얄팍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유럽인의 탐욕과 시기는 세상의 좋은 물건을 모두 가져도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는 최고의 청동 주조 기술을 가진 문명이었던 ‘베넹’이라는 도시가 끔찍하게 약탈당한다. 정교함과 기술력이 돋보이는 그 도시의 청동과 상아 조각은 유럽 박물관과 개인의 소장품이 되었다. 모든 통치자들이 시기했던 사치스럽고 풍요로운 무굴 제국의 델리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에 정점에 다다랐지만 영국을 비롯한 침략자들은 모든 것을 빼앗는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저자의 판단은 예술품의 보존 자체에만 맞춰져 있다. 아니면 이 상황을 비꼬는 것일까? 이 장의 마지막 문장 때문에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게 된다.


“무굴 인도의 많은 보물을 전 세계의 컬렉션과 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부를 탐내고 시기했던 외국인들 덕분이다.”



책의 마지막 두장에서 소개한 곳은 우리가 예술 관련 책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도시가 아니다. 이 낯선 두 도시는 브라질리아평양이다. 시민들을 위한 이상향을 목표로 허허벌판에서 도시로 탄생한 곳이 브라질리아이다. 책에 실린 작은 사진으로 보는 브라질리아의 공공건물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하고 인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 자꾸 쳐다보게 된다. 보통 사람을 위한 이상적인 도시를 설계한다고 믿었던 이상주의자 건축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도시는 당시 엘리트 부유층만을 위한 전용 도시가 되었다. 한편 평양편에서는 김씨 일가의 세습과 체제유지를 위해 지어진 장대한 건축물을 소개한다.


“북한에서 건축은 강압과 통제의 수단으로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하지만 이 비뚤어지고 부패한 국가에서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평양의 사회주의 낙원은 운이 좋은 소수만을 위하는 북한 버전의 <트루먼 쇼>로, 엘리트들을 김씨 일가에 충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건축과 도시 계획, 공동체를 중시하는 이 도시에는 배울 점이 있고 심지어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감탄할 점도 있다.”



살아있는 유기체인 도시의 흥망성쇠가 복잡하게 엮인 것이 역사라면, 앞으로도 이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도시를 만들고 가꾸는 일에는 예술이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현재의 서울은 도시의 흥망성쇠 사이클에서 어디에 해당할까? 정점이 아니기를. 더 올라갈 길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