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가장 님은 출근이 좀 늦은 편. 그래서 아침 겸 점심은 9시쯤 나와 단둘이 먹는다. 커피를 내리는 것은 보통 남편의 몫. 원두를 핸드밀에 돌려 모카포트에 내리거나 그게 좀 귀찮다 싶은 날에는 일리캡슐을 간편하게 내려 마신다. 그 사이 나는 간단한 샐러드와 탄수화물류를 준비한다, 구어놓은 빵도 없고 오늘은 뭘 해드리나 했는데 핫케이크 가루 1 봉지를 꺼내 놓은 남편. 계란 2개, 우유 1컵반을 먼저 볼에 섞어준다. 여기에 팬케이크가루를 조금씩 넣어가며 적당히 믹스하고 가루 몽우리가 생기지 않도록 부드럽게 저어 잠깐 쉴 틈을 준다. 베이킹파우더가 들어간 반죽이므로 폭신함을 살리려면 적당히 저어주는 게 포인트. 어떤 날은 우유 반컵 대신 플레인 요구르트를 넣어주면 상큼한 향과 요구르트 속 발효균의 등장으로 팬케이크 속에 구멍이 송송 더 예쁘게 구워진다. 팬케이크는 버터를 녹여 약불에 노릇하게 구워야 제맛! 센 불에 구우면 금세 버터가 타고 팬케이크도 깜장이가 된다. 녹인 버터로 팬을 골고루 코팅하고 반죽도 한 번에 주르륵 쏟아야 전체가 매끄럽게 먹음직스러운 팬케이크 모양이 완성된다. 뒤집기 전에 최소 10개의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야 뒤집을 때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다. 작고 귀여운 구멍이 숨어있는 도톰한 두께와 반죽 속의 설탕이 캐러멜라이징화해 만들어낸 갈색이 돋보이는 팬케이크야 말로 브런치 메뉴로 엄지 척이다. 애들이 어릴 때에는 구운 팬케이크에 딸기나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메이플시럽이나 새햐얀 슈거파우더를 뿌려주면 보기도 좋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으로 ‘엄마 최고의 날!’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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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버터, 우 메이플 시럽의 팬케이크지만 2장을 넘어가면 느끼함이 살짝 올라온다. 뭔가 신선한 사이드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본능적으로 테이블을 스캔하다 보니 요즘 자주 해 먹는 당근라페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샐러드인가? 피클인가?
당근은 익혀서도 먹고 날 것으로 먹기도 좋지만 일단 진한 오렌지 색깔이 식탁을 빛나게 하는 채소이다. 라페는 ‘채 썰다’라는 프랑스어라고 하는데 채 썬 당근을 소금에 먼저 20~30분간 절여줘야 나중에 물이 생기지 않는다. 물기를 짜내고 화이드발사믹(없으면 식초를 조금만!), 올리브오일, 홀그레인, 레몬즙, 후추, 꿀을 넣고 비벼준다. 레시피가 중요하지 않고 먹어보면서 간을 맞추면 될 정도로 쉬운 요리이다. 틈틈이 만들어두었다가 1주일 저장식으로 먹기 좋다. 유명하다는 프렌치식당 《부베트》 당근라페를 먹어보니 피스타치오를 굵게 갈아 넣는 것이 그들만의 비법이었다. 고소한 견과류 맛이 라페의 시큼함(새콤한 맛을 특히 싫어하는 남자들을 위해~)을 잡아주니 좋고 재료가 하나라도 더 들어가니 음식이 더 고급스러워진다. 당근 속의 베타카로틴은 눈건강에 좋다는 건 다 알고 있으니 후루룩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기 좋은 간편식이다. 의외로 당근라페는 빵류, 고기, 다이어트 식단 메뉴 어디에도 잘 어울려서 자주 만들고 있다. 팬케이크 위에 메이플시럽 듬뿍 뿌려먹는 남편과 적당한 단맛을 선호하는 내가 언제 어느 때나 거부감 없이 좋아하는 브런치 메뉴로 꼽는 팬케이크. 프레시한 당근라페 한가득 올리고 발효균이 들어간 샤워크림을 얹은 오늘의 메뉴 팬케이크. 홈메이드 브런치를 맛있게 먹은 날은 하루가 풍성하게 느껴진다.
팬케이크에 탱글탱글하게 구운 핫도그를 곁들여 케첩 뿌려먹으면 콘도그라고 한단다.
외국인들은 점심, 저녁 식사용으로 이렇게도 많이 먹는다고 하는데 다음엔 콘도그에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남은 팬케이크 반죽에는 으깬 바나나를 추가해 컵케이크로 구우면 또 이만한 디저트가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