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노발리스와 헤세

어쩌면 니체나 그랬을지 (민음사, p.112)

by 설기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두 개의 이름이다."


"그 몇 주 동안 나는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했는데, 전에 읽은 모든 것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도 책을 그렇게 경험한 일은 드물었다. 어쩌면 니체나 그랬을지. 그것은 노발리스의 책으로, 편지와 잠언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중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이 나를 매혹하고 긴장시켰다. 잠언 하나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 잠언을 펜으로 초상화 밑에 적어 놓았다." (p. 112)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를 그릴 때, 그는 이상적인 여성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림은 점차 데미안을 닮고, 끝내는 자기 자신의 얼굴을 닮는다. 이상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안의 깊은 충동,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본질이었다.


심성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본질, 충동, 혹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자아를 뜻하고, 운명은 나를 둘러싼 외부의 사건이나 피할 수 없는 힘처럼 느껴지는 환경을 뜻한다. 결국 우리가 '운명'이라 부르며 외부에서 닥쳐온다고 믿는 시련이나 사건들은, 사실 우리 내면의 '심성'이 외부로 투사되어 형상화된 것이라는 뜻이다. 즉, 내 안의 에너지가 이끄는 대로 나의 삶(운명)이 그려진다는 원리이다.


이 통합의 사유는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아브락사스의 상징과도 이어진다. 밝음과 어둠, 선과 악, 신성과 충동은 서로 대립하는 두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어쩌면 니체나 그랬을지"


헤세는 니체의 가장 충실한 제자였으며 스스로도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폭풍이자 체험은 니체라고 했었다. [데미안]도 헤세가 외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런데 싱클레어가 노발리스를 읽으며 "어쩌면 니체나 그랬을지"라고 언급한 것은, 노발리스의 문학이 굉장히 영향력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이름조차도 생소한 노발리스는 도대체 누구인가?


노발리스(Novalis1772-1801)는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철학자, 작가이다. 본명은 게오르크 필립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Georg Philipp Friedrich Freiherr von Hardenberg)로, 그의 사상과 문학은 독일 낭만주의뿐 아니라 후대의 많은 사상가와 작가(특히 헤르만 헤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노발리스(1772–1801)는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가장 순수하고 신비로운 목소리였다. 어린 시절부터 루터교의 경건주의(피에티즘)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엄격한 신앙인으로, 노발리스의 신비적 경향에 영향을 주었다. 대학 등에서 법학, 철학, 자연과학을 공부하며 실러, 피히테, 프리드리히 슐레겔 등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1794년 12살 소녀 소피 폰 쿤을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졌으나, 그녀가 15세에 요절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28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그는, 계몽주의의 차가운 합리성을 넘어 인간 내면에서 솟아나는 마음과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려 했다.


그의 철학 핵심은 모든 것의 통합이다. 외부 세계와 내면세계, 이성과 감성, 생과 사, 인간과 자연, 유한과 무한 이 모든 이분법이 결국 하나의 신비로운 실체로 녹아든다는 일원론이었다. 그는 “지식의 길은 안으로 향한다”라고 강조하며, 내면 탐구를 통해 우주와 신을 깨닫는 길을 제시했다. 과학자이자 광산 기술자, 광물학자로서 실증적 지식을 쌓으면서도 그는 결코 시와 철학, 신앙을 분리하지 않았다.



[푸른 꽃]

-노발리스의 대표작품


차례는 제1부 기대가 9장으로 구성, 제2부 실현 (수도원 또는 앞마당)으로 되어있다.


주인공 하인리히는 어느 날 꿈속에서 신비로운 푸른 꽃을 본다. 그 꽃은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강하게 그를 끌어당기고,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그는 더 이상 눈앞의 현실에 머무를 수 없게 되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어떤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막연하지만 분명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아우크스부르크로의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는 길 위에서 상인과 시인, 광부 같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그 세계는 단단하고 명확한 현실이라기보다, 의미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층위에 가깝다.


하인리히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마틸데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교환이 아니라, 그가 꿈에서 보았던 푸른 꽃과 맞닿아 있다. 마틸데는 한 사람인 동시에, 그가 평생 추구하게 될 이상과 아름다움의 형상이다. 사랑은 그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되고, 동시에 그를 더 깊은 동경 속으로 이끈다.


하인리히와 마틸데의 사랑으로 아이가 태어나고 마틸데는 죽는다. 그리고 하인리히는 아우크스부르크를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커다란 나무와 소녀를 만나고 그녀의 할아버지라는 실베스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데미안]과 공명되던 지점들


약 100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노발리스와 헤르만 헤세는 모두 루터교 경건주의(Pietism)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엄격한 신앙인인 부모의 영향을 받았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문을 열었다면, 경건주의는 그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 '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든 내적 혁명이었다. 이들은 고착화된 교리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 내면에서 신을 직접 만나는 개인적 체험과 일상에서의 도덕적 실천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노발리스에게 경건주의는 내면으로의 깊은 침잠과 우주적 합일을 꿈꾸는 '낭만주의 철학'으로 전이되었다. 반면, 헤세에게 경건주의는 작품 속 인물들이 기성 도덕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길을 떠나는 '영적 순례'의 구조로 발현되었다. 결국 두 작가에게 문학이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형식을 파괴하고 그 핵심인 '개별적 영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푸른 꽃] 5장에서 하인리히를 이끄는 늙은 광부와 은둔자는 외부 인물이기보다 그의 내면이 분화된 형상에 가깝다. 이는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만나는 인물들이 또 다른 자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구조와 닮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노발리스의 세계가 없었다면 헤세의 [데미안] 역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쓰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의 정원은 세계예요. 폐허 더미는 이곳에서 피어나고 있는 아이들의 어머니고요. 화여하게 살아 숨 쉬는 창조는 지나간 시절의 폐허 더미에서 그 양분을 취하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튼튼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죽어야 해요. "(푸른 꽃, p. 241)


새로운 존재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그 성장의 기반이자 안식처였던 과거(어머니)라는 껍질을 스스로 깨고 해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데미안]의 핵심 선언과 경이로울 정도로 일치한다. 노발리스가 말한 '어머니의 죽음'은 곧 헤세가 말한 '알의 파괴'이며, 과거의 잔해를 양분 삼아 피어나는 새로운 창조의 법칙을 상징한다.


"고향이 저의 어린 시절의 사고를 지워지지 않는 빛깔로 물들였다는 것을 저는 요즘 들어 느끼고 있어요. 고향의 이미지는 제 마음을 나타내주는 기묘한 전조가 되었어요.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운명과 마음은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는 서로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어요." (푸른 꽃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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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옆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네 아버지는 누구였니? ", "호엔촐레른 백작(동굴 석판에 새겨져있던 남자의 이름) ."

"그분은 나도 알아.", "아는 게 당연하지. 왜냐하면 그분은 네 아버지이기도 하니까."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집으로. 늘 그렇잖아."


이 짧은 문답은 헤세가 [데미안]의 서문에서 선언한 "모든 사람은 그 유래가 같다"는 말과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하인리히가 말하는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고향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인간이 결국 도달해야 할 자기 자신의 본질이다. 헤세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명제는, 이미 노발리스의 이 신비로운 '귀향' 속에 그 씨앗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구름은 분명 뭔가 아주 신비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어. 어떤 구름은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영향을 주기도 하지. 구름은 떠가면서 서늘한 그림자로 우리를 하늘로 끌어올려 데려가고 싶어 해. 그리고 만일 구름의 모양새가 우리의 마음이 내뿜는 소망처럼 화사하게 아름답다면, 구름의 밝은 빛, 즉 구름이 이 땅에 던지는 찬란한 빛은 어느 미지의 침울하고 심각하고 끔찍한 먹구름도 있지. 그런 구름들을 보면 간밤의 공포가 튀어나올 것만 같지. " (푸른 꽃, p. 245)


"구름 속에서 커다란 도시를 볼 수 있었다. 거기서 수백만의 사람이 쏟아져 나왔고, 그들은 떼를 지어 넓은 풍경 위로 퍼져갔다. 그들 한가운데 힘찬 신의 모습이 나왔다. 머리에는 빛을 뿜는 별을 달고, 산처럼 크고, 에바 부인의 표정을 가지고, 그 모습 속으로 인간의 대열들이 거대한 동굴 속으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 (데미안, p. 216)


두 작가에게 구름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경외심과 공포를 동시에 자극하는 '신성한 운명'의 표상이었다. 노발리스가 구름을 통해 내면의 소망과 공포가 하늘에 투사되는 과정을 보았다면, 헤세는 그 구름 속에서 시대의 운명을 짊어진 거대한 신성(에바 부인)을 목격한다. 결국 [푸른 꽃]을 읽는다는 것은 [데미안]을 구성하는 장엄한 세계관의 시초이자, 그 깊은 뿌리를 확인하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노발리스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에서 솟아나는 마음과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려 했다. 그의 철학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본적인 통합을 향한 갈망이었다. 외부 세계와 내면세계, 이성과 감성, 생과 사, 인간과 자연, 유한과 무한. 이 모든 이분법이 결국 하나의 신비로운 실체로 녹아든다는 일원론이 그의 사상의 핵심이다.


헤세에게 노발리스는 단순한 문학적 선배가 아니라 평생의 스승이자 영적 고향이었다. 헤세는 그를 “가장 깊고 가장 알려지지 않은 독일 정신”이라고 불렀다.



푸른 꽃? 파란 꽃?


그는 역사와 철학에 심취했지만, 동시에 돌과 광물을 통해 우주의 신비를 읽으려 했다. 그에게 푸른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나는 네 가지 ‘파란 꽃’을 상상해 본다.

첫째, 산소와 만나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완전연소의 불꽃. 이는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이자 진리의 경지를 의미한다.


둘째, 바다 너머에서 온 신성한 보석 청금석(Lapis lazuli). 종교화에서 오직 초월적 존재에게만 허락되었던 울트라마린의 그 푸른색은 현실을 넘어선 이상향의 빛깔이다.


셋째, 소설 속 마틸데와 조우하며 피어난 불꽃과 파란 꽃의 조화. 그것은 음과 양, 하나로 녹아드는 우주적 합일의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1791년 인도 경전인 [사쿤탈라]이 독일 지식인 사회를 매료시켰다. [사쿤탈라]과 [푸른 꽃]이 공명되는 부분들이 있음을 인지하고 추측해보는 인도 철학의 파란 연꽃, 동양의 '청련'이자 밤의 심연에서 피어나는 파란 수련 '우트팔라'는 번뇌를 넘어선 지혜의 눈을 상징한다.



번역가들이 ‘푸른 꽃’을 선택한 이유는 ‘푸르다’가 주는 한국어 특유의 깊이감과 신비로움이 독일어 ‘Blau’의 이상적 가치와 공명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원작자가 지향했던 그 선명한 실체와 초월적 의도를 담기엔 “파란 꽃”이 더 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노발리스를 읽으며 나는 카프카, 헤세, 보들레르, 움베르트 에코, 비트겐슈타인까지 수많은 거장 속에 감추어져 있던 그들의 뿌리를 목격했다.

특히 노발리스의 ‘파란 꽃’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상상해 본다. 역설적이게도 보들레르의 꽃 역시 파란색이다. 결국 파란색은 현실의 ‘저편’을 지시하는 색이다. 낭만주의의 동경이 가닿으려 했던 성스러운 하늘이자, 근대인의 권태가 추락하며 마주한 시린 심연. 이 아름답고도 모순적인 두 세계가 교차하며 유럽 문화를 만개시켰다는 사실은 참으로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