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알아서 크는 기적
공포의 첫날밤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 첫날 밤, 나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는데, 이제는 정말 내 책임이었다.
이렇게 작은 존재가 밤중에 깨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유는 언제 줘야 하나, 기저귀는 언제 갈아줘야 하나, 아프면 어떻게 알 수 있나.
며칠 동안 나는 아이 곁에서 잠들지 못했다.
그저 숨쉬는 것을 확인하려고 뚫어져라 바라보며 밤을 새웠다.
아이의 작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면서 안도했다가,
잠시 멈추는 것 같으면 놀라서 깨웠다.
너무 조용해도 걱정이고, 너무 시끄러워도 걱정이었다.
밤중 수유 시간이 되면 더욱 긴장했다. 분유 온도는 적당한지,
너무 많이 주는 건 아닌지, 트림은 제대로 시키는지.
모든 것이 처음이라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이가 우유를 토하면 혹시 아픈 건 아닌지 걱정했고,
잘 먹지 않으면 입맛이 없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아침이 되어 어머니가 일어나시면, 내 초췌한 모습을 보고
아이를 품에 안으며 말씀하셨다.
"더 자거라." 그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어머니의 능숙한 손길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는 그 '언젠가'가 얼마나 먼 미래인지 몰랐다.
어머니의 손길
먹고 자고 먹고 자는 아이 옆에서, 어머니는 이유식을 직접 만드셨다. 내 미역국도 함께.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쌀을 씻고 야채를 다듬고,
아이 월령에 맞게 부드럽게 갈아서 정성스럽게 끓이셨다.
간도 하지 않은 밋밋한 이유식을 만들면서도
"우리 손녀 맛있게 먹어야지"라고 중얼거리셨다.
산후조리도 어머니가 다 해주셨다.
미역국뿐만 아니라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번갈아 끓여주셨다.
내가 먹기 싫다고 하면 "몸조리 잘해야 나중에 안 아파"라고 하시며 꼭 먹게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나이가 있으신데, 갓난아기 돌보랴 며느리 돌보랴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 덕분에 나는 아이가 백일도 되기 전에 직장을 구할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육아휴직을 늘리거나 아예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어머니가 계시니까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경제적 현실도 고려해야 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경제적 현실과 마주하기
'장군감'이라는 인사를 받으며 태어난 딸에게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스트레스였지만, 더 큰 문제는 분유값이었다.
분유 한 통이 만원이 넘는데, 일주일도 안 되어 바닥이 났다.
분유값을 계산하며 한숨을 쉬던 시절이 생생하다.
신생아용, 1단계, 2단계... 월령별로 다른 분유를 사야 했고, 각각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아이가 분유를 잘 안 먹으면 다른 브랜드로 바꿔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돈이 아까웠다.
먹다 남은 분유를 버릴 때면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가 천 기저귀를 사용해주셔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일회용 기저귀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 천 기저귀로 절약할 수 있었다.
빨래는 늘어났지만, 돈은 아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예전에는 다 이렇게 키웠다"며 당연하다는 듯 말씀하셨지만, 내게는 큰 도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직장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에만 있으면서 돈 걱정만 하는 것보다는, 일을 해서 가계에 보탬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실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