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엄마

1. 딸아이가 알아서 크는 기적

by 흑곰아제

아기를 싫어했던 나


나는 아기를 싫어했다. 정확히는 울음을 싫어했다.

마트의 과자 코너에서, 식당의 테이블 사이에서, 버스의 좁은 통로에서 터져 나오는

그 날것의 소리들이 견딜 수 없었다.

특히 조용한 공간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아기 울음소리는

내 신경을 긁어대는 손톱 소리 같았다.

이어폰 너머로 스며드는 울음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아기 엄마를 째려보던 나. 그때 엄마들에게 참 미안하다.

그때 내 시선이 얼마나 차갑고 무정했는지, 그 시선을 받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위축되고 미안했을지 이제는 안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 울음이 얼마나 간절한 언어인지를.

아기에게는 울음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것을,

그 작은 존재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필요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가 "아기 데리고 오는 손님들이 제일 싫다"고 말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관에서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혀를 찼다.

왜 아기를 데리고 공공장소에 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있으면 되는데, 왜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나와야 하는지.

그 모든 판단들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편협했는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아기와 엄마를 분리된 존재로 봤다. 아기는 시끄러운 존재, 엄마는 통제 능력이 부족한 사람.

그들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것을, 엄마도 아기의 울음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낯선 생명체와의 만남


서른에 결혼하고 서른하나에 엄마가 되었다. 그 전까지 내 삶에는

기저귀와 분유, 밤중 수유라는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내 세계는 직장과 집, 친구들과의 약속, 주말의 여가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일상이었다.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고, 비슷한 시기에 낯선 생명체와 마주했다.

그 작고 연약한 존재 앞에서 우리는 모두 초보자였다.

서로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을 감당하느라 바빠서, 누구도 누구의 초보 엄마 시절을 도울 여유가 없었다.

전화 통화는 주로 걱정과 하소연으로 채워졌다.

"너희 아이는 밤에 잠 잘 자?"

"이유식은 언제부터 시작했어?"

"병원은 얼마나 자주 가?"

서로의 경험을 나누려 했지만, 아이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달라서 명확한 답은 없었다.

그저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 정도가 전부였다.

육아 관련 책을 사서 읽어봤지만, 책 속의 아기와 내 아기는 달랐다.

책에서는 생후 몇 개월에 이런 발달을 보인다고 했지만, 우리 아이는 그 시기와 맞지 않게 빨랐다.

책에서 권하는 방법을 시도해봐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매일매일이 실험이었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시어머니라는 구원자


다행히 나에게는 시어머니라는 구원자가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선택한 함께 살기가 그때는 몰랐지만 은혜였다.

처음에는 시어머니와의 동거가 부담스러웠다.

내 자유로운 생활이 제약받을 것 같았고, 눈치를 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남편도, 어머니도 아이를 너무 좋아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이를 부담스러워하거나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있어서 집안이 더 활기차다고 하셨다.

남편은 퇴근하면 제일 먼저 아이를 찾았고, 어머니는 아이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셨다.

특히 어머니의 육아 경험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침착했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날 때도, 이상하게 보채도,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도

어머니는 "이런 때가 있어, 괜찮아"라고 안심시켜 주셨다.

그 말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라벤더 들판의 인상파 풍경.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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