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력시장 그곳에
요즘들어 집근처에 있는 파충류샵을 자주 드나들고 있다. 아이들이 어느날 도마뱀을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난후 동네 파충류샵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동네 파충류샵을 자주 드나들어 민망 했던지 수원 처남댁네 근처로 원정 피크닉도 종종 가게 된다.
"아빠 처음 온듯이 이야기해야 돼"
"자 연습해봐 "
"알았어 "
"어떻게 오셨어요 하면"
"레오파드게코 보러 왔어요 라고 해 알았지"
"어색하지 않게 해야돼 실수하지 말구"
연기가 어설픈 아빠가 걱정됐던지 아이들은 연습해 보라며 대본연습 까지 시킨다.
아이들은 자주 가서 사지는 않고 그냥 오는게 미안한듯 했다. 나이에 비해 상거래 준칙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안 그래도 된다고 설명해 주었는데 학교앞 문방구 사장님은 안그렇타고 이야기 한다.
"아빠 ! 문방구 사장님은 보기만 하고 안사거나 만지기만 하고 안사는 아이들을 싫어해 얼마나 모라 그러는데 "
"그래서 내가 매일 사는거야 "
무언가 안사도 될듯한 네모난 카드를 열심히 사모으는 이유 치고는 이해는 잘 되지 않았지만 묘하게 설득력은 있었다.
아이들은 도마뱀에 진심인듯 하다. 하지만 어찌하랴 현정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더이상의 협상도 먹히지 않는다. 중간에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내 고생만 불어난 셈이다. 이또한 어쩔수 없는 운명이다.
지난주 여느 때와 똑같이 파충류샵을 가는길이였다. 파충류샵을 가자면 재래시장을 지나 두어 정거장을 걸어가야 되는 거리다. 파충류샵 옆에는 순대국밥 이 있고 순대국집 앞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국밥을 먹는 사람들과 국밥집 앞을 빙둘러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믹스커피를 들이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의 행색은 남루했다.
대부분 머리가 하얗게 쎄어서 털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더럿은 해병대 군복을 입고 있었고 더럿은 얇은 야상을 입고 있었다. 뽀얗게 먼지로 덥혀 있는 자기색을 잃어버린 신발을 신고 있었다. 신발의 무게가 그들을 땅속으로 잡아 당기는듯 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까 궁금했다. 사람들이 내 뿜는 담배연기가 그나마 있던 공백을 메우고 있었고 음식냄새와 뒤섞인 사람냄새는 후각을 마비시켰다.
그 순간 벼락 치듯이 의식속으로 풍경이 밀고 들어온다. 내 기억 인지 누구의 기억인지 드라마의 한컷일까 영화에서 본걸까 구분되지 않는 이미지들이 경계를 넘나든다. 농밀한 안개가 선명한 윤곽으로 밀려온다. 선으로 이어진 기억들이 소환되어 온다. 닳아 없어진것 같았던 기억들이 먼지 일듯 분말처럼 피어 오른다.
" 무리지어 움직이는 사람들"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봉고차"
"갈피없이 피어오르는 연기"
"삽질 잘하는분 소리치는 사람과 그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그 무리속에 들어 가고자 과장된 손짓과 몸짓을 휘드리던 내가 있다. 그 속에 내가 있었다.
드럼통을 잘라 만든 난로는 노란 불꽃을 토해내고 있었고, 한겨울 칼바람은 젊은 나의 반듯한 앞머리칼을 풀잎처럼 흔들고 있었다. 용돈이나 벌어보자며 친구와 청량리옆 근처에 있는 인력시장을 몇번 찾아 갔었다.
빵 빵 경적이 울린다.
모든것이 예전의 시간을 닮았다.
그 풍경 그대로 이미지가 박제된체 풍화되지 않은체 존재한다. 삼십년 시간의 공백은 많은걸 바꾸어 놓기도 하였고 또 어떤것은 박제시켜 놓기도 하였다.
내속에 있는 공백은 현실로 걸어 오기까지 이사람들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눈을 들어 이층 건물 간판을 쫒았다. 눈길이 닿은곳에 건설인력회사 간판이 붙어 있다.
한번 좌표을 잃어 버리자 시간은 계속되는 하나의 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각하는 대로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모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유체처럼 되었다. 기억의 편린이다. 그리고 조금씩 시간은 보지 않는 상황에 익숙해졌다. 내 자신이 시간이라는 것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 몸이 기억시켰다. 나의 머리는 텅 비어져 갔다. 데좌뷰다.
앞서 걸어가는 그들의 행색뒤에
지쳐 흔들리는 무거운 발거움이 남아있다.
땅밑을 유영하는듯한 막막함을 감출수 없다.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다.
그들을 뒤로 하고 앞서 걸어 나간다. 그들에게 있을 더 나을 내일을 위해 기도한다.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는다 물은 촉촉한 대로 흐르고 불은 마른 데로 번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