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와 쉼표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에 맞추어 피아노를 들여놨다.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였지만 악기 하나쯤은 잘 다루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현을 켜는 바이올린이나 기타도 괜찮아 보였지만 현악기는 아이들이 다루기에 이른듯 했다. 우선은 아이들이 피아노와 친숙해 지도록 만들어 주는게 좋을것 같았다 .초등학교 입학전에는 조카들이 사용했던 전자 피아노를 가지고 놀았다. 전자 피아노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 주었다. 손가락 가는데로 건반을 누르고 다양한 전자장비 버튼을 건드려 흘러 나오는 음악에 좋아라 했다. 빠른 비트 음악이 저장돼 있는 버튼을 자주눌러 볼륨을 줄이라고 소리 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했던 피아노는 건반 뒤쪽으로 길게 오르간들이 붙어있는 제법 큰 사이즈의 악기였다. 거실 반을 차지하고 있거나 방 전체를 꽉 채웠던 웅장한 크기의 검은색 물건은 그집이 지니고 있는 부를 있는데로 뿜어 주는 그런 악기였다.
피아노를 전공하신 지인분은 업라이트피아노와 디지털피아노의 장단점을 설명해 주었고 일반인들이 편하게 칠수있는 디지털피아노로 추천 해주었다. 디지텔피아노는 교실에서나 교회에서 자주봤던 풍금 크였다. 업라이트피아노에 비해 크기가 작았지만 소리의 차이는 크지 않는듯 했다. 전문가의 예리한 귓볼에선 걸러질 음계의 정직함이나 피아노 협주곡을 통달할 만큼의 고수는 아니기에 디지털피아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만족함 이였다.
현정이는 틈나는데로 피아노를 배운덕에 성가나 좋아하는 노래를 우아하게 칠줄 아는, 음악을 곁에 두고 즐기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오줄 밑줄선에 걸쳐진 음계를 보며 피아노를 치거나 현악기를 켜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그들이 가진 능력에 감탄하곤 하였다. 그것이 음악이 되고 노래가 된다는게 마냥 신기하기까지 했다.
" 아빠 여기 앉아봐 내가 치는거 잘들어봐"
아이들은 피아노 학원을 다녀 올때면 자기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다투어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가 치는 성가를 거뜬히 쳐내는 아이들은 자신감이 붙는듯 했다. 아이들에 눈에도 음계 오줄에 걸쳐있는 음표가 음악으로 보이는듯 했다. 오줄에 음계에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박자와 멜로디가 완벽하게 짜맞쳐저 아름다운 소리로 우려져 나왔다. 끊는 물에서 우러나는 차처럼 음표와 음표는 그 높고 낮음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변화의 폭에서 소리가 우려져 나왔다. 그 차이는 설령 물이 흐르는 소리일수도,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일수도 꽃잎이 열리는 소리일수도 풀잎이 쓰러지는 소리일수도 햇볕이 쏟아지는 소리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것은 음표들 속에 들어있는 소리는 물의 소리를 바람의 소리를 햇볕의 소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상의 소리를 음표 안으로 심어 넣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느낄수 있게 해주었다.
아이들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바쁘게 움직였다. 오른손가락과 왼손가락은 검은건반과 흰건반을 오밀 조밀하게 오가며 듣기 좋은 화음을 만들어 냈다.
"아빠 나 잘하지"
아침 저녁으로 건반을 누르며 피아노와 친해진 덕인지 아이들이 쳐주는 피아노 소리는 듣기 좋았다. 음악은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가졌다. 아이들은 음표와 음표 사이를 음표와 쉼표 사이를 뛰어 놀고 있었다. 음표를 볼수는 없지만 음표가 만들어주는 밀도 높은 소리는 호흡이 되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 아빠 ! 음표를 잘보고 건반을 누르면 돼"
" 그래 고마워 아빠도 배워볼께"
모자르트나 베토벤의 합주곡도 성당 성가도 쉬운 노랫말도 가곡과 가요도 심금을 울리는 합창곡이나 독주곡도, 음표와 쉼표로 음악은 만들어 진다. 음표 다음에 다른 음표가 닿아 있다. 음표와 음표 사이 쉼표로 쉬어간다. 이어진 음표들은 하나에 앙상블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낸다.
삶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듯 하다.
우리 모두의 삶 역시 하나의 음표와 쉼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음악은 음표로만 이루어 질수 없을것이고 쉼표의 거듬이 필요했을것이다.
우리 인생은 하나의 음역으로 반짝이는 단 하나의 음표이다. 수십개 수천개의 음표가 만나 잇고 닿아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내듯 우리 모두의 삶들은 하나의 음표로 다른 음표와 만난다. 타자라는 음표와 만날때라야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수 있다.
내 삶의 음계위에 만나는 수많은 음표들과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고싶다. 아마도 그 화음은 지상에서 만날수 있는 최고의 음악 일것이다.
음악이 만들어주는 풍요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음표를 볼줄아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