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과 Well being
육아
주말 아침이다.
아이들은 등교하지 않는 날이면 평소 보다 일찍 일어난다. 딱히 어딜 가겠다 약속한 날이 아닌데도 한시간씩이나 일찍 일어나 나에 아침잠을 깨우기 시작한다. 몸에 올라 타기도 하고 눈꺼풀을 뒤집기도 한다. 어는 정도 버티다 보면 밀물처럼 잠이 빠져 나간다. 뻐대겨 본지만 버틴 다는게 불가능하다. 그렇게 잠이 달아난 침대에서 발버둥 치고 있을때쯤 상호 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가 너머 피곤한 상호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덕여대 주차장이라며 큰딸 수시 시험 보는데 쫒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시은이가 벌써 그렇게 컸구나"
"좋겠다 다 키워서"
"하은이가 중삼이라 아직 멀었어"
"근데 너는 어쩌냐 언제 키운다니
애들 수능보면 너 환갑 되겠다"
두아이를 초등학교때 부터 홀로 키운 상호가 대견해 보였다. 재수씨가 이른나이 폐암으로 죽은게 8년전 이니 십년이 가까워 오고있다. 또래 보다 십년정도 늦게 아이를 가지다 보니 가끔 잊을때마다 듣는 이야기라 새삼스러울것도 없지만 주완 지완이를 볼때면 늘 드는 생각이다. 육아의 끝은 없는듯 하다. 초등학교만 보내면 힘든 육아는 끝날줄 알았는데 다른결의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건강검진 때마다 내시경과 초음파가 훌코 지나가는 곳에서 모라도 나올까봐 잔뜩 긴장하곤 한다. 아이가 클때까지는 내몸이 내몸이 아닌것이다. 아프지 말아야 된다며 술한잔 할때마다 되뇌인다.
전화를 끊고 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서울랜드로 차를 몰았다. 놀이기구 앞에서 알바생들은 큰자를 들고 아이들 키를 재고 있었다 . 놀이기구 마다 키제안이 있다보니 대부분 보호자가 같이 타주어야 아이들이 탈수 있었다.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가을 햇볕이 따가웠다.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산이 공원을 감싸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깜깜한 하늘위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하늘이 밝아졌다. 아이들과 소리를 질렀다. 미니 청룡열차 안에서 폭죽이 터지는걸 보았다. 청룡열차의 스릴감과 불꽃축제의 환호성이 동시에 우리를 덥쳐왔다. 피로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환하게 폭죽이 터지는 그 순간에
"아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구나 " 라는 생각이 들었다.
Being 존재 한다는것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것 만큼 행복한게 있을까 ! 존재 한다는 그 느낌은, 고통이나 통증으로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일상의 행복으로도, 내게로 불어오는 바람과 햇볕 으로도, 따박 따박 들어오는 월급통장 띵똥 소리로도 ᆢ그런 저런 모든것들로 느낄수가 있다.
삶은 이토록 여러 모습을 한채 나에게 존재의 이유와 존재 한다는 벅찬 감동을 주기도 하고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육아 만큼 삶의 이유를 간단 명료 하게 정리하는 명제는 없는듯 하다. 육아를 통해 being 을 충만하게 느낀다. 육아를 통해 삶의 다양한 장면에서 찰기와 온기가 더해져 푹 우려낸 Wellbeing 그 진국속으로 깊숙히 들어온 그런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
어쩌면 육아는 Wellbing 그 전부인지 모른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서재로 들어왔다. 서재로 들어와 오늘의 Wellbeing을 정리해 보았다.
저녁밥을 같이 먹고 과일을 깍아 주었다.
아이들 숙제를 봐주었다. 칫솔질과 세수를 봐주었다. 영어 암송과 저녁기도를 함께 했다. 책 두권을 읽어주고 잠이 들때까지 같이 누워주었다.
재우다가 같이 자는경우가 대부분 이다.
육아는 being 이자 Wellbeing 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