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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통증의 고마움

by 둥이

나에 수호천사

걷는게 불편했다.

통증으로 걷는게 힘들어지고 나서야 병원을 찾았다. 병을 키워 고통을 몸 전체로 느낄때래야 의사를 찾게 되다보니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


"아프지 않았나요 언제 부터 그랬나요 왜 이제야 오셨어요"


오일치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발톱이 파고드는 고통이 이정도 일줄이야 !"

처음 겪어 보는 통증 이였다.


아플만큼 아퍼야 의사를 찾는다.

통증을 느끼고 통증으로 고통스러울 때래야 치료를 받는다. 통증이 뇌를 지배하지 않는한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때야 알았다. 내게 찾아오는 작은 통증은 이세상의 모든 위험으로 부터 나를 지켜주는 첫번째 수호천사 였다는걸!


마른 풀섶에 스친 작은 상처에도 통증은 찾아온다. 성냥불에 데이기라도 하면 참기 힘든 고통이 엄습해온다. 연필을 깍다가 베인 상처나. 음식을 하다가 다친 상처에도 우리의 몸은 통증을 느낀다. 이러한 통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픔의 정도를 객관화 시켜 뇌하수체에 심어준다. 그러함으로써 아픔과 고통의 정도는 훌륭한 안전장치가 되어 우리 몸을 보호해준다. 얼마나 아픈지 앎으로써 스스로 위험 요소로 부터 완벽에 가깝게 자기를 보호해 내고 스스로를 지켜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 해주신 최고의 수호천사가 아닐수 없다. 통증을 느끼게 해주는 신체 시스템에 대해서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


아플때 마다, 통증을 느낄때 마다 불쾌감을 느끼기 보다는 감사함을 느껴야 되는 이유이다.


나병 환자가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살을 썩게 만드는 병원체 때문이 아니라 팔다리에서 통증에 감각을 잃게 만드는 질병 때문이라고 한다. 통증이 주는 보호 장치가 없는 나병 환자들은 자신의 세포가 손상을 입고 있다는 경고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통증을 느끼는 신체 시스템 못지 않게 우리에게 수시로 달려드는 마음의 고통으로 힘들어한다.


관계로 힘들어 하고,

불안해서 힘들어 하고,

죽음앞에 두려워 한다.


발톱으로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된게 있다.

어쩌면 마음의 고통도 통증을 느끼는 신체 시스템과 같은 역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


지금의 고통이 다가 올 고통을 치유해 주기 위해 마음밭을 단단하게 다져주고 있을 꺼라는걸!

그렇게 다져진 마음밭에선 두려움도, 슬픔도,

불안도 쉽사리 우리를 몰아 붙히지 못할거라는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호천사를 보내주었다.

몸도 마음도 지켜줄 수호천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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