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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

식탐의 대하여

by 둥이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

사남매의 숟가락은 냄비속에서 부딪쳤다. 남은 찬밥에 김치와 무생채를 올려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비벼 내놓은 양푼단지 주위로 까만 머리통 네개가 모여 들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숟가락으로 봉분을 쌓아올려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양푼단지 한가득 실려 나온 비빔밥은 순식간에 뱃속으로 사라졌다.


무서웠다고 했다.

내오는 족족 발우공양 하듯 밥한톨 남아있지 않은 자식들의 그릇을 보는게 즐겁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며 부모님은 말하곤 했다.


엄마는 끼니를 거르지 않고 내주었다. 배부르게 먹이진 못했지만 매끼니를 알뜰하게 챙겨 먹였다. 엄마가 자주 해주던 " 끊인밥 "은

남은 찬밥과 누룽지를 긁어 모아 물을 붓고 끊여 내온 어엿한 밥축에 속했던 끼니였는데, 죽보다는 묽었고 씹히는게 없을 정도로 밥알은 찾을수 없었다.

허연 물을 들이키는 수준 이였지만 김치와 곁들여 먹다보면 이 역시 꿀맛 이였다.


엄마는 가끔씩 수제비를 끓였다. 곰표 밀가루를 양푼에 덜어서 비져 나갔다. 적당히 비져졌다 싶으면 손가락에 물을 적서가며 펄펄 끓고 있는 냄비안으로 수제비를 뛰었다. 손가락에 묻어나지 않게 물을 묻혀가며 속도를 내는게 비법중에 비법이였다. 수제비를 너무 늦게 띄우다 보면 불어서 쫄깃한 맛이 없어져 버린다. 김치수제비, 호박수제비, 감자수제비 마지막에 쓸어담는 채소에 따라 음식이름이 바꿔갔다. 뭐가 들어가도 맛은 일품이였다. 거지가 들어 앉은것처럼 우리의 식탐은 꺼질줄 몰랐다. 먹고 나면 그새 허기가 져왔고 방귀 두어번에 배꼴이 홀쭉해져갔다. 왜 그리 먹어도 배는 고팠던지! 고구마며 감자며 계란이며, 늦은밤까지 자다가도 일어나 먹어댔다.

지금이야 그렇게 먹을수도 없다.


어느날 이었다.

집에 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형도 누나도 동생도 없었다.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번뜩 들었을까! 난 거의 몸이 시키는데로 광문을 열어 젖히고 한켠에 놔두었던 사과 한알과 라면 한봉지를 집어들었다. 배가 고픈것도 아니였던것 같다. 형과 누나에게 뺏앗기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 이였을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한입 두입 베어 먹었다. 어찌나 달던지 ! 사과 하나를 다 먹을수 없던 시절에 씨앗까지 씹어 먹었다. 흔적을 없애기 위해 꼭지까지 먹어 버렸다. 그리고 라면을 뜯었다. 주황색 라면봉투를 펼쳐 놓코 먹기 좋을 만큼 잘라서 스프를 뿌렸다. 지금도 생라면은 가끔 부셔 먹는다. 스프가 적당히 뿌려진 라면을 오드득 오드득 밥알 까먹듯이 먹어댔다. 고추장 된장에 길들여진 거친 입맛에 매콤하면서도 먹을수록 당기는 스프맛은 여덟살 아이게겐 천상의 맛이였다. 스프를 뜯기도 전에 침샘에서 아드레날린이 샘물처럼 치솓았다. 갑자기 과량의 침샘이 분출해서 였던가 먹기도 전에 턱이 아려왔다.

남은 스프가 아까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출출할때 마다 바지 주머니안에서 꺼내어 손바닥에 뿌려 혀로 햝아 먹었다. 동생에게도 인심을 베풀었다. 다먹은 스프봉지를 뜯어서 안쪽에 묻은것까지 햝아 먹었다. 잊을수 없는 맛이였다.

방바닥으로 군데 군데 스프 흔적이 남은걸 알수 없었다. 완전 범죄 였을거라는 내생각은 체 몇시간도 되지 않아 들통이 났다. 배고픔에 굶주려온 형과 누나는 예민한 후각과 더듬이를 가지고 있었다. 방문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 이거 무슨 냄새야 맛있는 냄새 나는데 야 너 뭐 먹었어 라면 먹었지"

"아니 안먹었는데"

"너 거짓말 할래 "

방바닥을 흝어 맛을 보던 누나가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날 엄마는 남아있는 삼양쇠고기라면을 끊여 주셨다. 후루룩 후루룩 까만 머리통 네개가서로를 밀쳐가며 양은냄비 안으로 숱가락을 쑤셔넣어 국물을 퍼올렸다. 라면 덕분에 사과 한알 없어진건 아무도 몰랐다. 사과를 먼저 먹길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도 가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사과를 베어물던 까까머리 아이가 생각난다.


밑에 집은 동네에서도 알아주던 부자였다.

그집 큰애가 나랑 동갑네기 여자 아이였다. 예쁘장한 새침띠기 였다. 남동생이 두명 있었고 나보다 한살이 어렸다. 그 아이들이 마당으로 놀러 나오면 항상 나를 불렀다. 언제나 손에는 사탕봉지를 들고 있었고 어느날은 하드를 먹고 있었다.

먹을거리가 떠나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 아이들을 종일 따라 다니며 이렇게 말했다.


" 애들아 한입만 주라"

"애들아 하나만 주라"


공을 들여야 간신히 한입 얻어 먹을수 있었다. 누나와 동생에게는 주지 않은걸 나에게는 줬다며 "이거 너 먹어" 침 묻은 하드를 내게 건냈다.


식탐은 어린 나를 혼나게 했던 큰 이유중에 한가지가 되었다. 엄마는 사탕을 입안에 물고 들어올때 마다 속상해 하며 야단 치셨다.

" 밑에 집애들하고 놀지 말고 주호네 가서 놀아"

"엄마 우리도 사탕 사주라 "

"엄마 우리도 흰밥 먹자"


어찌 그리 미운 말들만 골라 했을까! 배물리 먹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팠다고 가끔 이야기 하신다.


없이 살던 시절 온동네가 굶었고 가난했었다.

모두가 굶으니 배고품을 잊을수 있었다.

참을만 했던것 같다.

저녁마다 굴뚝위로 푸른 연기가 피어 올라왔고, 온 동네는 때 맞춰 밥짓는 냄새를 풍겨냈다.


형들은 칙뿌리를 케러 돌아 다녔다. 어른 팔뚝만한 칙뿌리를 케어 어깨에 들쳐메고 내려오는 형들을 쫒아 한뿌리만 달라고 졸라대곤 하였다.


방문 걸어 잠그고 먹던 스프를 곁들인 라면 한봉지의 맛은 내 몸속에 박혀 떠나지 않을 향수가 되었다.


내아들 주완이의 넘쳐나는 식탐을 난 탓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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