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과 물멍
계곡이 가까워 지자 물소리가 들려왔다.
계곡물은 산속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저 많은 물이 어디서 오고,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계곡을 찾을때마다 궁금했다.
계곡물은 차가웠다. 발 담구기가 힘들었다. 흐르는 물줄기를 한참을 쳐다 보았다. 하늘빛을 담아내고 있었다. 넓다란 바위위에 앉아 햇살로 일렁이는 물밑을 바라 보았다. 투명한 햇살이 바닥까지 닿아 있었다. 계곡물은 바위를 훑고 지나느라 거친 소리를 내다가도 깊은 웅덩이 자리에선 소리마저 쉬었다 가는듯 조용했다.
햇볕 잘드는 넓다란 바위위에 걸터 앉아 하늘과 산기슭을 품어 흐르고 있는 물속을 바라본다. 낙옆이 살포시 내려 앉았다. 가을색을 담아내느라 나무들이 분주하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먼곳에서 바람이 편백나무수림을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가까운 곳에서 바위를 쓸고 돌아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이 지워진 자리에 사물의 움직임과 소리가 밀고 들어온다. 본질로써 다가서는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며 삶의 이유를 알게 해준다. 시간의 흐름을 놓게 해준다. 시간을 잊으면 보이는것들이 있다. 사소한 것들이 보이게 된다. 그것들이 사는것이 보인다. 계곡물의 여정이 보인다. 나 아닌 것들이 존재하는 방법이 보인다.
참나무 장작박스를 네박스를 실어다 놓았다.
긴밤 불을 지핀다. 향긋한 장작불 향기가 올라온다. 노란 불꽃이 나무를 재로 만들어 간다. 반듯하게 패놓은 장작더미는 빨간숯으로 활활 타오른다. 빨간숯이 숨을 쉬는듯 하다. 확 확 거리며 빨간숯이 숨을 쉬며 노려본다. 그 옛날 할머니는 저 빨간숯들을 기다렸다가 큰삽으로 옮겨 담아 고등어를 굽고 조기를 굽고 김을 구워 냈다. 그 위에 뚝배기를 올려 놓고 된장찌게도 끓여 먹었다.
불길의 세기에 따라 그 조리 용도가 달라졌다. 훌륭한 조리 기구였다. 불길이 어느정도 수구러 들면 할머니방에 드려 놓을 화덕에 옮겨 담았다. 빨간숯과 하얀재를 알맞게 넣은 할머니 화덕은 고구마며 감자를 구워 먹었고 옷다름질 용도의 인두도 쟁겨 두었다. 빨간숯과 노란불꽃이 쉴새 없이 타오른다. 노란 불꽃은 하늘을 향해 춤을 춘다. 나무 위로 솓아 올라오는 노오란 불길이 살아 있는듯 꿈틀 댄다. 시월 초순인데도 산속은 이미 겨울이다. 장작불 주위로 가까이 몸을 붙힌다. 그냥 바라만 볼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태워 들어가는 나무의 노란 불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것도 할수 없게 만든다. 후지와라 신야가 인도방랑 이란 책에서 말했던 갠지스강의 화장 불꽃이 생각 났다.
불꽃도 꽃이라서 그럴까!
이것 만큼 생각을 지우는게 또 있을까!
활쫙 핀 가을꽃 같다. 바람에 일렁이는 노오란 가을꽃 ! 불꽃이다.
따뜻한 불꽃 곁으로 다가선다. 눈을 떼지 못한다. 마치 불꽃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듯 하다. 텅빈 블랙홀로 휩쓸려 들어갈듯 하다. 불길은 곧게 서서 반듯히 올라오지 않는다. 좌우로 흐느적 거리며 나무에 몸을 맡긴체 번져 오른다. 보고 있노라니 계곡 물소리가 더 차갑게 들려온다. 물소리에 번져가는 불꽃 향기가 자욱해진다. 타닥 타닥 마른 장작 더미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타들어간다.
"타닥! 툭! 틱익! 투 욱! 따 악! "
참나무 장작이 타들어 갈때 나는 소리가 정겹다.
소리와 향기가 보는것 이상으로 보는이를 휘저어 놓는다. 오감의 촉수가 극도로 예민해진다. 나에게 존재하는 모든 더듬이가 불꽃앞에 다소곳해진다. 겸손과 침묵을 배우게 한다.
불길과 물길은 보는 내내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해주었다. 나를 잊게 해주었다.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지금의 내가 사라진 공간에 불꽃과 물소리로 채워 졌다. 놓을수 없던 것들을 보는것 만으로 잊게 해주는 그 시간이 좋아 먼 시간을 달려 가는지 모른다.
잊을수 없는 것들을 잊게 해주는.
놓을수 없는 것들을 놓게 해주는,
일인칭을 삼인칭으로 바꾸어 주는,
나를 잃어 버리게 해주는,
그런것이 아닐까 ! 불멍과 물멍은...
겉옷이며 속옷까지 베어 들인 연기 냄새 가득 실고 집으로 돌아오면 세탁기는 새벽까지 소리내며 돌아간다.